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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Jun 14. 2018

길을 잃었다

군생활 이야기

지역축제에 인솔을 맡고 다시 월요일 아침.


쉬는 날 없이 계속 출근하려니 월요병이고 뭐고 없었다.

근데 하필 월요일 아침부터 사격이 잡혀있었다. 사격장은 부대에서 걸어서 1시간 정도 되는 거리였다. 이 정도 거리면 차량이 지원될 만도 한데 사단에선 항상 차가 부족하다고 사격장 가는 차량을 지원해주지 않아 항상 걸어갔다. 

병사들과 함께 사격장으로 가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직 이별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지라 침울했다. 그래도 장교라고 약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티는 안 냈지만 심신은 약해져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기분에 사격을 하러 간다는 게 말이 되는가 싶었다. 

지금 이 사람들은 뭘 믿고 나한테 총을 쥐어주나 하는 생각도 들고 정말 멘탈 약한 친구라면 이런 상황에 사격을 시키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을 안 했으니 지금 내 상태를 알 턱이 없었다. 아니 설령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이유로 사격을 못 하겠다고 하면 졸지에 관심간부로 등극할 것이다. 지금은 힘들긴 하더라도 과도한 관심과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 취급받는 건 원치 않았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다행히 사격장에 들어서니 별 생각이 안 들었다. 그냥 쏜다, 맞춘다만 머릿속에 있어 아까처럼 바보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래서 우울할때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안 되는 건가 싶기도 했다.

     

다음날 일과도 사격이었다. 부대 일과가 사격이니 사격만 하면 좋겠지만 별도로 내 업무는 그대로 남아있어 전날 야근을 하고도 아침에 급하게 처리할 일들이 있어 본대가 출발하고 나중에 뒤따라갔다. 사격장 가는 길이 산도 넘고 복잡한데 몇 번 가보지 않은 탓에 본대와 별도로 갈 자신이 없어 얼른 뛰어갔다. 가는 길에 어디쯤 가고 있냐고 동기한테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았다. 어느 정도 뛰어가다 보니 사격장 가는 산길 초입구로 들어서는 3명이 보였다. 셋다 총을 메고 있어 아마 본대의 후미쯤일 것이라 생각하고 거의 잡았다는 생각에 천천히 따라갔다. 


본대는 조금 빨리 걸으면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무리 가도 가도 본대는커녕 그 3명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천천히 걸었나 싶어 더 빨리 걸어도 보이지 않았다. 가는 길에 동기한테 전화를 해봤으나 받지 않고 결국 사격장 인근에 도착할 때까지 본대는 보지 못 했다. 아무튼 혼자 따로 가는 건 처음이지만 무사히 도착했고 사격장에 들어서려는데 뭔가 이상했다. 뭔가 조용한 게 여기가 맞나 싶었다. 그때 동기한테 전화가 왔다.      


“너 어디야?”


”나 지금 사격장 도착했는데? “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나 바로 뒤쫓아 왔는데?”


”바로 뒤 쫓아왔는데 왜 이제 도착해? “


“어?”


뭔가 이상했다. 

동기의 핸드폰에선 이미 사격이 시작했는지 총소리가 들리는데 여기선 들리지 않았다. 


“너 지금 어디야?”


“여기 B사격장인데?”


“뭐? A사격장 아니었어?”


“아까 집합했을 때 대대장님이 영점 다시 잡는다고 B로 가라고 했는데?”


“B사격장이 어딘데?”


“부대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어.”


B사격장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고 있는지 조차 몰랐다. 가본 적이 없는 건 둘째치고 왜 다들 알려주지도 않고 내가 당연히 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혹시나 하고 A사격장으로 들어갔는데 거긴 아무도 없었다.

다시 돌아가야 했다.

들고 간 것은 소총 하나뿐이지만 소총도 오래 메고 있으면 무겁게 느껴진다.  


얼른 다시 가야한다는 생각에 혼자 걸어가는데도 잡생각은 들지 않았다. 근데 문제가 생겼다. 갈 때는 갔는데 돌아가는 길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분명 왔던 길로 잘 온 것 같은데 산으로 빠지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여긴 어딘가?



잘못 왔나 싶어 몇 바퀴를 돌았다. 어느새 점심시간도 지나 있었다. 핸드폰을 켜서 지도를 봤는데 그 길은 산길이라 나오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에서 안내하는 길은 큰 도로였다. 

지금 이 모습으로 혼자 큰길을 걸어 다니면 너무 눈에 띌 것 같았다. 행여나 무장 탈영으로 오해해서 신고라도 들어가면 일이 커진다. 어떻게든 길을 찾다가 도저히 못 찾겠어서 동네 주민에게 물어봐서 겨우 길을 찾았다.


B사격장에 도착했을 때는 사격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그래도 영점 사격 몇 번 해보고 복귀하긴 했으나 복귀 후 결산에서 대대장이 사격도 못하면서 왜 늦게 왔냐고 물었다. 거기서 차마 길을 잘 헤맸다고 말하기 뭐해 죄송하다고만 말했다. 다행히 그 이상은 묻지 않았다.


     

참 힘든 하루였다. 

힘든 일은 몰려서 온다고 했던가.

여자 친구와는 연락이 여전히 되지 않았다.


거기서 끝내고 싶지 않았다. 

나의 하루 중 유일하게 행복한 시간이 일 끝나고 여자 친구와 통화하는 시간이었고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게 해 준 사람이다. 

그냥 손 놓고 있고 싶지 않았다. 사랑 앞에선 자존심이라는 게 무색해진다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매달리고 싶었다. 그래도 조금 할 줄 아는 게 글쓰기라 여자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글씨를 못 써 대대장한테 쪽지 남기듯, 한자 한자 힘줘가면서 적었다. 

그리고 주말에 다시 집 앞에 찾아가 편지를 건네줬고 그 후 일주일 뒤 연락이 왔다. 다행히 우린 다시 예전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러한 경험(?)덕분에 군대에서 헤어진 병사들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었다.


 

근데 아직까지 의문인 게 그때 소총을 들고 A사격장 가는 길로 가던 3명은 뭐였을까? 

그 길은 사격장 갈 때 말고는 안 쓰는 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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