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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Dec 19. 2018

자전거 도난사건

군생활 이야기

초급간부들 사이에 자전거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시작은 나였다.

우리 부대 행정구역상 위치는 도심 근처이긴 하지만 군부대 위치라는 게 그렇듯 주변은 황량했다.

마트라고 하면 군 아파트 앞에 있는 PX가 전부였고 식당이라고 하면 회관 밖에 없었다. 

그래도 버스 타고 15분만 나가도 시내가 나온다는 것이 축복이긴 하지만 매번 버스를 타고 나가는 게 귀찮은 일이긴 하다. 또한 출근할  때도 숙소가 부대 바로 옆이라도 아파트에서 걸어서 사무실까지 도착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린다. 그래서 차량이 있는 간부들은 항상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 하지만 부대에서 초급간부들이 차량을 구매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초급간부들이 차량 사고율이 높다는 이유이지만 사실 부대에서 차량 구매를 막을 권리는 없다. 다들 알고는 있지만 그런 풍습이 만연했다.) 간혹 몰래 차를 모는 초급간부도 있지만 차를 구매하는 순간 나갈 돈이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 안 구매한 것도 있다. 그래서 자전거를 구매했다.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디자인의 하이브리드 자전거로.  

 

바퀴라는 게 참으로 대단한 게 두 개만 달았을 뿐인데 삶의 질이 달라졌다. 출근 시간이 줄어들어 아침이 여유로워졌고, 창고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업무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꽤 걸리는데 자전거로 다니니 시간절약됐다. 휴일에는 심야영화를 보고 숙소로 복귀할 때 비싼 택시비낼 필요가 없어졌다. 

그런 메리트 때문인지 동기들도 하나둘씩 자전거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곧 후배들도 따라 구매했고, 점점 늘어나다 보니 나중에는 크루를 만들어 같이 시간 맞춰서 라이딩을 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출근을 하려는데 자전거가 안 보였다. 

앞서 말했듯이 부대 주변엔 농가들 뿐이고 인도도 제대로 없어 사람도 잘 안 다니는 곳이다.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군 가족들뿐이라 설마 훔쳐가겠어 하는 마음에 자전거를 잘 안 잠그고 다녔다. 

그런데 자전거가 없어진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전날 훈련 준비 때문에 새벽 2시에 퇴근했고, 그날은 훈련이라 새벽 6시에 출근을 하려고 보니까 자전거가 없어졌다. 새벽 2~6시 그 짧은 시간 동안 자전거가 도난당한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안 잠그고 다니는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전부 털렸다. 같이 살고 있는 후배도 털렸던지라 둘이 출근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당장 철야 훈련이 잡혀있어 훈련이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못했다. 후배가 경찰을 불러야 하지 않냐고 물었다. 하지만 바로 훈련이 잡혀있는지라 그것은 불가능했고 부대 내의 일 때문에 경찰을 부르는 게 껄끄러웠다. 경찰이 오더라도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증거가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 군인아파트 내에 있는 CCTV를 확인해 본 다음에 신고하자고 했다.


훈련이 끝난 날 복귀해서 사단 복지담당관에게 전화해서 관리인 번호부터 확인했다. 그리고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도 받지 않았다. 

퇴근 후 관리인실을 찾아가 봤는데 아무도 없었다. 

다음 날 다시 전화를 해도 안 받고 다시 걸려오는 전화가 없어 복지담당관에게 번호를 다시 확인하려고 걸었다. 그 번호가 분명히 맞다고 한다. 그래서 전화도 안 받고 어제 찾아간 이야기를 하니 관리인이 17시 정도면 퇴근한다고 한다. 즉 내 퇴근이 17시 30분이니 관리인과 만나는 게 불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주말에도 쉰다고 하니 그 부분에서 이해가 가지 읺았다. 거기서 1차 빡침이 몰려왔다. 


복지담당관에게 그 관리인과 통화 좀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서 관리인과 통화할 수 있었다. 

관리인과 통화를 하는데 처음에는 CCTV 확인시켜 줄 수 없다고 했다.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날짜와 시간을 말하고 대신 확인해 달라고 했다. 그러니 뭐라 뭐라 얼버부리더니 그냥 직접 와서 확인해보라고 했다. 거기서 2차 빡침이 몰려왔다. 

아무튼 CCTV를 확인하면 되니까 거기까진 괜찮았다. 그날 당직근무라 근무를 마치고 다음날 근무 퇴근 후 CCTV를 확인하러 갔다. 근데 관리인이 자리에 없어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근무 퇴근이지만 자고 다시 부대로 출근해야 했기에 기다릴 시간이 없어 일단 자고 일어나서 다시 갔다. 

드디어 관리인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관리인한테 돌아온 대답은 황당했다. 

CCTV가 망가져서 확인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언제부터 망가졌냐고 물으니 잘 모르겠다고 했다. 

3차 빡침이 몰려왔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 여기서 이 사람한테 뭐라 뭐라 해봤자 달라질 게 없었다. 애초에 전화를 안 받을때부터 의심스러웠다. 덕분에 군인아파트 관리실태에 대해서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부대 일만으로도 벅찬데 이런 거에 더 이상 할애할 힘이 없어 그냥 포기했다. 그 일이 지나고 그 후로도 자전거 도둑이 몇 번을 왔다 갔다 해서 여기저기 도난사고 소식이 들렸다. 


그러다 나중에 사단 차원에서 간부들 마음의 편지를 받았다. 그때 누군가의 투고로 자전거 분실사고에 대하여 조사한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이때다 싶어 그때 겪은 피해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사실 분실된 자전거를 돌려받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사단이 아파트 관리에 대하여 경각심을 갖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자전거 분실 이야기가 대대장 귀에 들어가 왜 자기한테 보고 안 했냐고 잔소리 들은 건 둘째치고 그 후에 돌아온 피드백이 없었다.

관리인의 처벌까지는 안 바래도 경고 조치를 하거나 적어도 아파트 CCTV를 고치겠다는 이야기를 해야되는데 아무 소식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흘러갔다.

물론 사단에서 어떤 조치를 취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도난사고의 피해자들 중에 그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드는 것은 그냥 그 사람들한텐 자기 일이 아니구나, 분명 부대 차원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개인 차원의 문제로 치부되는구나 하는 생각이다.


나중에 드는 생각이 그때 후배의 말대로 경찰을 부를 걸 후회했다. 만약 경찰을 불렀다면 주차되어있던 차량 블랙박스라도 확인하고 뭔가 조치를 했을 텐데 아무런 대처를 못 하니 2차, 3차 피해가 발생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병사들이 왜 문제가 있어도 간부들에게 말을 안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말해봤자 "바뀌는 게"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일에 따라선 피드백을 줄 수 없는 예민한 사항도 있다.

하지만 피드백을 줄 수 없으면 피드백을 줄 수 없는 이유라도 설명이 필요하다. 

아무런 대답이 없으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게 된다. 


이 자전거였다. 이 자전거를 훔쳐간 사람이 자전거 타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고 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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