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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Dec 17. 2018

보직 교체

군생활 이야기

군대에서는 병과가 있고 보직이 있다. 

병과는 계열이고 보직은 직책이다. 따라서 병과별로 직책이 다르다.

병사들 같은 경우 입대할 때 한번 주특기가 정해지면 특별한 경우가 없는 이상 전역할 때까지 그 주특기를 맡는다. 하지만 간부들은 직책별로 임기 기간이 있고 그 기간이 지나면 보직을 교체한다. 

한 가지 직책만 하는 것이 아닌 여러 직책들을 하며 전체적인 업무를 파악하게 하려는 게 목적이다. 기본적으로 장교들이 부대도 많이 옮기고 직책도 자주 바뀐다. 그도 그럴 것이 장교는 여러 가지 경험을 바탕으로 부대의 전반적인 것을 통솔하고 지휘해야 하는 반면 부사관들은 한 부대에 오래 있으면서 그 부대의 전통을 이어 가는 게 각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장교의 부대이동은 부대 지휘 장기화에 따른 사조직화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장교들이 주로 맡는 직책은 부대 규모와 병과마다 이름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지휘관이나 인사, 정보, 작전, 군수 각 파트의 참모을 맡는다. 대신 각 파트별, 부대규모별로 맡을 수 있는 계급이 따로 있다. 포병부대를 예시로 들면 대대급에서 정보과장, 인사과장은 중위가 맡고 군수과장은 대위, 작전과장은 소령이 맡는다. 하지만 연대로 가면 인사, 정보, 작전은 소령이 맡고 군수는 대위가 맡는다.(직책에 대한 정확한 계급은 '편제표'라는 비문에 나와있다. 하지만 각 부대 사정에 따라 계급이 다를 수도 있고 편제표에 나온 게급이 변하기도 한다.) 

또한, 상황에 따라 인사명령상의 보직과 실제로 하는 일이 다른 경우도 있다. 예로 들면 화력지원 장교라는 직책이 있는데 훈련이나 전시에 보병부대에 파견 가서 보병과 포병을 연결하며 보병 지휘관에게 화력 조언을 하는 역할인데 평시에는 할 일이 명확하지 않아 일손이 많은 파트에 비 편제된 참모로 넣기도 한다. 나 역시 정식 보직명은 관측장교였으나 동원사단에서 평시에 임무가 따로 없어 인사장교라는 직책을 수행했다.


앞서 말했듯이 이 보직이라는 것은 수시로 변하게 된다. 보통 참모 같은 경우 1년 단위로 변경이 되고 지휘관은 부대의 규모에 따라, 필수 보직기간이 있냐 없냐에 따라 다르다.(계급별로 지휘관을 필수적으로 해야하는 기간이 있다) 이 또한 부대의 사정에 따라, 본인의 희망에 따라 보직기간이 연장되기도 한다. 쉽게 말하자면 정해진 임기는 있으나 변동이 많다는 것이다.  



나 역시 소위에서 중위가 되고 후임들이 들어온 시점부터 이미 내 보직기간은 끝이 났고 직책을 바꿔야 했다. 다음 직책 같은 경우 대대장이 전권으로 정할 수 있는데 장기희망이다 보니 다음 직책이 사실상 정해져 있었다. 동기가 맡고 있던 사격지휘 장교라는 직책인데, 작전보좌관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작전장교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보통 그냥 '보좌관'이라고 부른다.

이런 차량에서 사격지휘하는 것이 사격지휘장교이다. (출처 : 대한일보)



사실 포병들 사이에선 보좌관이라 하면 장기 예정자들이 가는 직책으로 통한다. 그 이유가 작전과장 밑에서 보좌를 하면서 부대 운영의 전반적인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말을 다시 말하면 고생을 많이 하는 직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상비사단에서의 이야기지 동원사단에선 초임장교의 수가 많지도 않은데 각 대대별로 사격지휘 장교가 있다 보니 누구나 맡을 수 있는 직책이며 일도 상비사단보단 많지 않다. 그래도 상비사단과 공통적인 점이 있는데 그것은 작전과장이 누구냐에 따라 보좌관의 삶의 질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병사들과 달리 장교들에겐 '사수'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대부분 바통터치 형식으로 보직이 교체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전임자가 한 부대에 있으면 물어보기라도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하지만 보좌관의 경우 분명히 '사수'가 있다. 그것이 바로 작전과장이다. 보좌관은 중 소위인데 작전과장은 소령이다 보니 그 갭 차가 어마어마해서 어떤 보좌관이던 작전과장의 눈을 100% 충족시키긴 힘들다. 그러다 보니 작전과장의 성격상 그 부족함을 어느 정도까지 이해해주냐에 따라 갈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나의 보좌관 생활은 순탄치 않아 보였다.

정작과장이(동원사단에선 대대급 작전과장이 정보과장도 겸해서 정작과장이라 부른다) 바뀐 시점은 보직을 옮기기 전인 소위 시절이었는데 당시 보좌관이었던 동기는 정말 갈기갈기 찢어졌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고생을 했다. 그도 그럴게 처음 우리가 전입 왔을 때 정작과장님은 온순한 성격에 잘 가르쳐 주는 사람이었는데 3개월 후에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그분께 많이 못 배운 상황이었고 다음 정작과장은 이미 부대에서 포대장으로 같이 복무하고 있었지만 전역을 앞둔 분이었다. 어쩔 수 없이 떠맡은 직책에다 관련 경험이 없다 보니 그분한테도 많이 배우질 못 했다. 그런 상황에서 진짜가 나타났으니 상비사단 보좌관만 봐 온 그분 눈에 찰리가 없었다. 

한 번씩 큰 호통 소리가 들리고 동기만 놔두고 정작과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밖으로 나가라는 소리가 나면 정작과 계원이 나한테로 와서 무섭다고 잠깐 여기 있다 가겠다고 했다. 그 광경을 보고 저것이 나의 미래구나 싶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내가 그 보좌관 자리로 갔을 때 다행히 그때 동기가 겪었던 일을 겪지는 않았다. 보직 교체되기 전까지 많은 일들이 있어 정작과장님도 전처럼 무지막지하지는 않았다.(그 당시 포대장님 말로는 정작과장님이 아직 '동원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 했다. 동원화의 의미는 상비사단과 달리 동원사단이 느슨한 면이 있어 '느슨해졌다'는 말로 풀이할 수 있다 ) 


그렇다고 안 털린 건 아니다. 전처럼 무지막지하지 않을 뿐이지 혼나기도 많이 혼나고 욕도 많이 먹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분이 밉지 않았던 게 '정'이 있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욕을 먹을지언정 그만큼 배우는 것도 많이 배워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다. 

사실 혼나는 입장에선 혼내는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그러는지 알고 있다. 본인의 기분에 따라 감정을 뱉어내는 것인지 진짜 날 위해서인지 말이다. 우리가 흔히 '꼰대'들의 멘트라고 하는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는 본인이 직접 말할 필요가 없는 말이다. 혼나는 사람은 그게 날 위한 건지 본인의 감정을 뱉는 건지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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