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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Apr 08. 2019

대위를 다는 순간 대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군생활 이야기

군대에서 초급장교는 관심의 대상이다. 

보통 소위, 중위를 일컫는데 초급장교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고 덜 여물었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면 초급장교를 벗어나는 시점은 언제일까? 

대위를 다는 순간일까? 


반은 맞지만 반은 아니다. 


사회에서는 다 같은 대위로 보이겠지만 군대 내에선 계급만 대위여서는 의미가 없다. 같은 대위라도 OAC(Officer's Advenced Course : 고등군사반. 흔히'고군반'이라 칭한다)를 수료한 대위와 그렇지 않은 대위는 보는 시선도 갈 수 있는 보직도 확연히 다르다. 약 5개월 정도가 되는 고군반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나서야 진정한 대위로 인정받는다. 그래서 대위 보직의 꽃이라고 하는 중대장을 OAC를 수료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다. 


OAC는 소위들이 처음 임관하고 교육받는 OBC(초군반)와 같은 교육기관에서 수료를 하지만 소위들과는 다르게 많은 자유가 주어진다. OBC때는 한 번에 많은 인원들이 있어서 통제가 잘 안 되지만 OAC는 1년에 5 기수가 편성돼서 들어오고 대위 계급을 달 정도로 군생활을 해왔던지라 사리분별은 한다고 생각한다. 즉, 자신의 자유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계급으로 보는 것이다. 

  

학구열 또한 다르다. 한 기수에 약 40명 정도 편성되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이 장기복무자 또는 장기복무 희망자이기 때문에 높은 점수로 수료하려고 애쓴다. 소령부터는 경쟁에 의해 진급을 하는데, 여기서 상장을 받고 교육 수료하면 진급에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상장받으면서 수료하는 것을 '수갑을 찬다'라고 표현한다.) 


상장을 받으려면 여러 가지 방면으로 열심히 해야 하는데,

첫 번째로 처음 자치위원회를 뽑을 때 지원하는 것이 좋다. 자치위원회는 수업 준비나 여러 가지 행정 처리를 도맡아서 하는데 보통 개인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남들보다 고생한다. 때문에 동료평가나 교관 평가에서 좀 더 점수를 받기 쉬워진다. 

두 번째로, 수업 시간에 적극적인 참여를 해야 한다. 수업 시간에 발표를 하거나 질문을 많이 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흔히 '눈깔 점수'라고 해서 눈에 띄는 사람에게 더 높은 점수가 부여되는 것이다. 근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게 수업 전날 미리 공부를 하지 않으면 수업에 질문도, 발표도 하기 힘들다.  

세 번째로, 일정 시기마다 동료평가를 하는데 경쟁이라고 해서 이기적으로 행동하거나 협업 정신이 없는 사람은 여기서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그래서 동료들과의 적절한 협업으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또한 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정보를 얻으려면 동료들과의 관계는 필수다.(주로 육사 출신들이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보통 담배 피우면서 많은 정보들이 오고 가서 비흡연자들도 흡연자들 담배 피우는데 옆에 있기도 한다.)

OAC에 들어가면 미혼 장교들은 숙소 생활을 하고 기혼 장교들은 영외 생활을 하는데 기혼 장교들은 퇴근을 하다 보니 이런 정보전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혼 장교들끼리 따로 모여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마지막은 좀 단순한데, 그냥 공부를 많이 해서 과목별 평가에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다. 


정말 빡세 보이지만 OAC에 들어왔다고 다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조금 노력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냥 적당히 수료만 하려고 하는 이들도 꽤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젼역예정자들은 군생활 중 잠시 쉬었다가는 곳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경쟁에 참여하지 않는다.


나 역시 이미 전역을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라 경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예 놀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지휘관으로 가서 쪽팔리지 않을 만큼은 배웠고, 업무에 치여 하지 못 했던 운동도 마음껏 하며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유를 즐겼다. 항상 업무에 대한 책임감에 시달리던 야전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한 가지 흠이라면 교육기관에서는 휴가가 없다. 또한 매주 금요일 저녁에 외박을 나가긴 하지만 전라남도 장성에 위치해서 집에 가려면 5시간은 차를 타고 가야 했고 일요일 7시까지 복귀해야 했기에 사실상 토요일 아침부터 일요일 점심까지만 자유시간이 허용됐다. 그리고 가끔 무슨 일이 생기면 외박을 못 나가기도 했다. (MERS 사태 때 3주간 외박을 못 나가면서 농담 삼아 '자퇴하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OAC가 즐거웠던 게 팀원들과의 호흡이 잘 맞았기 때문이다. 각자 다른 곳에 있던 7명이 한 곳에 모여서 단결력이 좋다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팀들을 보면 그렇게 단합이 좋지 않은데 유독 우리 팀은 단결력이 좋았다.  어딜 가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야 즐겁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아마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했다면 그렇게 즐거웠던 추억은 갖지 못했을 것이다. 


전라남도 장성에 위치한 포병학교의 흔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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