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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Apr 01. 2019

내가 없어도 조직은 잘 굴러간다

(출처: 네이버 영화) 


2002년에 개봉한 영화 어바웃 슈미트.

영화의 내용은 보험회사를 막 은퇴한 슈미트 씨가 제2의 삶을 살아가려 하지만 갑작스러운 아내의 죽음으로 혼자 세상에 남겨지면서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영화이다. 

영화의 초반부에 슈미트 씨는 은퇴 후 자신의 후임이 걱정돼 조언을 해주려 회사를 찾아가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후임에게는 더 이상 슈미트 씨의 조언을 필요하지 않았고 조직 역시 아무런 문제 없이 굴러가고 있었다. 




군대에서 부사관의 역할은 한 부대에 오래 있으면서 그 부대의 전통을 유지하는 것이라 부대를 옮기는 경우가 많지 않고 옮긴다고 해도 연대나 사단이 바뀌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장교는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 따라서 일정 기간이 되면 부대를 옮겨야 하는 것이다. 


장교가 가장 처음 부대를 옮길 때는 바로 고군 교육('OAC'라고 부른다)을 받으러 갈 때이다. 임관과 동시에 초군 교육('OBC'라고 부른다)을 받는 것처럼 대위를 달고 지휘관을 하기 전에 약 5개월 동안 고군 교육을 받으러 다시 병과학교에 입교한다. 육군본부에서 대위 진급발표가 나면 입교 대상자들을 기수별로 나누어서 입교를 시킨다. 


당시 이미 장기복무에 대한 마음이 없었던지라 부대를 옮기고 싶지 않았다. 

사실 동원 부대라서 편할 것 같지만 행정적인 것들이 많고 고인물들이 많아 힘든 건 마찬가지다. 그래도 야전에 비하면 지리적인 이점이 있고 훈련도 적기 때문에 전역 이후를 생각했을 때 여기에 남아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 한 켠으로는 참된 군대를 느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후보생 시절 각오했던 장교의 모습은 병력들을 이끌고 진두지휘하는 그런 것이었으나 여기서는 참모만 하다 보니 밑에 있어봐야 계원 한 두 명이 전부였기에 야전 지휘관의 대한 열망이 있었고 OAC에서 뭘 배울 지도 궁금하기도 했다. 


OAC 기수가 편성이 된 결과를 보니 대략적으로 OAC 교육이 끝나고 복무기간이 1년 9개월 정도 남아 있었다. 지휘관의 최소 보직기간이 1년 6개월이기 때문에 들어가면 뺴박으로 지휘관을 할 것 같았다. 게다가 초급장교 시절에 수도권에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강원도로 갈 것이라 예상했다.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실리적은 것을 택하기로 했다. 

다음 날 연대 인사과장에게 찾아가 OAC를 안 가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황당했다.


'그걸 왜 이제 말해?'


분명 어제 발표가 나고 하루 정도 생각을 해보고 말했는데 뭐가 그리 늦었다고 그러나 했다. 알고 보니 어제 아직 OAC에 안 들어간 선배 중 한 명이 기수를 바꾸고 싶다고 요청을 해서 연대장님께 보고하고 고생해서 바꿔놨는데 왜 그걸 자신이 또 해야 되냐는 것이다. 

평소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이라 도움을 바라지도 않았기에 긴 말 안 하고 그냥 대대로 돌아왔다. 혹시나 해서 육군 보임 장교(OAC 기수를 편성하고 부대를 배정하는 역할을 한다)에게 전화를 걸었다.


"충성! OO사단 중위 OOO입니다"


"어? 무슨 일인데?"


"다름 아니라 OAC를 안 갈 수 없나 해서 전화했습니다."


"너 부대 어딘데?"


"OO사단입니다."


"거기 동원사단이지? 야 니 동기들은 야전에서 고생하는데 너만 편하려고 거기 남아 있으려고 하면 되냐?"


반박하고 싶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마지막 희망으로 대대장님께 가서 말씀드렸다. 대대장님 입장에서는 부대에 있던 사람이 계속 있는 게 부대 지휘하는데 편하기 때문에 도와줄 것이라 생각했다. 대대장님이 육군 보임 장교한테 전화를 걸었고 결론은 '인력이 부족해서 안 된다.'였다.


아니, 복무연장이나 장기복무 신청자들은 안 받아주면서 인력 부족 타령하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싫지만은 않았다. 어차피 해보고 싶었던 것이기에 마지막을 불사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OAC를 가는 날을 기다렸다. 


장기 복무도 포기하고 부대를 떠날 날까지 받고 나니 말년이 된 기분이었다. 이제는 후임을 키워야 한다는 명목으로 업무들을 점차 넘기고 있었다. 덕분에 칼퇴도 많이 하고 체육활동도 많이 했다. 그래도 업무시간에 해야 할 것들은 했다. 

훈련 중이라 이런 장대한 배웅은 없었다


전출을 가는 날은 애석하게도 훈련 날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전출 전날까지 훈련을 뛰다가 가는 것이다. 전출 신고를 하고 남들은 다 훈련하는데 혼자 나간다는 게 뭔가 찜찜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짜릿한 기분도 있었다. 학창 시절 남들 다 야자 하는데 혼자 허락받고 빠지게 되는 기분이랄까? 


숙소로 돌아가 짐을 다 싸놓고 이사할 차가 오길 기다리면서 창밖을 바라보는데 이제는 기분이 먹먹해졌다. 그동안 정들었던 공간, 정들었던 사람들과 헤어진다는 것은 마냥 기쁜 일이 아니다.  

후임도 어느새 중위가 되었지만 혼자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됐다. 전출 일자가 정해지면서 마음이 떠서 제대로 처리 못 한 것들이 많았기에 나중에 뭐 물어보려고 전화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출 후로 후임한테 전화 온 적은 없었다. 당시에는 대대에서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서 공백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공백은 누구나 채울 수 있는 것이었다. 그동안 전출자가 생기면 남은 사람들이 좀 힘들어도 어찌어찌 굴러가는 것을 봐왔지만 막상 내가 없어도 잘 굴러가는 것은 느낌이 달랐다. 


영화 <어바웃 슈미트>에서 슈미트 씨가 은퇴 후 후임이 도움이 필요할까 봐 찾아갔지만 아무런 도움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의 기분이랄까 



사실 누구 하나 없다고 부대가 안 돌아가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개인의 입장에서는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는 게 기쁜 일만은 아니다. 나는 그저 그 조직에 스쳐가는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은 약간 서글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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