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기

서른 전에 가는 여행:철원

철원

by 캡틴

실망스러운 산정호수를 빠져나와 목적지를 철원군청으로 찍고 스타렉스를 몰았다. 산정호수는 포천이지만 철원이랑 가까운 곳이었고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보통 군 단위의 도시들은 군청을 중심으로 발달해 있는데 그래 봤자 있는 건 별로 없다. 베스킨이나 던킨만 있어도 다행이다. 철원 역시 그냥 군부대 많은 지역의 느낌이 물씬 났다.

군청에 주차를 하고 짐칸에서 스쿠터를 내린다. 차가 있는데 뭣하러 스쿠터가 필요한가 싶지만 스쿠터로 다니는 것과 차로 다니는 것은 천차만별이다.

스쿠터를 타면 차에선 볼 수 없던 풍경들이 보인다. 밭을 매는 농부, 마당에서 혀를 길게 늘어놓고 헥헥 거리는 흰둥이, 하천에 사뿐히 발 담그는 백로, 그리고 스쳐가는 시골냄새.

어디서든 멈출 수 있고 어디서든 풍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물론 위험성도 있지만 여름 여행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느낌이다.


좋아. 일단 먹고 출발하자.

철원막국수2.jpg

근처 맛집 중에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막국수였다. 막국수는 춘천이 유명하다지만 요즘 시대에 지역에 한정된 메뉴는 거의 없다. 일단 오래된 건물이 초입부터 뭔가 맛집 분위기가 물씬 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손님들이 여기가 맛집임을 증명해준다.

손님도 많은데 혼자서 4인용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으니 나처럼 혼자 온 손님과 겸상을 시켜준다.

맛은 뭐 그냥 씹는 걸 까먹게 되는 맛이랄까? 그냥 들이마신 것 같다. 존맛.


곱빼기로 든든해졌으니 이제 주변에 뭐가 있는지 둘러본다.

다부연폭포2.jpg 다부연폭포

군청 가까운 곳에 있는 다부연폭포.

폭포라곤 하지만 재인 폭포를 보고 와서 그런지 감흥이 떨어진다. 주변도 너무 황량하다. 이래서 처음부터 너무 센 걸 들이대면 안 된다. 웬만한 건 시시하게 돼 버리니까.


직탕폭포1.jpg 직탕폭포

그다음은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라는 직탕폭포.

개인적으로 이런 호칭을 싫어한다. 한국의 그랜드캐년, 한국의 메시 뭐 이런 거.

미국의 직탕폭포가 더 재밌을 거 같다.

그래도 약간 나이아가라 느낌이 나긴 한다.

도피안사1.jpg 도피안사

그다음은 철새도래지 가보자.


가는 길에 도피안사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름을 들어선 절 같은데 특별한 게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지금 아니면 또 언제 가볼까 싶어서 한번 들러본다. 입구에서 차량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보고 그래도 이륜차라고 세워두고 걸어 올라간다. 땀 흘려가며 가보니 역시나 특별한 건 없다. 나름 역사가 있긴 하지만 그냥 작은 절이다.


SAM_0834.JPG

다시 스쿠터를 타고 흘린 땀을 날린다. 마음 같아선 헬멧을 벗고 싶지만 땀 좀 식히다가 차갑게 식은 시체가 되고 싶지는 않다.

사거리에 빨간불이 켜져 브레이크를 잡는다.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오래된 동네다. 세월의 풍파를 맞아 온 약방 간판이 눈을 사로잡는다.

노동당사3.jpg 노동당사

철새도래지로 들어가는 민통선 부근에 왔다. 민통선 앞에 아직도 자리 잡은 폐건물이 눈을 사로잡는다. 어딘지 몰라도 알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건물 앞에 뙤약볕을 맞으며 공양을 드리는 스님이 그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그냥 일반 건물 같지 않다는 느낌에 안내판을 찾아본다. 해방 후 한국전쟁 때까지 쓰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으로 죽어간 노동당사라고 한다. 왠지 섬뜩한 기분이 드는 건 기분 탓이 아니었다.


철새도래지로 가기 위한 민통선 앞에 군인이 지키고 있다. 예전에 민통선 안에서 스쿠터를 본 적이 없었는데 출입을 통제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통선으로 가서 이 더운 날 수고하고 있는 용사에게 말을 걸었더니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다.

스쿠터든 자전거든 오전까지 미리 신청하지 않으면 통과를 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난 사전 신청을 안 했고 내일 다시 올 수도 없었다.


생소한 느낌이다.

2주 전만 해도 공무원증을 제시하며 그냥 통과하던 민통선이 이제는 나에게도 적용된다.


전역 전날 자른 머리는 아직도 안 자랐는데 이제는 민간인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춘천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