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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Jun 16. 2019

포대장은 실망했다



약 5개월의 OAC(고급 군사반) 교육 과정을 수료하고 다시 야전으로 돌아가게 됐다. 

OBC(초급 군사반) 때와는 다르게 이미 군대에 대한 경험이 쌓인 상황이었지만 약간의 걱정은 있었다. 군대가 거기서 거기라고는 하지만 상비사단은 처음이라 초반에 헤매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소위도 아니고 한 개 중대의 지휘관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졌다. 계급과 상관없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적응이 필요하고 실수도 할 수 있는 것인데, 소위 때 실수하면 우습게 보던 시선들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었다.


OAC가 끝나면 약 4일간의 휴식이 주어지고 전입 하루 전 날 미리 부대에 가서 인사를 한다. 규정에는 없지만 하나의 룰처럼 적용되고 있었기에 짐도 옮길 겸 새로운 부대를 찾아갔다. 

2시간 정도 되는 시간을 운전하고 가는데 부대에 가까워질수록 도로는 좁아지고 주변은 산과 논 밭으로 메워지고 있었다. 민통선으로 들어가서 다시 민통선으로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부대에 도착했다. 

위병소를 지나서 부대 안으로 들어가니 전에 있던 부대와 다르게 흙, 나무, 투박한 컨테이너들만이 들어서 있었다. 위병소에서 부대 건물로 가는데 비포장도로라 차가 요동치고 흙먼지가 마구 날렸다. 그래도 다행히 사무실 및 생활관이 있는 건물은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돼 깨끗하고 깔끔했다. 


부대는 마침 전투휴무(근무시간보다 초과하여 훈련을 할 경우 별도로 휴식을 주는 날)라 조용했다. 하지만 마침 부임할 포대가 즉각 대기라 포대장이 휴무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대대장님도 출근해 있었다. 대대장님께서 나와 전임자에게 차를 한 잔 마시자고 대대장실로 불렀다. 분명 이것저것 물어볼 것이라 생각했는데 에상외로 질문을 별로 하지 않으셨다. 어떠한 분인지 감이 잘 안 잡혔다.

전임자도 사람 인수인계는 안 한다며 대대장님이 어떤 분이라는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으셨다. 


다음날부터 정식 출근해서 약 1주일의 인수인계 기간을 거친 후, 아직 정식으로 대위로 진급한 것은 아니지만 직책 계급장을 먼저 달고 포대장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군대에서는 진급 예정인 사람은 다음 계급 뒤에(진)이라는 글자가 붙으며 아직 진급한 것이 아니기에 계급장은 이전 계급장을 달고 다닌다. 예로 들면 대위 진급 예정인 사람은 대위(진)이라고 부르며 계급장은 중위를 달고 다니는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직책 계급장을 갖는 경우인데, 보통 진급 예정자가 지휘관을 맡는 경우 이 직책계급장을 달게 된다. 모자에 달고 다니는 계급장을 좀 더 빨리 다는 것이다.)


정식으로 이취임식을 마치고 상비사단에서의 두 번째 군생활이 시작되었다.

포대장을 달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나 혼자만의 사무실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동원사단에서는 단독 사무실을 쓰는 사람은 연대 작전과장과 대대장, 연대장 밖에 없었고 참모 업무를 하면서 항상 해당부서의 과장의 감시하에 업무를 했었는데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혼자서 업무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감회가 새로웠다. 

하지만 그런 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동원사단에 있으면서 야전부대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1개월이 지나면서 금방 실망하게 되었다.  

역시 중대장은 실망해야 제맛인 거 같다. 


1. 용사들의 체력 수준이 좋지 않다. 

우리는 학군단 시절 간부가 용사들보다 체력이 안 좋으면 창피한 것이라고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항상 특급을 목표로 하고 체력단련을 해왔다. 때로는 특급 이상의 체력을 요구받기도 했다. 

그래서 그 시절엔 용사들은 군대에만 있으니까 당연히 체력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부대에 갔을 때 그렇게 체력 수준이 좋지 않았다. 첫 부대는 동원사단이니까 그런 건가 싶었는데 야전부대라고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체력이 좋은 용사들도 몇 명 있지만 그것은 10% 정도밖에 안되고 나머지는 2급에 들어오는 것도 힘겨워했다. 심지어는 진급측정 기준 체력도 안 돼 진급 누락할 정도로 심각한 용사도 많았다. 개인 여과 시간에 운동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덕분에 용사들 앞에서 체력으로 창피할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약간 이해하는 게 경계근무, 작업 등의 사유로 열외 하다 보면 체력단련 시간이 온전히 보전되는 경우가 많긴 했다. 하지만 군인이라면 당연히 체력이 좋아야 한다는 소신 때문에 그대로 둘 순 없었다.


2. 임무수행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 

체력은 그렇다 쳐도 야전은 훈련이 많으니까 그래도 임무수행능력은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대도 빗나갔다. 첫 훈련을 가서 용사들의 임무수행 능력을 확인하는데 기준 시간 안에 들어오는 경우가 없었다. 그냥 못 들어온 게 아니라 한참 못 미쳤다. 처음에는 훈련을 안 한지 오래됐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정말 전쟁 나면 어떡할지 걱정이 되었다.  


3. 내가 봐도 나는 부족했다. 

야전부대에 처음 갈 때 걱정이 되면서도 '동원사단에서 굴러먹던 짬밥이 있는데 뭐 있겠어?'라고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야전부대와 동원사단은 완전히 달랐다. 참모와 지휘관은 또 달랐다. 

지휘관으로 야전부대에 온다는 것은 데리고 있는 병력들과 전투를 치를 수 있기 때문에 정말 많이 알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동원사단에는 포대(중대)라는 개념이 없이 대대 단위로 흘러가다 보니 포대라는 것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랐다. 병력들을 운용하는 것도 서툴렀고 포대의 주 무기인 화포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나중에 생각하면 정말 기본적인 것이었는데도 그때는 몰랐다. 그러다 보니 병력들 앞에서 창피당할 일도 있었고 자존심 구길 일도 생겼다. OAC때 좀 더 공부할걸 하고 후회하기도 했다. 용사들의 임무수행 능력을 뭐라 할게 아니라 나부터 임무수행 능력이 안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전역할 거라고 대충 한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부족한 점을 메우려고 노력했다. 전역 여부와 상관없이 내 직책에 있어 쪽팔리고 싶지 않았다. 지위가 올라가면 그냥 따라가는 게 아니라 그 지위에 맞게 갖출 필요가 있었다.   


웹툰 갸오오와 사랑꾼들의 한 장면(출처 : 네이버 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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