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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Aug 16. 2019

귀신이 보입니다

중대장의 병영일기

토요일 오후 4시. 한참 늘어질 시간. 

면담을 위해 정수(가명)를 포대장실로 불렀다.

정수는 경례를 하고 살짝 미소 지으면서 앞자리에 앉았다.

부임 초기에 가장 우선적으로 병사들의 신상관리를 해야 했기에 생활지도 기록부 상 관심병사로 되어있는 그를 불렀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그가 단순히 관심병사여서가 아니었다.  

그는 여러 가지 이유로 관심이 필요한 병사로 되어있지만 그의 표정에는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미 상병이었고 군에 적응할 만큼 했다. 게다가 차기 분대장으로 거론될 만큼 일도 잘하고 있었다. 

그를 불러낸 진짜 이유는 그가 관심병사로 된 사유 중 하나인  '귀신'을 본다는 것 때문이었다. 

작년에 납량특집으로 군대에서 귀신 본 이야기를 하면서도 언급했었는데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그는 귀신을 본다고 했다. 


살면서 자신이 귀신을 본다는 사람은 이 친구가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학창 시절 같은 반 여자아이였는데 그다지 친하지 않아서 귀신 본 썰을 들어보진 못 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귀신을 본다는 이 친구한테서 생생한 경험담을 듣고 싶었다. 혹시나 이 친구한텐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해서 처음에는 다른 이야기로 면담을 진행하다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생활지도 기록부를 보니까 귀신을 본다고 적어놨는데 혹시 요즘도 그러니?"


그는 특유의 덤덤한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옛날엔 좀 자주 보고 그랬는데 요새는 그렇게 잘 보이진 않습니다."


 "혹시 뭐 별로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 같은 거야?"


그는 웃으며 말했다. 


"뭐 아무렇지 않습니다. 가끔 생활관에서 무서운 이야기할 때 보따리 하나씩 풀곤 합니다."


"그러면 최근에 귀신 본적 있어?"


"지금도 가끔 보이고 합니다."


"그래? 부대에서도 봤어??"


"몇 번 보긴했습니다."


"그게 언제였는데?"


"제가 일병 초쯤이었나......."





정수가 일병 시절 야간 위병소 근무를 서고 있을 때였다.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 초여름이지만 강원도의 밤은 아직 쌀쌀했다. 웬만하면 사람이 오지 않을 시간이지만 사수가 말이 없던 선임이라 아무 말 없이 근무를 서고 있었다. 위병소 앞은 왕복 2차선 도로에 가로등 하나 없이 산과 논밖에 없어서 암흑이었다. 심심해서 그냥 밖을 바라보고 서서 근무 복귀하면 라면 먹고 잘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허리쯤 오는 작은 물체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혹시 고라니나 너구리 같은 것이 내려온 것이 아닐까 했지만 그것은 꼬마 아이였다. 

단발머리를 한 아이는 혼자 놀고 있었는 듯 위병소 앞을 왔다 갔다 거렸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


조심스레 사수를 보았는데 사수는 부대 안쪽을 바라보며 아무 말없이 근무를 서고 있었다. 

정수는 그것이 사람 형태이지만 사람이 아님을 알았고 괜히 말 꺼내 봤자 사수한테 욕먹을까 봐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얼마 동안 그 형태는 위병소 앞을 왔다 갔다 거렸고 그는 곁눈질로 볼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그 형태는 사라졌고 아무 일 없이 지나간 것에 대한 안도를 했다. 

긴장이 풀려서인가 잠이 오기 시작했는데 괜히 졸다가 선임한테 욕먹을까봐 초소 물품 체크를 하고 있었다. 

위병 일지를 확인하고 사경도를(초소에서 전방을 바라봤을 때 보이는 전경을 사진이나 그림으로 만들어 놓은 것) 체크한 뒤 플래시의 불이 들어오는지 보려고 했다. 

그런데 플래시를 켜는 순간 위병초소 구석에 쭈그려 있는 그 아이가 보였다. 


"아 씹!!"


너무 놀란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온 욕설이 세어 나오며 플래시를 떨어뜨렸다. 사수가 무슨 일이냐고 묻었고 손이 미끄러져 플래시를 놓쳤다고 둘러댔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근무를 섰다. 

아니 근무가 끝날 때까지 거의 눈을 감고 있다시피 했다. 귀신을 본다고 그들이 안 무서운 것은 아니다. 아니 무섭다기 보단 소름 끼친다. 

혹시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눈길이 가서 눈이 마주친다면, 어린 시절 다리를 질질 끌면서 따라온 그 귀신처럼 주위를 맴돌까 눈을 뜰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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