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그들의 삶은 납작하지 않다

독립영화 '3학년 2학기'에 대한 단상

by Jay

한 친구로부터 내가 꼭 봤으면 하는 작품이 있다고 하여 드디어 관람하게 된 영화 '3학년 2학기'. 제목만 얼핏 들었을 때는 서른 두 살 누군가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내가 지나온 학창 시절을 이렇게 다시 떠올리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 작품은 직업계고 3학년 학생들의 현장실습과 졸업 후 삶을 담담하게 따라가는 독립영화다.


그간 직업계고 학생을 소재로 한 영상물은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부정적인 이미지에 초점을 맞춰오거나, 현장실습생의 죽음을 부각해 국민들의 공분을 사는 소재로만 활용되곤 했다. 그 속에서 학생들은 사회 노동 문제의 납작한 존재로만 소비되어 왔다. 한때 직업계고 학생은 비행 청소년이라는 공식이 팽배했던 시절에 비하면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입체적이지 못하다.


돌이켜보면 직업계고 학생이 미디어에 등장하는 방식은 늘 비슷했다. 위험한 산업 현장, 사고 후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음에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부모에 이르기까지. 카메라는 그들의 고통을 포착하는 데는 능숙했지만, 그 고통 바깥의 일상에는 좀처럼 렌즈를 가져다 대지 않았다.


일하면서 친구와 나누는 농담, 처음 기계를 다뤄보는 설렘과 긴장, 졸업 후 낯선 직장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는 관심이 적었다. 주로 피해자이거나 문제적 존재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 틀 밖에서 직업계고 학생을 바라본 작품이 얼마나 있었던가.


이란희 감독은 달랐다. 아니 특별했다. 감독은 현장실습 중 사고를 당한 유가족을 만나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했다. 그 출발점이 묵직함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비극적 사건을 감정적으로 분출하지 않는다. 새로운 관점에서 우리 직업계고 구성원들의 일상사를 수면 위로 올려준 소중한 연출가다. 영화는 주인공 창우와 우재 등 인물들의 일상을 통해 직업계고 출신자들이 마주하는 삶의 단면을 지극히 담백하게 그려냈다.


자극적인 단일 사건에 매몰되지 않고 삶의 궤적 자체를 깊이 있게 조명한 점, 그리고 그 절제된 시선이 내게는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하다 사망한 '수호'의 죽음조차 영화는 깊이 파고들거나 극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그저 삶의 한 모습으로 담담하게 흘려보낼 뿐이었다.


흥미로우면서도 서글펐던 지점은 영화 속 직업계고와 학생들의 모습이 20여 년 전 내가 공고를 졸업했던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는 감독이 현실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포착했는지를 방증하는 동시에, 그 현실이 20년이 지나도록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씁쓸함이기도 했다. 바뀐 것이라곤 조금 더 세련되게 바뀐 교명과 현장실습 중 노무사의 노동권 침해 관한 점검 절차가 추가된 정도랄까.


상영 중 관객들은 장비가 돌아가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낮게 속삭였고, 창우가 그라인더에 손을 다친 순간에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반응은 산업 현장의 노동을 낯설고 위험한 것으로만 여겨온 우리 사회의 무의식을 드러내는 지점이었다. 산업 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인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이 노동의 현장을 화면을 편집없이 긴 호흡으로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만약 이 영화가 제도적 허점을 파고들었다면 고발 다큐나 르포가 되었겠지만, 이 작품은 철저히 학생의 삶 그 자체에 집중한다. 극 중 교사의 취업 안내 방식이나 햄버거밖에 사줄 수 없는 추수지도 장면 등 나의 입장에서 깊게 파고들어 논의하고 싶은 내용이 있었지만, 그것은 영화가 아닌 정책의 언어로 풀어야 할 과제였다. 영화의 담담한 호흡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나의 관점과 잣대를 잠시 내려놓을 필요가 있었다.


사실 나는 이 영화 속 풍경이 낯설지 않다. 공고를 졸업하고 산업기능요원과 대학을 경험했으며, 지금은 직업계고 교육을 연구하고 있다. 그 여정 속에서 만난 수많은 '창우'와 주변인을 떠올리면 그들이 실패한 사람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다만, 세상이 그들의 성실함을 성공으로 읽는 언어를 갖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반가웠고, 동시에 이런 영화가 이제야 나왔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흥미로운 장면도 목격했다. 적지 않은 관객이 이 영화의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창우는 자신을 다치게 하고 힘들게 하는 중소기업 공장에 남아 지게차를 운전하고, 야간 대학을 다니며 잠을 푹 자는 것이 소원이라 말한다. 관객들은 창우를 보며 희망보다 절망과 답답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영화를 본 일부 교육계 관계자들이 이 작품으로 인해 직업계고 기피 현상이 오히려 심해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는 이야기도 전해들었다. 그간 직업계고와 관련된 현실이 오해를 바탕으로 대중에게 전파되어 온 것을 몸으로 느낀 경험자들의 이야기니 간과해선 안 될 소중한 의견이다. 그럼에도 내가 주목하는 것은 직업계고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논의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이고, 이들의 삶이 계속 드러날수록 낯설거나 특별한 시선이 아닌 우리 이웃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다.


생각해 보면 관객들이 창우의 결말을 절망으로 읽은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 좋은 삶의 기준을 명문대 진학, 대기업 취업 등 가시적인 상승으로만 그려온 탓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그 기준으로 보면 중소기업에서 지게차를 몰고 있는 창우의 마지막 장면은 제자리걸음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시선이야말로 이 영화가 조용히 그려낸 중요한 메시지였다.


직업계고 학생으로, 과거 어린 노동자로서 창우의 결말은 달리 보였다. 낯선 현장에서 성실히 뿌리를 내리고 적응해 나가는 창우의 모습 그 자체가 충분히 훌륭한 결말이었다. 틈틈이 기타를 연주하며 흩어진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일터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며 자기 자신을 만들고 세상의 질서에 맞춰 나가는 것.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값진 전진이라 말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거나 혹은 고착된 삶으로 보일지 모르는 그 일상이, 사실은 우리가 그토록 지켜야 하는 직업계고 학생들의 소중한 '삶'이라는 것을 이 영화가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직업계고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조금 더 넓어지기를, 이 작고 진중한 영화가 그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image.png 포스터 출처: 씨네21 홈페이지(https://cine21.com/movie/info/?movie_id=6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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