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工高)를 공고(公告)합니다(9)

현장실습 이야기 1

by Jay

어떤 기억은 바람에 날리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마모되지 않고, 오히려 단면을 드러내며 생생히 살아남는다.


전기과 사무실을 지나던 7월의 어느날, 내 발걸음이 멈춘 것은 기둥 너머 새어나오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제도 실습실을 가려면 이 곳을 지나야했기 때문에 다른 과에서 일어나는 내밀한 일들을 수집하기가 좋았다. 두 사람의 언성이 높아지며 위태로운 기류가 감지되자, 나는 본능적으로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나는 상당히 오래간만에 새로운 '민낯'과 대면했다. 현장실습 기간을 채우지 않은 한 선배와 부장교사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아니 학교에서 추천한 회사인데 그렇게 중간에 회사에 말도 없이 도망나오면 어떻게 하냐"

"잔업에 야근시키고, 계속 무거운 것만 나르라 하고 단순 조립만 해요. 좀만 쉬고 있으면 일 배우러 와서 똑바로 안하고 뭐라하고요."

"이녀석아 대기업도 똑같아. 남의 돈 받는 게 힘든겨. 니네 선배들도 다 그렇게 버텼어.

사회생활이 쉬운줄 아냐"

"택배 뛰어도 하루에 7만원은 주는데, 이건 최저 시급도 안되고 너무하잖아요, 진짜.

그리고 거기서 학교 선배 하나 만났는데요. 그냥 대학가라고 하더라고요."

"무슨 소리여 이게? 회사랑 학교 그리고 너랑 약속이라는 걸 했잖아. 이것도 계약이라고. 그리고 네가 조금만 더 참았으면 거기서 제대로 된 일도 시켰을거 아냐?

처음부터 중요한 일을 맡기는 회사가 어딨냐."

"하, 쌤. 잔업이랑 특근은 계약 안 했어요. 그 선배가 대졸 신입이 4년차인 자기보다 월급 더 많이 받는대요. 짬밥 인정받는 것도 아니래요. 자긴 한 푼이 아쉬워서 못 때려치는데,

저보고 동생 같아서.. 그냥 힘들어도 대학 가는게 맞대요. 그냥 저도 2년제라도 가는게 나을 것 같아요."

"그런 태도로 하면 다른 회사 소개는 어려워, 알어? 너네 취업시키려고 학교에서 이리뛰고 저리뛰고 얼마나 고생하는데 짐 좀 나른다고 그거 하나 못버티냐. 참을성이 그렇게 없어서 사회 생활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2004년 7월경, 일기를 바탕으로 그 날을 회상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두려움인지, 분노인지, 혹은 아직 이름을 붙이지 않은 또 다른 감각인지 알 수 없었다. 선배의 목소리는 높아졌지만, 단순히 치기 어린 투정은 아니었다. 고함치는 사람보다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의 목소리가 더 무겁게 와닿는 다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다.


당시 공고에서 현장실습*은 학교와 연계된 기업에서 짧은 시간동안 실무를 익히도록 마련된 제도였다. 노동이라는 광야에 나가기 전, 맛보기 시간 혹은 최종 간보기 단계로 여겨졌고 학생들 사이에선 공장체험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무대의 뒤를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랐다.


기업의 입장에서 현장실습 기간은 너무 짧았다. 자신들의 방식대로 사람을 훈련시키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 방식은 자연스럽게 하나로 수렴됐다. 가르치는 대신 '활용하는 것'이었다. 실습이라는 교육적 외피 안에 단순 반복 노동이 하나씩 채워졌다. 실습생들은 현장에서 자재를 나르고, 컨베이어 앞에서 같은 공정의 조립을 반복하며, 야근을 요청받으면 거절하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졌다. 기업은 말 그대로 실습생들에게 날 것의 현장 그대로를 보여주었다. 체계적인 교육을 해야할 이유는 물론이고, 어떻게 해야할지도 분명하지 않다. '인재 경영'은 지금 당장 납기와 생산물량을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떤 기업에게는 꿈꾸기 어려운 영역이 되기도 한다.


학교의 논리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실무 조기 적응이라는 교육적 명분은 분명했으나, 현장의 작동원리는 달랐다. 실제로는 단기 노동 인력 확보라는 산업계 논리에 누구보다 충실히 편승할 수 밖에 없었다. 학생들의 전공과 상관없는 회사나 타 분야에 학생들을 파견하는 등 구조화된 노동시장 질서에 편입시켰다. 실습생 입장에서 어떤 일을 배웠느냐보다, 학교에서 동의를 받은 어디에 가서 '무사히 실습'을 이수했느냐가 먼저였다.


그 해 어떤 회사에서 현장실습생을 받느냐에 따라 실습의 질이 달라지기도 했다. 기업을 발굴하는 일도 결국 담당교사와 학교의 동문 네트워크 등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제도는 존재하나 기준은 없었고, 명확한 기준이 없으니 경험의 격차는 학생마다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어떤 학생은 전공을 조금이라도 살렸고, 누군가는 전공과 무관한 곳에서 박스를 날랐다. 그 차이를 만든 이유는 학생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저 현장실습생도 이러한 구조 속에서 산업체가 요구하는 규율을 당연시하며 내면화해야하는 어린 노동자였다. 그리고 조직의 방침을 무난하게 순응하는 구성원이 되어야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는 곧 그 회사로의 채용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선택지이고, 아직 사회생활을 배우는 현장실습생에게 주어지지 않은 권리 중 하나다.


'그 선배'는 현장에서 다시 학교로 복귀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돌아올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계약서에도 없던 잔업과 특근, 전공과 무관한 단순 노동, 그리고 공장에서 만난 학교 선배의 조언. 그 모든 것을 저울질한 끝에 그는 스스로 복귀를 결정했다. 누군가는 그것을 포기라 불렀다. 그러나 그는 계약서를 읽을 줄 알았고, 현장에서 만난 선배의 말을 흘려듣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가 돌아온 자리에는 고생했다는 위로 대신 낙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저 참을성 없는 놈이라는 말이 끊임없이 그를 따라다녔다. 다른 회사 소개도 어렵다는 말도 뒤따랐다. 더 무거운 일은 그의 복귀로 인해 후배들이 그 회사에 갈 수 있는 길이 막혔다는 짐까지 짊어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결정이 공동의 부채로 분배되는 구조는 열여덟의 어깨에 얹기엔 깨나 무거운 것이었다.


구조의 문제는 드러나지 않았다. 의도된 침묵 속에서 모든 원인은 개인의 부족으로 귀결되곤 했다. 제도는 그렇게 자신의 민낯을 조금씩 장막 속에 숨었다.


이것은 그 선배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실습생 신분으로 '용기'를 내는 순간 되바라진 놈으로 분류되다 보니 야간 잔업, 주말 특근 등을 거절하면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없었던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으니 떠나는 것이 기회비용 차원에서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었다.


그 날 나는 기둥 뒤 대화를 듣느라, 실습 수업시간에 지각했다. 하지만 그 예정에 없던 '수업' 덕분에 내가 나아갈 세계의 윤곽을 처음으로 가까이 마주했다. 특히 현장에서 만난 학교 선배의 대학 진학 권유는 어떤 진로 상담보다 실감났다. 같은 조류를 먼저 헤쳐 나간 사람의 말은 무게가 달랐다. 단순 정보가 아니라 증언이었다. 자신은 한 푼이 아쉬워 못 떠난다면서도, 동생같은 후배에게 다른 길을 권하는 목소리에는 체념과 애정이 동시에 담겨있어 진정성이 느껴졌다. 이런 복잡다단한 구조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교사의 상담에도, 교과서의 내용 속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지역의 공고 현장실습생이 안전사고를 당했다. 뉴스는 며칠간 그 사건을 다뤘고 제도는 사실상 중단되었다. 물론 산업현장에 크고 작은 사고가 나는데 그럴 때마다 제도의 존폐가 위협받는 것은 아니다. 제도를 멈춘 것은 작은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이었다. 2005년 이후에도 현장실습 중 사망한 학생은 내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8명이다. 그들의 이름은 제도 개정의 이유로만 기록되었다.


결국 나는 학창시절 중 실습을 나가지 못했고, '기업인과의 만남'이라는 시간으로 대체되어 현장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접할 수 밖에 없었다.


현장실습이라는 제도는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개정되고 보완되었다. 표준 협약서가 도입되었고, 인권 교육이 강화되었으며, 현장 지도 교사의 역할도 제도적으로 규정되었다. 제도가 다듬어지는 과정 뒤에는 언제나 어린 노동자들의 인생이 담보되어 있었다.


여전히 기둥 뒤에 서야 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공식적 언어로는 담기지 않는 현실, 계약서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어린 나이로 버텨야 했던 구조의 무게까지.


나는 당시 대화를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두려움이었는지 각성이었는지 혹은 두 가지가 뒤섞인 그 무엇이었는 지는 아직도 정확히 정리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날 이후 나는 세상을 이전과 같은 눈으로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덧붙여 기둥 뒤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현장실습생의 이야기가 들려오면 더욱 귀를 기울여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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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Dive


* 현장실습은 1963년 산업교육진흥법(약칭: 산학협력법)이 제정되며 시작되었다. 일자리가 많았던 시절 일꾼들을 채우기 위해 어린 학생들을 노동자로 쓰려고 취업 연령을 고등학생까지 낮추는데서부터 유래했다. 이후 '공고 2+1체제'라고 학교 2년 및 1년 산업체 교육을 통해 학교를 졸업하던 시절도 있었다.


** 현장실습은 같은 시대, 같은 제도 안에서도 다른 방식으로 이 구조를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나의 제도는 하나의 경험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이 글은 그 다양한 목소리 중 하나로 읽혀지길 바란다. 다만 아쉬운 것은 현장실습생들은 여전히 학교도 현장도 아닌 어느 곳에서도 불완전한 존재다.


※ 본문에 삽입된 이미지는 구글 나노바나나2로 생성하였고, 기본적으로 우측 하단에 그려지는 워터마크는 삭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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