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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성실한 학생으로 인정받는 5월: 교실로 찾아온 손님의 구애

by Jay

3학년 1학기가 저물어갈 무렵, 여름방학을 앞둔 시기가 되면 교실에는 평소 보기 힘든 손님들이 드나들기 시작한다. ‘교수님’이라는 직위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분들이 오는 시간은 '학교 설명회'라고 불린다. 공고에 무슨 학교 설명회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여기에 숨겨진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다. 참고로 정말 신기하게도 어떤 회사도 공고에 리쿠르팅을 목적으로 방문하거나 '설명회'를 진행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일단, '학교 설명회'를 주관하는 교수님들은 단정한 복장에 한 손엔 팸플릿, 다른 손엔 기념품이 가득한 에코백을 들고 온다. 그들은 교실 뒷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와, 평소 우리가 받아보지 못한 따뜻한 미소를 건넸다.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동시에 학교 이름이 박힌 작은 수첩과 포스트잇, 그리고 볼펜, 이어 전단지를 나눠주곤 했다.


전단지 첫 장엔 “취업률 100%”, “삼성, 엘지, 두산 등 대기업 00명 합격” 등과 같은 화려한 문구가 쓰여있었다. 학과 명칭엔 당시 유행하는 말이 죄다 들어있었다. ‘첨단’, ‘하이테크’ 등 외우기도 힘들고 남에게 설명하기도 어려워 보이는 이름들. 많은 이들이 학과를 선택할 때 명칭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런 듯 했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이 실감났다.


이분들이 우리에게 애정어린 눈빛으로 이야기 하는 유형은 대략 이렇다.


“현재 내신은 몇 퍼센트인지? 아니다. 몰라도 괜찮다, 반에서 몇 등 정도 하고 있는지”

“동일계 진학이 가능하니, 우리 대학에 입학하면 좋다. 열심히 하면 대기업에 갈 기회가 생긴다”

“젊을 때 캠퍼스 생활 열심히 하면 장학금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인상도 좋고, 성실해 보이는데 우리 학교와서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인재가 될 것 같은 상이다”

“저렴한 등록금으로 2년제 졸업하고, 공부 더 하고 싶으면 나중에 4년제로 편입해서 열심히 하면 된다”

“우리 학과는 미래가 보장되어 있고 선배들도 많이 있으니 열심히 배울 수 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 그것도 평소 만나보기도 힘든 교수라는 분들은 생면부지인 우리를 무한히 칭찬해주고, 학생들을 알아가며, 많은 것을 주고자 했다. 그런데 항상 '열심히'라는 말이 들어있었다. 마치 열심히만 하면 세상 모든 문이 열릴 것만 같았다.


어쨌든 누군가의 칭찬에 익숙지 않은 우리는 이 넘치는 관심에 어쩔 줄 몰라 했고,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뻔뻔하게 “감사합니다", "교수님도 인상 좋고, 잘생기셨어요”, “저 그 학교 들어봤어요”라며 심장이 오글거리는 답변으로 그 분들과의 대화를 겨우 이어 나갔다. 그들의 모습은 선거철 지역 정치인의 유세 활동과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유독 이 분들에게 극진했다. 처음엔 대학교수라는 대단한 분들이 와서 그런 줄만 알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른 곳에서 온 손님이다. 우린 학교의 주인이고, 알겠지? 예의 없게 굴면 절대로 안된다. 주인은 주인답게 굴어야 하는거다. 우리 학교에 대한 이미지가 이 순간에 정해지는 거야, 다들 이해했지?"

"특히 C 이놈자슥아, 무례하게 장난치지 말고! 너를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당황하겠냐!"


공고에서 ‘외부인’과의 만남은 우리의 첫 인상을 만들고, 평판을 축적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신신당부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본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종이 치자마자, 문 밖을 나가는 담임 선생님을 따라가며 슬쩍 물어보았다.


“쌤, 근데 저 분이 그렇게 대단한 분이에요?”

"우리 학교쌤들도 중학교 졸업 시즌에 우리 학교 오라고 홍보를 나가거든."

"아..."

"근데 그게 참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있어. 우리도 참 어려움이 많다. 같은 교사들끼리인데도 차별하고, 문전박대 하는 사람들도 있어. 원자야, 사람이 항상 입장 바꿔 생각해야 돼. 인간이 먼저 되어야 한다. 살아가면서 꼭 마음속에 새겨야 한다.”



인간이 된다는 것. 공공선을 지켜가며 살아간다는 것. 참으로 어려운 개념이라 생각한다.

당시 선생님은 교수님들이 오면 늘상 박카스 한 병을 드리며, “우리 애들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인사까지 덧붙였다. 선생님의 마음이 가득 담긴 박카스 병은 유난히 반짝거려 보였다.


교수님은 전공 소개를 시작으로, 학과의 취업률 자랑,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대기업 혹은 대기업에 수준의 연봉을 주는 중견기업에 들어간 선배 이야기, 우리 학교 선배들도 많이 다니니 적응하기 좋다는 말, 캠퍼스 생활 해보고 싶지 않냐는 권유. 우리 학교 시설 좋다. 나중에 졸업하고 동일계 4년제 편입하기도 좋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냈다. 그리고 관심있는 사람은 질문하거나, 본인의 명함을 줄테니 언제든 연락하라는 마무리 멘트까지 잊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질문 한 사람의 번호를 반드시 가져간다는 점이다.


무심결에 나도 질문을 했다가 번호를 ‘따이게’ 되었다. 살면서 누군가 내 번호를 이렇게 원한 적이 있었나.

교수님이라는 분이 나가자마자 친구들의 ‘평가’가 쏟아졌다.


“진짜 좋은 학교들은 저렇게까지 안하지 않냐? 머릿수 채우느라 저거 백퍼 낚는겨”

“야 모르는 사람한테 칭찬들으니까 기분 좋다. 아까 잘생겼다던데? 이새끼들 또 좋다고 저런다”

“근데 우리가 진짜 좋으면 왜 A대학(지역 거점국립대)은 왜 안오냐”

“아는 형이 저기 다니는데, 고딩 때랑 존나 똑같다더라. 맨날 고딩때처럼 저녁까지 쇠깎고 캐드만 한다고”

“저 이름도 모를 학교에 학기당 몇백 투자할 바에 취업해서 돈 버는게 백배 낫지”


우리들은 너나할 것 없이 알지 못하는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피드백을 가감없이 쏟아냈다.

낯선 사람과의 만남은 늘상 평가를 불러일으키고, 우리의 결속력을 강하게 이끌어 나름의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해주었다. 우리가 언제 누군가를 평가해보았는가. 그도 짧은 시간 우리를 ‘평가’했겠거니, 우리도 그를 ‘평가’하며 묘한 성취감을 느꼈다. 평가하는 자와 평가받는 자가 서로 자리를 바꾸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우리도 어딘가에서 저렇게 수없이 평가 받고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홀연히 스쳐지나갔다.


이 시간은 늘 아쉬웠다. 무엇을 배우는지에 대한 설명은 공백이고, 대학 생활은 그저 연애하고 자유롭게 술 마실 수 있는 전당에 불과하다는 것, 어떤 과정을 거쳐 취업을 할 수 있는지,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알 수없는 구호만 가득했다. 관심없는 이들에게 학교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번뜩할만한 이야기만 늘어놓기 일쑤였다. 빛나는 포장지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너무 일찍 현실을 빠르게 간파했던 걸까. 그분들이 베푼 친절의 유효기간과 취지를 어렴풋이 간파하고 있다보니, 무관심으로 일관하거나 서로 영혼없는 이야기만 주고 받곤 했다.


우리는 그 학교 정원을 채우기 위한 목표물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우리가 진짜 ‘인재’라면 이렇게까지 찾아 올 리 없다는 웃픈 자기 객관화. 그것은 공고생이라는 낙인을 스스로 내면화하며 자라온 자화상이었다. 칭찬받았지만, 그 칭찬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우리들.


그리고 내 번호를 '따간' 교수님은 그 날 오후 학교 입학 일정과 입학 원서 쓰는 방법이 담긴 하이퍼링크를 문자로 다정하게 보내왔다.


“꼭 학교에서 봅시다, 모르는 것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세요.”


이후 한 주 정도 지나 그는 다시 나의 안부를 묻고, 다가오는 미래를 함께 만들어 나가자는 몽글몽글한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나는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이라는 답장을 보냈다.

그 분이 챙겨준 볼펜과 포스트잇 덕분에 몇 달간 그분의 학교를 생각하고, 학용품 걱정없이 지냈다. 정말 고마웠다. 설령 우리를 대했던 그 날이 진심이 아닐지라도, 그가 베푼 짧은 온정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그 시절의 기억은 여전히 따뜻하다.



※ 본문에 삽입된 이미지는 구글 나노바나나2로 생성하였고, 기본적으로 우측 하단에 그려지는 워터마크는 삭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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