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工高)를 공고(公告)합니다(7)

억울함을 공적 말하기로 저항하겠다는 다짐

by Jay

사람들은 내가 다니는 학교를 통해 나의 사회적 위치를 가늠하려 했다. 아니 세분화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주변 어른들이나 친척들을 만나면 “어느 학교를 다니냐”는 질문이 매번 따라왔고, 그때마다 알 수 없는 긴장과 당혹감이 어김없이 밀려왔다.


“어디 학교 다녀?”

“예, C고(학교명) 다녀요.”

“그래 OO. 20년 전인가? 우리 때, 그러니까 옛날에 박통(박정희 대통령의 준말) 때 거기가 명문이었지. 대통령이 소나무도 심어주고. 그때는 공부 잘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었어. 명문이었지. 지금은 좀 다르긴 하더라고”

"아.. 예"


학교 이름을 말하는 순간마다 정체 모를 낯 뜨거움을 느꼈다. 과거 우리 학교의 사회적 위상을 소환하며 지금의 나를 그 기준선에 맞대 볼 때마다, 옅은 미소 외에는 어떠한 답변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 한마디는 나를 나 자체로 보는 것이 아닌 ‘요즘 공고생’이라는 범주로 납작하게 만드는 듯했다. 명문이라는 예전의 타이틀은 격려가 아니라 오히려 마음을 스치고 지나가는 칼바람처럼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과거 공고에도 좋은 시절이 있었구나 싶었다.


가장 뚜렷한 기억은 개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하굣길 513번 버스에서 일어난 일이다. 버스비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버스기사에게 공개적으로 면박당했다. 평소처럼 교복 마이 안주머니에 교통카드를 꽂은 채 버스를 탔고, 옷을 스쳐 요금 정산기에 카드를 찍어 버스비를 냈다. 분명히 삑 소리를 들었는데, 기사는 이를 믿지않고 재차 다시 결제를 요구했다.


“어이, 학생! 버스비 안 냈잖아, 뭐하는 거야?”

"어이 안경낀 학생"

“저요?”

“그래, (큰 소리로 소리치며) ! 푸른곰팡이, 너, 임마!”

“저 카드 찍었는데요?”

“어디서 그짓말을 해, 그 학교 못 쓰겠네 진짜, 이거 애들 상태 왜 이래?”


늘상 하굣길의 버스는 밀물과 썰물이 오가는 바다처럼 느껴진다. 탑승객들이 물밀듯이 들어오다가 특정 정류장에 이르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그 심난한 파도 속에서 푸른곰팡이가 내가 아니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푸른곰팡이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주민들 사이에서 우리 학교의 교복이나 실습복을 착용한 학생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특히 교복이 청색 계열이라 파생된 호칭으로 추정되지만, 이 불편한 용어의 유래는 불확실하다. 과학 시간에 음식에 푸른곰팡이가 끼면 독성이 생겨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배운 기억이 있어서인지, 나는 이 말이 달갑지 않았다.


image.png 실제 교복 사진(2005년, 본인 소장)


어쨌든 나라는 존재는 단번에 무명의 '어이'와 ‘푸른곰팡이'라는 대명사로 정리되었다. 버스 기사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본인 스스로도 모르게 내면화된 언어를 연신 쏟아내며 나를 호명했다. 그 호칭은 알지도 못하는 학생에게 그간 찌들어있던 분노를 대변하는 하나의 권력으로 기능했다.


다시 버스카드를 꺼내 요금 정산기에 찍어보니, 이미 결제가 되었다는 음성이 무심하게 흘러나왔다. 나의 결백이 말끔하게 증명되는 순간이었지만, 기사는 사과는 커녕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방만 주시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버스 뒷자리로 이동했다. 그 자리에는 같은 교복을 입은 다른 학생이 앉아 나를 우두커니 쳐다보고 있었다. 나 또한 어딘가에 이끌리듯 그 친구와 눈을 마주쳤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 속에는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겹겹이 얽혀 있었다. 그는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어느 과에요?”

“전산제도과요.”

“저도 그런 적 많아요. 괜히 말로 때리는 새끼들이 존나 많아요. 저도 앵간하면 학교 끝나면 사복으로 갈아입고 나와요. 교복입으면 곰팡이라고 놀려, 사복 입으면 학생이 왜 그러냐고 지랄. 지금은 이딴 일들이 익숙하니까 그냥 넌 짖어라 하고 말아요”

“아.. 좀 답답하네요. 나중에 학교에서 보면 아는 척 할께요. 고마워요.”


이 순간은 단순한 모욕을 넘어서 나의 존엄성을 시험받는 경험으로 가슴 속에 새겨졌다. ‘푸른곰팡이’와 ‘상태’에 담겨있는 비하의 언어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그것은 나를 ‘그런 사람’으로 고정하는 사회의 시선이었다. 당시 억울함과 부끄러움이 교차했지만 화를 내면 안될 것 같았다. 아니 그래봐야 ”공고생들이… 또!“라는 소리를 듣는데 일조할까봐(^^;) 가만히 있었다.


이 일을 경험한 이후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공고에 입학한 것이 잘못된 선택인지, 아니면 학교와 교복만으로 사람을 구획 짓는 이 사회 구성원들의 시선이 근본적으로 다르게 설정되어 있는 것이 아닌지. 그것은 단지 개인에 대한 손가락질을 넘어서, 공고생이라는 특정 집단에 가해지는 구조적 차별과 사회적 배제의 한 단면이었다. 사회가 공고생을 어떻게 낙인찍고 차별하는지를 온몸으로 실감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나의 억울함과 열등감은 잠재되어 있던 저항을 이끌어내는 발판이 되었다. 내가 직접 열심히 공부하여, 많은 사람들의 기저에 깔린 공고생에 대한 인식을 해체하기로 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는 구체적으로 깨닫진 못했지만, 나와 같은 소외된 공고생들이 지닌 복잡한 삶을 재구성하여 세상에 알리는 공적 말하기를 실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한편으로 이 결심은 내 자신을 해방하는 일이었다. 아울러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전하는 작업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언젠가 시멘트처럼 단단히 굳어버린 공고생에 대한 사회적 평가 내지는 인식을 전환하는 발판을 만드는데 보탬이 될 것이라 믿었다.


참,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인류를 감염병에서 구출한 항생제 '페니실린'은 푸른 곰팡이에서 추출한 것임을 말이다.

기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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