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工高)를 공고(公告)합니다(6)

'호두 선생님'과의 추억

by Jay

당시 우리의 시간표에는 교련*이라는 생소한 과목이 편성되어 있었다. 과목명만 봐서는 도무지 무엇을 배우는지 알 수 없었지만, 교련은 일주일에 단 한 시간씩 배정되었다. 교과서 하나 없던 그 시간은 우리에게 그저 호두로 머리를 얻어맞는 날로 기억될 뿐이다. 나는 호두가 먹는 것이 아니라 지압 도구라는 것과 가격이 정말 비싸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색깔도 암갈색을 띠고 있어, 그냥 딱 봐도 무섭게 생겼다.


image.png 출처: 호두 1쌍에 1억 원, TV 조선 뉴스7, 2020.10.4


교련 담당 선생님은 평소 유독 한자 교육을 강조했고, 이 시간은 한자 암기 수업이 주를 이뤘다. 매주 학생 몇 명을 추려 칠판 앞으로 불러세운 뒤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쓰게 했다. 한자를 제대로 쓰지 못한 날엔, 살면서 보기 힘든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첫 수업시간의 어마무시한 경험은 아직도 선명하다.


“자 지금부터 나와서 자기 이름을 한자로 써보고 음을 말한다. 실시!”

“너는 어디 이씨냐?”

“예? 아.. 저는”

“어디 이씨냐고, 네 가문도 모르면 되겠냐?”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저는... 오얏 리씨 입니다.”

“이런 병신 같은 놈이 있나! 야 이래가지고 큰일이다. 그렇지? 이놈 자식아 (쿵쿵)”

"아아, 으아!"


교실엔 '은혜'를 입는 이의 비명과 이를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의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제 이름을 못 쓰거나 음을 모르면 영락없이 선생님 손에 쥐어진 지압용 호두 한 알이 우리 머리를 재빠르게 강타했다. 우리반 절반 이상이 그렇게 호두로 난도질당했다. 그래도 우리 반은 양호한 편이었다. 다른 반에서는 단 한명도 빠짐없이 무한 호두 리필(?)을 받았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그분 성함은 가물가물하지만, 호두로 머리통을 울리던 그 순간만큼은 아직도 생생하다.


제식훈련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거수경례하는 오른손의 각도가 정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호두가 전광석화처럼 하늘에서 떨어졌다.


“정신 차려라이, 반장!”


평소 요리조리 잘 피해 다니던(?) 내가 맞는 모습을 보자, 친구 B는 세상을 다 얻은 듯 자지러지게 웃어댔다. 정말 진심으로 기뻐 보였다. 나로 인해 누군가 기뻐하는 일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아픔보다는 쪽팔림이 치밀어 올랐다. 그 시기엔 길 가다 넘어져도 박살난 무릎을 살피기보다 주변에 이 광경을 본 사람이 없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나이었으니까. 동시에 속으로는 "저자식들 이거 어떻게 평소에 맞았지. 진짜 아프네" 라는 생각도 했다.


혼자 생각에 빠져드는 그 순간, 기어이 사달이 났다. B는 너무 웃다가 정말 뒤로 자빠져 버린 것이다. 참고로 훗날 친구 C의 후일담에 따르면, 내가 너무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다가 그냥 ‘원자’가 맞았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웃겼다고 한다.


“친구가 대갈통이 깨지는데 웃음이 그렇게 나냐 요새끼야”


선생님의 호통과 함께 친구 B의 머리 위로 엄청난 속도의 호두 3연타가 쏟아졌다. 호두 한 방에 '요새끼야' 한마디가 어우러져 정말 가관이었다. 그 어떤 수업에서도 볼 수 없었던 활기와 참여가 넘치는 시간이었다. 지금의 어떠한 교수학습법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순간이었다. 우리 반 친구들에게서도 연이어 박장대소가 터졌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호두로 머리를 맞으면 정말 아픈데 웃음이 났다.


사실 우리는 그 선생님을 ‘호두 새끼’라고 불렀다. 역사적 진실은 오랜시간이 흐른 뒤에 밝혀지곤 하는 법이다. 어쨌든 그 많은 도구 중에 왜 하필 호두였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건 개인의 취향일 뿐. 그 누구도 대놓고 불평이나 불만을 늘어놓거나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가끔 "저새끼 내가 신고할겨" 라고 영웅의 면모를 보였던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게 진심이라기 보다 그냥 혼자 중얼거리는 수준이었다. 선생님이 호두로 소환한 사랑의 표현(?)은 심각한 콘텐츠로 소비되지 않았고, 그저 웃긴 광경을 연출하는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우리는 ‘큭큭’ 대며 그 수업 시간을 보냈다.


솔직히 이런 경우 통상 “아 XX” 혹은 “에이 씨”라는 감동섞인 말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금 같았으면 학교 폭력으로 일간지와 뉴스에 대서특필될 일이었지만, 그때의 우리는 그저 그 소름끼치는 호두를 맞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우리가 직접 해결해야지 그 어디가서 말하는 것을 '꼰질러 바치는 일'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분명 ‘호두 새끼’가 우리를 위해 뭔가 준비하고 노력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교련 시간은 그냥 한자를 배우고, 몇 가지 모의 훈련을 하던 시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때 내 느낌은 그랬다. 통상 나이 든 선생님들이 공고에 오는 이유는 대체로 비슷했고, 그 예상이 빗나간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탓할 필요는 없다.


종종 여자 선생님이 대신 들어와 응급처치법 등을 알려주며 다정하게 우리의 이름을 경상도 사투리로 불러주었는데, 그럴 때는 꼭 누군가 “호두쌤 어디 가셨나요”라고 질문했다. 그 질문에는 오늘 호두를 맞지 않는다는 안도감과 나이 든 선생님의 부재가 의미하는 '혹시나'라는 마음이 공존했다. 많은 친구들은 주변인의 갑작스러운 ‘부재’가 무엇을 뜻하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종종 본인이 월남전 참전용사로 활약했다는 영웅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코앞에 포탄이 떨어져 죽을 뻔 했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그 때 호두 안 갖고 가셨나요?”

"하, 요 당돌한 새끼를 봐라. 요놈 자식이!"


물론 나는 가만히 있으면 본전인데, 괜히 매를 벌었다. 그분과 정이 들었던 걸까.

당시 월남전이 어떤 전쟁인지 이해하려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요즘 시대에 무슨 전쟁이야라는 생각만 했을 뿐. 그가 지금의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훌륭한 군인이었다는 사실도 후일에서야 알게 되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그저 저 분은 전쟁에 나가 손에 피도 많이 묻혀봤을 것(?)이란 소문이 있었다. 당시 나는 한창 중국 영화에 심취해 있을 시기인데, 대추씨를 날리는 무림고수**의 면모와 저 양반이 겹쳐 보여 혹시나 뭔가 있지 않을까라는 착각도 했다. 우리는 복도에서 호두 두 알이 ‘딱, 딱’ 부딪히는 소리가 나거나 그가 구사하는 특유의 헛기침 소리가 들리면 잽싸게 몸을 피하거나 숨겼다.


학기 말에 다다를 수록 ‘호두 갈김’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어느덧 우리는 자기 이름을 한자로 능숙하게 썼고, 선생님이 가르쳐 준 사자성어 몇 개 정도는 제법 읊조릴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호두로 훈련받으며 그렇게 맷집도, 상식(?)도 키워나갔다. 사회에 나가면 저렇게 호두로 때리는 미친 사람은 없을테니, 세상 어떤 일도 다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생겼다.


"야 내가 저거만 안맞아도 삼성 갈껄?"


한 학기에 호두를 약 200대 가까이 맞은 친구 B는 졸업할 즈음에 삼성을 가지 못한 것은 다 '호두 새끼' 때문이라며 조금 치사하게 굴기도 했다. 그 '은혜'는 정말 아팠지만, ‘호두 새끼’가 밉지 않았다. 어쩌면 그 빡센(?) 지도편달 속에, 우리를 거친 산업 현장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그만의 투박한 애정이 섞여 있다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교실에서 우릴 귀찮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어 고맙다는 생각도 공존했다. 우리를 향한 그만의 방식이었달까. 그렇게 그는 우리와의 유대감을 차근차근 쌓아갔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호두 껍데기처럼 단단해져 갔다. 그리고 선생님은 다음 해 정년퇴직하셨다.

문득 떠오르는 그 날이 싫진 않다.


“건강하게 잘 지내십니까,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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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dive


* 예전 고등학교 보통교과 중 필수 과목이었다. 제식훈련, 군예절(경례), 국방론, 구급법(붕대감기, 지혈) 등을 배우는 수업이었다. 이는 한국 현대교육사에서 학교병영화라는 개념으로 다뤄지는 영역이다. 현재는 폐지되었다. 종종 교련을 배웠다는 이야기에 내 나이를 가늠해보려는 시도를 하는 분들도 있다.


** 과거의 사건을 소환하여 현재의 잣대를 가지고 본다면 문제가 될 일들이 많다. 그 순간을 경험한 당사자들의 의견은 분분하겠으나, 생각보다 우린 대인배의 기질이 있었기에 그 일을 지금도 하나의 추억거리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공론화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노력보다 우리에게는 더 중요한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맞고 다녀 억울하지 않았냐는 질문도 들었다. 우리도 그에 상응할 만큼 욕도 많이했고 정도 많이 들었으니, 충분히 '퉁치고' 갈 수 있다.


*** 중국 작가 김용의 무림소설 '의천도룡기'에는 구천척이라는 인물이 대추씨를 몰래 날려(암기) 공격하는 기술을 구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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