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인가, 교사인가. 이중 정체성을 가진 그와의 만남
1학년 2학기가 시작될 무렵, 전공 수업을 담당한 K교사가 나타났다.
이전 선생님과는 확연히 달랐다. 말투, 태도, 그리고 우리를 대하는 방식도 말이다.
“내가 아무리 지지고 볶고, 니네들 잘 때마다 깨우고 다녀도
결국 스스로가 정신차리는 순간이 와야되는 거거든. 너희들 생각은 다 내 손바닥 안에 있지 않겠냐.
내가 이 생활 똑같이 해봐서 잘 알아. 니들 다 큰 어른이라 생각하지?
그럼 2학년 되기 전에 뭔가 정해놓고 달려가야 되는거여.
고민있거나 생각있는 녀석은 끝나고 과사로 와”
수업 첫날은 종종 교사와 학생간 기선제압을 위한 파워게임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서로 첫 분위기를 잡지 못하면 한 학기 내내 힘들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일이냐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상호간 동물적 감각이 가장 날카롭게 발동하는 이 순간을 통해 교실 안의 질서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는 곧 기세를 잡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시간에 학생들은 이 수업이 만만한지 아닌지를 가늠한다. 교사도 이 교실의 첫인상을 가지고 나간다. 서로의 선입견이 태동하는 이 시간은 느슨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흐른다.
K 교사의 말을 들으며 나는 혼란스러웠다. 원래 저런 사람인건지, 기선제압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말만큼은 유난히 귓전을 맴돌았다. 과연, 나는 '헤어진 그날' 이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던가.
게다가 '이 생활 똑같이 해봐서 잘 안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친구들과 재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적어도 이 사람은 우리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단순히 훈계하는 게 아니었다. 같은 자리에 앉아봤던 사람이 건네는 말이니까. 진로탐색에 안일했던 우리에게 죽비*를 한 대 내려치는 것 같으면서도, 그 안에는 우리와 공감대를 쌓고 존중해주려는 힘이 있었다.
직업계고에 다니는 동안에는 선택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런데 그 선택을 확정할 수가 없다. 졸업 시점에 내가 원하는 회사에 가지 못할 수도 있고, 해당 산업의 인력 수급 등 변화에 따라 진로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해당 분야에서 인력이 포화 상태에 이르거나 여러 사정으로 사람을 뽑지 않으면 취업을 할 수 없는 구조에 놓이고, 어쩔 수 없이(?) 진학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사람들은 공고 교육을 '취업'으로 귀결되는 종국 교육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 하지만 그게 생각만큼 쉽게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수는 없다. 무언가는 해야되고 그러려고 모인 자리이니까.
취업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회사에 가면 좋을지, 어떤 일을 해야 할지를 수없이 고민한다. 문제는 그 고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워크넷에서 일자리를 검색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직업흥미검사를 하는 것, 그게 전부가 아니다. 교과서 밖의 진짜 정보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쉽게 드러내거나 내색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나의 생각을 소중히 여겨준 적이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디로든 '가면'된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이 학창시절 내내 몸에 새겨져, 말을 꺼내는 대신 '귀찮은 척'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럴 때는 종종 전공 과 소속 혹은 학교 취업담당 교사(실과부장)에게 의뢰가 들어온 특정 회사의 추천을 덥썩 물기도 한다.
“내가 한 가지는 꼭 강조하는데 학교 밖으로 나가면 너네 생각하곤 달라. 니네 사정 아무도 이해 안해줘. 성적표에 지각, 결석? 말 다한거다. 그러니까 그냥 일단 등교라도 해. 아예 나와서 교실에서 자. 아니면 밥이라도 먹으러 학교에 나와. 길게 보고 철없이 행동하지 말라는거야. 취업도 대학도 모두 출결을 정말 중요하게 본다. 그러니까 평생 후회할 일 만들지 말자.”
“너는 어제 또 일했냐? 아니면 게임하다 밤을 샜냐? 잠을 못자니 예민해지고 그러는거 아니냐. 이제 나이 생각하고 스스로 좀 책임감을 가져야지. 어디가서 쟤네들은 늘 그런다는 얘기 듣는거 지겹지도 않으냐? 늦은 것은 없어. 그저 차근차근 해나가는게 중요한거지.”
자면 안 된다는 말은 숱하게 들어봤지만, 교실에서 자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무조건 수업을 열심히 들으라는 것도 아니니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학교에 밥이라도 먹으러 오라는 그 말은, 우리에게 최소한의 끈은 놓지 말라는 명확하고 합리적인(?) 가이드로 들렸다. 너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해야 된다는 기승전 '노오력'을 강조하는 수준의 추성적이고 뿌연 담론은 아니었다.
출결을 강조한 것도 단순한 생활지도가 아니었다. 나중에 취업이든 진학이든, 자기 자신을 증명해야 할 때 가장 먼저 들여다보는게 바로 그 기록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는 살아있는 경험을 나눠주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는 잔소리는 하되, 왜 그래야 하는지를 하나씩 납득시켰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다르게 들렸다.
앞, 뒤 다 자르고 일단 자는게 나쁘다고 질책부터 하는 것이 아니었고, 내 사정이 이 사회에서 모두 이해받을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라는 메세지처럼 들렸다.
"G랑 J도 실습 수업시간만 되면 졸린데, K쌤이 신경 쓰이고 부담된다고 말했다. 오늘 이 인간들을 보니 진짜 눈은 확실히 뜨고 있었다. 무엇이 이들을 신경 쓰이게 만드는 포인트일까? 기계제도 시간엔 그래도 괜찮은 긴장감이 흐르는 것 같고, 나름 질서정연한 느낌이다." (2004년 11월 12일, 나의 일기)
늘 졸던 G와 J도 이 수업시간에는 눈을 뜨고 있었다. 부담된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잠들지는 않았다. 무엇이 그들의 눈을 뜨게 했을까. 쪽빛을 따라가다보면 푸른 물이 들듯, 그의 영향은 우리에게 서서히 스며들었다. 무관심하지도 않고, 형식적이지도 않은 어른. 함께 터놓고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졌고 기계제도라는 수업 내용도 가끔은 재밌게 느껴졌다.
알고 보니 이 선생님은 우리 학교 출신의 선배였다. 학창시절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입상한 엘리트 기능공이었고, 학교 졸업 후 산업 현장에서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를 겪은 다음 교사 양성 대학에 입학해 교단에 선 인물이었다. '이 생활 똑같이 해봐서 잘 안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그는 선배이자 교사, 두 가지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양쪽의 경험이 뒤섞여 나오는 말들이 우리의 마음에 닿았다.
그는 내게 몇 차례 기능경기대회 선수로 훈련받기를 권유했다. 기계제도를 하는 능력이 출중해서가 아니라, 무던하고 성실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대회 선수가 되면, 수업도 빠져가며 방과후 9시까지 남아 연습해야 했다. 물론 수업 빠지라고 누구도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훈련을 해내려면 수업을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우리 반에 기능훈련생이 있었다는 존재 자체도 모르고 지내게 될 정도이다.
문제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주변 선배들이 학창시절 대회에만 매달리다 ‘취업 재수’를 반복하고, 결국 전문대나 중소기업으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투자 대비 성과가 기능경기대회 하나로 판단지어지는 모습을 숱하게 목격했다. 지방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야 전국대회에 나갈 수 있었고, 전국기능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하면 기대했던 수준의 회사에 들어가기란 사실상 어려웠다.
심지어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입상하지 못하면, 국제기능올림픽(World Skills)에 원서 조차도 내지 못한다. 게다가 기계제도라는 직종의 시장 자체가 좁았다. 잘되면 좋지만, 안 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 '시한부 전공'이라는 경험을 통해 새겨진 그 기억이 떠올랐다. 무서운 약속이다. 그래서 쉽게 발을 들이지 못했다.
나는 진학과 취업 선택이라는 혼란이 뒤섞인 회색빛 교실 안에서 K의 묘한 수업을 경험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중도에 이탈하는 녀석 없이 끝까지 K의 수업시간에 함께 기계부품 도면을 그리고, 매 학기를 그렇게 견뎌냈다.
공고 전문교과 교사들은 학생들의 입학부터 졸업까지 동행하는 경우가 많다. 국/영/수 등 보통 교과 교사는 정기 전보(내신)을 통해 일정 근무기간이 지나면 지역내 타 학교로 순환 근무를 한다. 하지만 공고 교사들은 전공 특성상*** 다른 학교 교육과정에 해당 수업이 없거나, 기능경기대회 지도교사의 역할 등 교원 당사자와 학교 양측의 여건을 고려하여 전보를 유예받는 제도적 보호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그 '우산' 아래에서 K는 나의 학창시절이라는 인생 구간을 함께 걸어준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게서 하나의 가르침을 얻었다. 교육이란 결국 교사가 학생을 믿고 기다릴 때 비로소 작동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 역시 K 같은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그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옆에 서 있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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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Dive
* 불교에서 수행 시작을 알릴 때 사용하는 도구. 참선 중 졸거나 집중하지 못하는 수행자를 가볍게 깨우기 위해 어깨를 내리치거나 손바닥으로 소리를 내 주의를 환기시키는 막대이다.
** 기능경기대회는 지역의 우수한 숙련기능/기술인의 수준을 측정하는 대회로 지방/전국/국제로 구분된다. 통상 기능대회 혹은 기능올림픽이라 호명된다. 과거 각 학교에는 '기능반', '기능선수반'이라 하여 대회에 참가하는 '엘리트 기능 선수'를 육성에 힘을 쏟았다. 현재는 여러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전공심화동아리'라 불린다.
*** 교사들은 자신의 교원자격증 '자격'란에 OO학교정교사(O급) OOO 형태로 한 줄을 부여받는다. 이는 보통교과와 전문교과로 나뉘는데, '전문'의 경우 2025년 기준 31개의 표시 과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체적으로는 기계, 재료, 화공, 섬유, 자원, 건설, 전기, 전자 등이다. 예를 들어, 공고 기계과 교사의 교원자격증에는 '중등학교정교사(2급) 기계' 혹은 '금속'이라고 담당 분야가 명시된다.
**** 한국에서 공업고등학교 교사가 되는 방법이 세 가지다(보통교과 제외). 공업교원 양성대학 입학, 4년제 대학 졸업 후 교육대학원 입학, 공과대학 전공자 중 교직 이수를 하는 경우이다. 그리고 교원임용경쟁자 후보시험(임용고사)라는 시험에 응시 후 합격해야 한다. 공업교원 양성대학은 현재 충남대, 국립경국대(구 안동대)가 있다.
***** 최근 공고에 근무하는 후배를 통해 요즘 학생들이 교사에 대한 신뢰가 낮아져 라포 형성 조차 이뤄지지 않는다는 고민을 들었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깊게 들여다보는 영역 중 하나인데, 다른 기회가 있을 때 생각을 펼쳐보고 싶다. 교실 현장의 문제는 법과 규정으로 국가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비형식적 절차를 통해 풀어나가야 할 사항도 분명 존재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