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정체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 후 1783년, 첫 번째 증기선이 세상에 나왔다. 19세기에 들어서자 증기선을 통한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 대륙 간의 화물 운송이 시작되었고 19세기 중반에는 그 시간이 더욱 짧아져 증기선 여객 서비스가 개시되었다. 증기선의 발전과 더 빠른 항로 개척을 위한 항해사들의 노력 덕분에(?) 이 노란 진드기는 택배 박스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녀석들은 포도 나무의 나뭇잎에서 태어나 뿌리를 향해 천천히 기어간다. 한번 정한 먹잇감을 향해 죽음의 행진을 하는 코모도 왕도마뱀보다 더 흉악한 놈들이다. 도마뱀은 보이기라도 하지 않은가. 그렇게 목표 지점에 다다르면 수액을 먹기 위해 뿌리에 구멍을 내고 독을 분비한다. 나무가 자가 치유를 못 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수천만 개의 보이지 않는 구멍을 뚫어놓고 수십억 마리의 진드기가 수액을 쪽쪽 빨아먹는다. 나무가 말라 죽을 때까지 죽음의 쭈압주압은 계속된다.
이 발견을 통해 이미 죽은 나무를 뽑아도 진드기를 발견하지 못했던 이유가 밝혀졌다. 살아있는 다른 나무의 뿌리로 재빠르게 이동하기 때문이다.
1868년 8월 3일, 프랑스 과학 기술원에서 플랑송의 공식 발표가 진행됐다.
“포도밭을 재앙으로 몰고 간 원인은 프랑스에 없던 새로운 곤충으로, 필록세라 바스타트릭스(Phylloxera vastatrix)라 명명한다.”.
원인은 밝혀졌다. 하지만 살아 꿈틀대는 재앙을 어떻게 막을것인가. 1870년, 농림부는 치료제에 20,000프랑의 포상금을 걸었다. 그리고 4년 후, 포상금은 300,000프랑으로 퀀텀 점프에 성공(?)한다. 1874년부터 1877년까지 약 700개의 치료 방법이 쏟아져 나왔는데, 하나하나 참 가관이다.
1) 살아있는 두꺼비를 포도나무 아래에 묻는다 - 두꺼비의 독이 진드기를 죽이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
2) 화이트 와인을 관개수로에 붓는다 - 해석 불가
3) 소 오줌을 붓는다 - 글쎄
4) 담뱃잎 가루를 뿌린다 - 니코틴은 건강에 안 좋다
5) 고래 기름과 휘발유를 섞어 뿌린다 - 미끄덩거려라 제발
6) 폼페이의 화산재를 가져다 뿌린다 - 전설의 영험함에 기대보자
7) 황화칼륨을 오줌에 섞어서 뿌린다 - 소 오줌의 업그레이드 버전
8) 군악대 - 흉악한 데시벨로 진드기를 죽여볼까
9) 공업용 화학 용액 - 모든 걸 죽여버리겠다
이 중에서 특히 오줌이 유행했는데, 보졸레에서는 어린아이들이 등굣길에 한 번, 하굣길에 한 번, 이렇게 두 번씩 포도밭에 오줌을 누었다고 한다. 진드기에 코가 있었다면 찌릉내에 죽었을 것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