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주한 불편, 그리고 현실
-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 길 건너 상징적 공간이 있다. 2차례 오일 쇼크로 휘청거린 한국은 1976년 '마포석유비축기지'에 저장 탱크 5개를 묻어 131만 배럴의 석유를 비축했었다. 이 삭막한 공간이 문화공간으로 재탄생된 것은 2017년의 일이다. 석유 대신 문화를 비축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근처 극장에서 본 영화 <플랜 75>는 그것만으론 부족한 시간이 됐다고 엄중 경고한다. 그리고 그 키워드는 '생존'이다.
- 지난 5일,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네덜란드의 판 아흐트(van Agt) 전 총리가 70년을 해로한 부인과 동반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존엄사는 이견이 분분한 어려운 선택이다. 암투병을 하시다 오래전 작고하신 선생님이 계셨다. 전언에 의하면 그분은 통증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없는 투병 과정을 더 힘들어하셨단다. 자신의 추한 모습을 아내에게조차 보이기 싫었나 보다.
- 당연한 얘기지만 영화 관람 전 스포일링을 비롯해 사전 정보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어야 한다. 어제 본 <플랜 75>도 그저 노인 문제를 다뤘다는 정도만 알고 극장을 찾았다. 영화 도입부가 2016년 일본 사가미하라의 한 장애인 시설에서 19명의 희생자를 낸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것은 나중에 안 사실이다. 살인자는 "넘쳐나는 노인들이 나라 재정을 압박하고 그 피해는 전부 청년들이 받는다"면서 "노인들도 그런 상황을 원하지 않을 것"이란 비뚤어진 신념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 확증 편향을 가진 확신범들의 증가는 정보 과잉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 정보 대부분은 나쁜 의도와 오류로 오염돼 누군가의 신념에 뿌리내린다. 전 세계적으로 장애인, 특정 집단,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며 혐오를 정치적 이익의 에너지원으로 삼는 정치인들이 늘고 있다. 우리는 그들과 결별해야 한다.
- 부쩍 눈물이 많아진 뒤, 나는 '아개노(아이, 개, 노인)' 소재의 영화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가뜩이나 수분이 부족해진 몸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다. 휑한 객석에 앉을 때까지 내 몸의 적정한 수분량을 걱정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우였다. 현재 상영작이니, 타자의 관람을 위해 스포일링을 자제하는 대신 배급사의 보도자료를 인용하면 이렇다. 이 영화는 "75세 이상 국민의 죽음을 국가가 적극 지원하는 정책 '플랜 75'에 얽히게 된 네 사람의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은 근미래 SF 드라마"다.
- 저출산, 초고령화, 지역 소멸, 인구 절벽의 심각성은 영화의 무대인 일본만의 과제가 아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가까운 미래를 다룬 SF(sience fiction films) 물'도 아니다. 우리의 현실에 대입해도 개연성이 충분한 아픈 이야기다. 영화는 명예퇴직 후 플랜 75 신청을 고민하는 78세 여성 '미치', 삼촌의 신청서를 받은 플랜 75 담당 시청 직원 ‘히로무’,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랜 75 콜센터 직원 '요코', 플랜 75 이용자의 유품을 처리하는 이주노동자 '마리아'까지 4명의 기둥으로 사각의 프레임을 채운다.
- 영화는 일관하게 낮은 채도와 차분한 어조로 관객에게 말을 건다. 연출도 연기도 톤앤매너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사진을 전공한 감독은 역사광을 이용해 배우들의 깊게 파인 주름을 강조한다. 1961년 영화계에 데뷔한 일본의 국민 배우 바이쇼 치에코(미치 역)의 미성(그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소피 역을 담당했다)과 노래 실력, 내공은 그렇다손 치고 젊은 배우 이소무라 하야토(히로무 역)와 카와이 유미(요코 역)의 연기 역시 발군이다. 이 두 청년은 플랜 75에 참여한 노인들의 죽음을 돕는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히로무와 요코가 행정과 정서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반면, 정작 혈육이 해야 할 유품 정리를 외노자인 마리아가 대신한다는 점이다.
- 감독과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어떤 정서적 강요도 하지 않는다. 신파나 최루는 없다. 곧잘 우는 나이가 된 나는 스크린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울컥하거나 울음이 새어 나오지도 않았다. 단 한 장면, 주인공 미치가 정성들여 깎은 발톱을 화분에 버리는 장면에서 어떤 이의 뒷모습이 떠올라 멈칫했을 뿐.
- 놀라운 점은 <플랜 75>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선발한 신예 감독 하야카와 치에의 첫 장편이란 사실이다. 어떤 일이든 힘을 빼면 프로가 된다. 입봉작에서 이 정도로 세기를 조절했다면, 그의 차기작들은 과연 어떤 수준일까?
- 엔딩 크레딧에서 눈길을 끈 것은 공동 제공자로 이름을 올린 배우 소지섭과 그의 소속사 51k였다. 알고 보니, 배급사 찬란과 오랜 동반을 통해 독립/예술 영화를 지원해온 모양이다. 영화 <미나리>를 제작한 플랜 B의 브래드 피트처럼 말이다. 쉽지 않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 내겐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영화를 지원하거나 후원할 여력이 없다. 대신 이들 영화에 스크린을 제공하는 서대문구 연희동의 '라이카 시네마'나 비밀 아지트 같은 2개의 상영관을 갖춘 서대문구 대신동의 '필림포럼'을 자주 찾아야겠다.
- TV도 끄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 미치의 친구는 죽기 전 미치와 하룻밤을 보내며 "자식이 있어도 외롭네"라고 푸념한다. 그러자 미치는 "인생은 원래 외로운 거야"라며 바스러질 것 같은 친구의 손을 잡아준다. 중년 혹은 고령층의 빈곤은 곧장 고독사로 이어진다. "고독사보다 고립사가 더 정확한 개념"이라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고독'은 개인의 처지를 지칭하지만 '고립'은 사회적으로 방치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 익숙하고 평범한 에피소드로 안락사, 사회적 시스템, 국가 권력의 한계 같은 무거운 논의보다 연대(連帶)의 모색이 우선이라고 낮고 짧게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 영화를 보다가 깨달은 사실 하나. 부모자식 간은 1촌이고 형제는 2촌이며 삼촌은 당연히 나와 3촌지간이다. 그런데 난 단 한 번도 이모와 고모가 나와 3촌이라고 인식한 적이 없다. 그냥 삼촌들의 여자형제인 이모와 고모로 여겼다. 이렇게 내 생각에 난 구멍을 또 메꿨다.
- 이미 늙은 사람이나 늙어가고 있는 젊은이들까지 우리 모두는 투명하고 영롱했던 시간을 거쳐 노인이 된다. 가수 서유석은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라고 노래했다. 성장이 멈춘 순간부터 우리는 노화한다. 오랜 기간 전승돼온 노인의 지식과 지혜는 포털과 유튜브에 양도되고, 육체적 약자로만 남은 노인들은 더 이상 존경과 공경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존중'까지 거둬가지는 말자. <플랜 75>의 주인공 히로무는 자신의 아버지와 불화했고, 20년 동안 왕래가 없었던 삼촌의 시신을 자신의 방식으로 거둔다. 삼촌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여겼으리라. MSG 범벅의 할리우드와는 다른 영화적 문법을 구사하는 이 영화는 디스토피아를 그리면서도 구석구석 사람 냄새를 풍긴다.
- 영화관을 찾은 그날, 몇몇 노인들이 키오스크 앞에서 서성였지만 그들은 <플랜 75>의 티켓을 끊지 않았다. '아개노' 영화를 꺼리는 나와 같은 이유에서였을까? 한국과 일본 같은 초고령 사회의 노인들은 자본주의의 용광로를 통과하고 슬래그(slag)가 되어 이제 폐기 처분을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됐다. 노동력을 상실한 뒤 자산 소득 없이 살아야 하는 개인들은 '유전(有錢)장수'의 꿈을 이룰 수 없다. 그러기에 정부는 '무전(無錢)장수' 하는 다수를 위한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플랜 75' 따위의 대책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