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거로움의 쾌감
- 사진가들에게 카메라는 기계식 '붓'이다. 그들은 빛으로 그림을 그리니까. 영상이 소설이라면 사진은 시(詩)와 같다. 사진 한 컷에는 명쾌한 서사 구조와 메시지가 들어 있다. 그래서 때론 뛰어난 한 장의 사진이 엉성한 영화 한 편을 뛰어넘는다.
- 프리랜서 작가인 나는 수많은 포토그래퍼들과 동행했었다. 그들은 몇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한 무더기의 짐을 지고 다녔다. 그렇다면 사진가도 아닌 나는 왜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걸까? 내게 카메라는 기계식 '펜'이며, 사진이란 수첩에 글씨를 쓰는 행위다.
- 나는 소설가가 되기엔 거짓말에 서툴렀다. 90년대 중반 연신내 고깃집에서 술을 마시던 소설가 장정일 형은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릴 적 거짓말을 곧잘 했던 나더러 어머니가 둘러대는 솜씨를 보니 사기꾼 아니면 소설가가 되겠다고 하시더군." 그때 알았다. 내가 소설가가 되지 못하는 이유를. 그렇다면 시인은 왜 못 된 걸까?
- 비슷한 시기, 같은 잡지사에 근무하던 후배와 함께 은사님을 찾아 점심을 함께 먹었다. 유수의 출판사에서 첫 시집을 낸 동행한 후배가 "왜 선배님은 등단하시지 않는지 모르겠네요"라고 은사님께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5등 안에 들 자신이 없나 보지"라며 웃으셨다. 노(老) 시인은 매의 눈을 가진 분이셨다. 시인이 되기에 나는 속물이었던 거다.
- 사진엔 캡션이 붙는다. 보통의 경우, 캡션은 사진의 메시지를 보완하기도 하고, 사진가나 에디터의 목소리를 얹기 위한 장치다. 하지만 나는 캡션을 쓰기 위해 삽화에 준하는 사진을 찍는다. 그러니 프로처럼 찍을 요량으로 따로 공부하지도 않고, 좋은 사진을 위해 애면글면하지도 않는다. 다만 짬이 나면,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나 비비안 마이어 같은 대가(大家)들의 작품을 눈에 익히는 훈련 정도만 한다. 그 과정이 혼탁해진 나의 시선을 교정하는 역할을 한다.
- 사진은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기도 하지만 빛으로 쓴 시이기도 하다. 사진이라는 나의 수첩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상황과 대상을 다시 기억하게 만들고, 사유하게 한다. 이런 반복적 학습과 훈련은 내가 어제보다 티끌만치 달라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서 무거운 카메라와 수동 렌즈를 고집한다. 물론 꾀가 나면 똑딱이 하나만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도 한다. 나는 카메라가 나의 일상과 노후를 자본과 무관한 풍요로 안내할 거라 기대한다. 물론 빈자(貧者)의 변명이다.
- 전문가가 아닌 나는 연출을 할 줄 모른다. 당연히 광학에 대해서도 문외한이다. 빛의 성질이나 분산, 굴절 같은 걸 알 리 없다. 이런 우연한 순간의 포착에 기대어 사진을 찍을 뿐이다. 그러니 눈을 크게 뜨고 자주 싸돌아 다녀야 한다.
- 헤겔은 "예술을 위한 감각은 주로 시각과 청각인데 이는 이념적 감각"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의 청각은 거의 퇴화된 감각 기관에 가깝다. 젊어서부터 클래식에 조예가 깊던 김갑수 씨나 강헌 씨 같은 이를 보면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그러니 소장 오디오라곤 손바닥만 한 티볼리가 전부다. 그마저도 전원은 주로 꺼져 있다. 꺼진 나의 청각을 깨우기 위해 요샌 피아니스트 유자 왕과 임윤찬의 동영상을 찾아보곤 한다.
- 그나마 시각은 평범 수준은 된다. 에디팅 하면서 사진가의 사진을 셀렉하거나 그림을 고르는 수준이 그다지 나쁘지 않으니 말이다. 연주회보다 미술관을 다닌 경험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그런 이유인가 보다.
- 장봉도에 캠핑 간다는 중년의 사내는 머리 위까지 올라오는 가방을 지고 있었다. 무엇이 그를 낯선 섬으로 향하게 했을까? 왠지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는 흔쾌히 촬영을 허락했고 내게 "굴업도가 좋으니 꼭 가 보라"고 권했다. 난 그러마 하고 답했지만 결코 그럴 일은 없다. 바지런하지 못하고 불편을 꺼리는 내가 그럴 리 없다.
- 자주 지나는 집 앞 길에 몇 년째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오토바이는 이젠 도로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바로 앞엔 오토바이 상점이 있다. 상점 주인이 부품이라도 꺼내 쓸 만도 한데 저 녀석은 그마저도 안 되는 상태인 모양이다. 늙은 내 몸에서 빼낼 것이 없듯 말이다. 쓸모가 없어지는 건 서러운 일이다. 녀석의 신세가 남의 일 같지 않다.
- 파도를 넘고 있어야 할 배들이 길가에 주차돼 있다. 언젠가 마지막 항해였을까? 어쩌면 저 배들은 바다 위보다 땅 위에서의 휴식을 더 바라진 않을까? 아무튼 어떤 사물이나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을 때 눈길이 가긴 한다.
- 카지노가 들어설 건물이 4년째 사람 손을 타지 못하고 있다. 욕망이 멈추면 저런 모습이다. 쓰러져 엉켜 있는 나무들과 탐욕이 정지된 저 건물은 소름 끼치게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