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과 편견

- 한때 씨네필이었던 이들에게

by 스침
ⓒ 스침

- 나는 유럽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80년대 중반 최루탄이 터지던 대로를 피해 불란서문화원을 들락거리던 우아한(?) 여대생들을 경멸해서였을까. 뭐, 솔직히 그런 구석도 있다.


- 유럽은 적은 자본으로 거대담론을 스크린에 담고 미국은 거대자본으로 허무맹랑한 영화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 당시 내가 처한 현실과 유럽 영화의 메시지는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그러니 공감할 수 없었다. 게다가 60년대 중반생인 나는 소수의 레거시 미디어가 공급하는, 이를 테면 '주말의 명화' 같은 미국산 영화에 중독돼 있었다. 자극적이지 않은 유럽산 영화가 성에 차지 않았다.


- 조금 다른 이유로 일본 영화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나의 감성이 무뎌진 뒤에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었으니까. 접근이 자유로워진 뒤에도 일본 영화 특유의 소소한 이야기와 느린 템포는 내 취향의 범주에 들지 못했다. 할리우드의 중독성이란.


-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도 바꾸지 못한 나의 취향을 파고든 감독이 있다. 나와 동년배인 고레에다 히로카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으로 나는 비로소 일본 영화에 다가갔다. 그는 일본 영화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깬 첫 감독이다. 나는 그의 시선이 좋다.


- 나이 들면서, 사는 동안 내게 쌓인 편견을 조금이라도 깨 보자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의 최근작 <괴물>을 보면 그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직접 목격했다고, 팩트라고 확신하는 일들이 얼마나 큰 함정이며, 타인에 대한 폭력이 될 수 있는지 <괴물>은 말한다. 또 한 가지, 다수의 목소리와 이익이 소수의 권리를 얼마나 짓밟는지도 보여준다. 소재와 영화적 완성도, 감독의 치밀한 연출력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괴물>은 분명 명작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머리를 뜨끈하게 했던 것은 나는 완고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차후로도 나는 여전할 것이 분명해서 괴로웠다. 영화 속 "괴물은 누구인가?"란 반복적 대사가 자꾸 나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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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가족>에서 나를 매료시켰던 안도 사쿠라의 탁월한 연기력에서 헤어나지 못한 나는 단성사와 피카디리의 추억을 상기하며 종로 3가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엔 어수룩하지만 정겨웠던 단관의 추억은 없었다. 자본의 논리로 보면, 단관은 멀티플렉스의 상대가 안된다. 그런데 이젠 같은 논리로 멀티플렉스가 OTT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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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제겠지만 <사운드 오브 뮤직>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간판이 걸린 낡은 벽면이 김치처럼 반갑다. 어릴 적 일가붙이가 영화 관련 종사자라 영화간판을 그리던 곳엘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지금도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캔버스와 코를 찌르던 페인트 냄새를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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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워링>의 간판이 걸렸던 광화문 네거리의 국제극장, 성룡의 <취권>을 봤던 단성사와 단성사가 매진이어도 안도감을 주던 길 건너 피카디리까지 모두 옛 모습이 오간 데 없다.


- 그나마 낙원상가 4층,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이 운영했던 허리우드 극장이 여적 간판을 걸고 있어 위안이 됐다. 현재는 2,000원으로 관람이 가능한 실버영화관으로 존속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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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괴물> 속 교장 선생(다나카 유코)은 주인공 미나토에게 금관악기를 건네주며 '후' 불어버리라고 말한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과 금관악기 소리는 절묘한 조합이었다. 여담이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악기 하나는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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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원상가와 허리우드 극장의 현재는 인근 포장마차 속 늙은 취객들에 의해 완성된다. 그리고 저 붉은 중절모는 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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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을 빠져나오다 지금은 고시원에 자리를 내준 파고다극장의 흔적이 건물 벽면에 남아 있음을 발견했다.


- 1989년 새벽, 시 쓰던 기형도 형이 주검으로 발견되었던 그곳은 용도변경되었지만 그날의 기억은 또렷하다. 가수 뺨치게 노래했던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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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씨네필을 꿈꾸었던 나는 그렇게 한나절의 여정을 마치고 섬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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