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뿔싸, 환갑

- 더뎌진 발걸음만큼이나 생각도 무디다

by 스침


돌이 지나 걸음마를 배웠지만 누구에게나 걷기조차 힘겨운 때가 온다. ⓒ 스침

- 1964년 갑진년에 태어난 내가 2024년 갑진년을 맞았다. 아뿔싸! 환갑이라니. 20세기 중반 태어나, "낡은 20세기야 가라"를 외쳤는데, 어느새 AI와 전기차가 주도하는 시대를 버겁게 살아내고 있다. 별반 달라진 건 없다. 후회 아닌 것이 없으나 치열하지 못했기에 거둔 것 없음에 대한 회한은 없다. 굳이 달라진 걸 말하자면, 몸이다.


- 군데군데가 고장이다. 수시로 몸의 유통기한이 확인되고, 병원 출입도 잦다. 그러니 회갑으로 '잔치'를 벌였던 선배들을 이해할 수 없다.


- 나이 듦은 호칭으로 실감된다. 50줄에 접어들었을 때, 마트 직원이 나를 "아버님!"으로 불러 당황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같은 동 거주 어르신이 "시간 나면 경로당에 놀러 오세요. 점심 같이 드시게."라는 게 아닌가. 얼굴 익히고 지낸 지 5년이니, "이젠 때가 되었다."라고 말을 붙이신 건지, 그동안 묵혀둔 권유였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 지경이 되었다.


우병철 작가. ⓒ 스침

정지숙 작가. ⓒ 스침



- 청탁 원고를 받을 방법은 우편뿐이고, 인용할 비트겐슈타인의 문장 한 줄 찾기 위해 도서관에서 진을 쳤던 때가 엊그제 같건만 세상 참 달라졌다. 다양한 검색 엔진에 AI가 만능인 세상이다.


- 일상에서 시대의 격변은 'YouTube'를 통해 체감된다. 장난기 가득한 에릭 버든(Eric Burdon)이 내가 태어난 해에 <House of the Rising Sun>을 부르는 TV쇼 영상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어디 단명한 애니멀스뿐이랴. 1964년 에드 설리반쇼에 출연한 dirty sexy의 대명사 믹 재거(Mick Jagger)는 청동 이마를 가진 청년이었다. 1943년생 동갑 나기인 내 어미도 그렇게 어릴 때 나를 낳았나 보다.




-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나도 꽃인 적이 있었다. 타고난 무엇이 좋아서가 아니라 단지 젊다는 이유 하나로 꽃이었던 때가 있었다. 1976년 갑진년엔 미국에선 애플이 창립됐고 판문점에서 도끼 만행 사건이 벌어졌고 나는 국민학교 6학년이었다. 다음 용띠 해인 1988년, 88 서울올림픽이 열렸고 그해 겨울 전두환은 백담사로 향했으며, MBC 대학가요제에서 고 신해철이 부르는 <그대에게>를 들으며 만취했었다. 12년 뒤 돌아온 2000년 갑진년엔 본격적 인터넷 시대가 열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IT 버블이 꺼지면서 증시가 무너졌고, 당시 주식을 죄악시하던 나는 일원 한 푼 손해보지 않았다. 48살 되던 2012년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로 전 세계에 알려졌고, 나보다 한 살 많던 휘트니 휴스턴은 세상을 떴다. 그리고 이제 환갑이다. 아직 철도 안 들었는데, 정말 환장하겠다.

눈버들(雪柳)이라 불리는 조팝나무 ⓒ 스침

ⓒ 스침

- 삶은 불투명한 술병 같아서 도무지 잔량을 알 수 없다. 조급하지만 허방에 빠지진 말아야 한다. 장담컨대 난 인자하고 지혜로운 노인이 될 자신도 가능성도 없다. 다만, 언젠가 가게 될 길이 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소한 사진 속 거울처럼 지저분하진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나에게 순종(obey)의 축복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