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갔다더니, 이제 시작한 것 같은 태풍.
오늘 아침 9시 비행기로 남편이 떠났다.
아침 일찍 애들을 깨워 남편 배웅에 나선 길.
떠나는 남편님, 지나치게 해맑아 보이십니다.
떠나는 날까지 쨍한 날이 없네....
애들 아빠 배웅하고 집에 돌아와 한 숨 잤다.
회사일이 갑자기 복잡해져서 마음이 심란한 남편.
가족들과 만나 재미있는 가족여행을 잔뜩 기대하고 제주에 왔는데, 기대했던 것과 달리 실망한 것 같아서 신경이 쓰였다.(남편은 괜찮다 하는데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 얼굴.)
남편은 둘째치고
내가 남편이 와 있는 동안 온 가족이 함께 재미있고 신나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제주 여행 오기 전 남편의 '아빠 파업, 남편 파업'.... 좀 흐지부지 끝나 버린 것이 신경 쓰였다.
그래서
헤어지고 일주일 만에 다시 만나면
아이들도 남편도 나도 가족의 부재 이후에 느꼈던 빈자리를 채우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너무 이상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거나,
헤어져 있는 기간이 너무 짧았거나,
우리 가족들의 적응력이 뛰어나거나,
서로 굉장히 독립적이거나.
암튼 기대했던 효과는 별로 없었다.
남편이 와 있는 동안
아이들은 집과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남편은 화가 나 보였고,
나는 그런 남편을 보며 안절부절못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남편을 배웅하고 돌아와서는
명절에 손님 치른 것 마냥 피곤하고 졸음이 쏟아졌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좀 슬프다.
남편도 안 됐고, 아이들도 안 됐고, 나도 안 됐다.
남편은 복잡한 회사일을 떠나 가족들에게 위로받고 싶었을 수 도 있고,
집과 학교를 잠시 떠난 아이들이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제주의 생활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뿌듯함을 느끼고 싶었을 수 도 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자유롭게 티브이를 선택하고 싶었을 수 도 있고,
진짜로 아프고 피곤하니 휴식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나는 남편도 보살피고 싶었고,
가족들이 모두 모여 친밀한 시간을 보내며 정서적인 안정감 느끼고 싶었던 것일 수 도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가족 모두가 만족할 방법을 찾지 못해서 갈등하고 속상했던 것인가 보다.
솔직하게 마음을 터 놓고 의논하다 보면 생각하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었을 텐데,
에구 내가 참지.. 하며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되었네!
우리는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고
부탁할 수 있고
거절할 수도 있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가고 한 숨 자고 나니 뒤늦게 생각나서 참 아쉽고 안타깝다!
이 뒷북 공부는 언제 현장감이 생기려나...
타임머신을 개발하는 것이 빠를까??
한 숨 자는 동안
아이들은 마당에서 호스로 물을 뿌리며 물총 싸움을 했다며 젖은 옷을 널어놓았네.
형제님들 스케일도 크시지!
어쩐지 안 깨우더라니.
배고픈 아드님들이 냉장고를 뒤져 김밥 재료를 찾아낸다. 쌀을 씻어 야무지게 밥도 해 놓았다!
그 덕에 오늘 점심은 김밥.
오른손 검지에 깁스를 한 나는 최소한의 도움만 주고, 말로만 코치를 했는데도
아이들이 제법 모양을 갖춘 김밥을 만들어 내니 신통방통하다. (아들 자랑 맞다.)
태풍의 영향권은 벗어났다는 것 같았는데
태풍 때보다 더 심한 비바람에 도서관으로.
애들은 제주 도서관에서 만화 실컷 보고 가겠네.
형아들 책 읽는 동안 기다리기 지루한 막내는 1층에서 간식 먹기.
간식 먹기도 지루해 차에서 낮잠 자기.
형님들은 무려 4시간 동안이나 꼼짝 않고 만화에 초 집중.
만화책이 있어서 비 오는 제주도 즐겁구나!
다음엔 막내 놀잇감도 좀 챙겨 가야겠다.
나는 왜 동화책을 읽어주면 한 페이지에 한 번씩 하품이 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