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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라 Jan 03. 2019

코어자칼

제주살이 백 스무 하루 190102

초등학교 방학이 시작 되었다.


아이들이 방학을 즐겁고 알차게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어미 머릿속이 분주하고 마음이 무겁다.

즐겁게 여행하고, 편안한 휴식도 하고, 지난학기 복습과 새학년 준비도 했으면 좋겠고, 책도 많이 읽고, 운동도 많이 했으면 좋겠다.

써놓고 보니 학기중 만큼 혹은 더 바쁜 일정인것 같기도 하다. 나 초등학교때는 어땠더라? 생각해보니 방학때 암것도 안하고 마냥 놀고 싶었다.


새해에는 새로운 눈으로 아이들 안에 있는 보석을 보자며 다짐한 지 하루만에 벽에 부닥친다.

그저 어떤 모습이든 응원해 줄 수 있는 옆집 아줌마가 아니라, 엄마로서 해야하는 내 역할에 대한 부담과 아이들 미래에 대한 책임과 두려움이 자꾸 눈을 흐리게 한다.


그중에서도 6학년이 되는 둘째의 영어와 체력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가장 크다.

뭔지 모를 막연한 불안감에 정신이 흐려져서 에너지가 자꾸 새어 나가고 집중이 되지 않는다. 가슴이.답답하다.



내 몸과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나의 생각 : 중학교 가기 전에 영어 실력과 체력을 좀 끌어 올렸으면 좋겠다. 저렇게 큰 소리 칠 때가 아닐텐데 애가 현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매일 꾸준히 하면 좋을텐데, 왜 쟤는 저렇게 모든 일에 엄살이 심할까?


*나의 두려움 : 준비가 너무 미흡하면 중학교에서 수업을 못 따라 갈까봐 두렵다. 아이가 포기하고 자신을 방치할까봐 두렵다. 그러면 그 아이의 힘든 모습을 보는 것과, 나의 책임이 더 커지는 것이 너무 싫다.


*나의 바람 : 아이가 스스로 자신을 잘 보살피면 아이에 대한 신뢰감이 생겨 내가 홀가분하겠다.


*나의 관찰 : 여전히 내가 생각하는 어떤 모습에 도달해야 안심하고 아이를 믿을 수 있는 나를 본다. '무조건 적인 수용과 신뢰'라는 아름다운 말은 살얼음 같다. 딛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만 밟으면 깨지는 살얼음. 숨이 멎을것 처럼 차가운 물에 빠져 버릴 것 같다. 자꾸만 시커멓고 차가운 물속에 있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물 속에 빠진 나는 혼자이다. (그런데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나의 공감 : 혼자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두려웠구나. 외롭고 불안하구나. 힘들었구나. 도움이 필요하구나.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이 있으면 좋겠구나.


*나의 관찰: 이렇게 자신을 공감하니 눈물이 난다. 막연한 불안감이 사그라 들며 호흡이 한결 편안하다.


코어자칼이다.

<자기 일은 스스로 책임져야지!>

계속해서 나오는 뿌리 깊은 코어자칼.

아마도 태중에서 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유복자로 태어난 나. '어머니 뱃속 따뜻한 양수'라는 표현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 적이 한번도 없다.

아까 떠오른 이미지,,, 숨이 멎을 것처럼 차갑고 시커먼 물 속에 나혼자 였던 것은 아마도 엄마 뱃속의 느낌 아니었을까?

확인 불가능한 그저 나의 생각이다. 누굴 탓할 생각도 없다. 아이러니 하게도 지금에서야 최선을 다해 새끼를 품어준 엄마께 감사한 마음이 올라온다.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입으로만 중얼거렸을 뿐 진심으로 한 적이 없는데,,, 참 신기하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품고 있었던 엄마에게 감사하다.

그것이 나의 운명임을 받아 들인다. 이렇게 태어난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



감정 작업에 유난히 둘째가 많이 등장한다.

나의 투사를 온 몸으로 받아내며 사는 둘째.

나랑 사느라 힘들었겠다. 미안.



아이를 보며 불안함을 느끼는 것이 나의 코어자칼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나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아이가 방학중에 해야할 미션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엄마 감정의 찌꺼기까지 들러 붙은 숙제가 아닌 그저 제 몫의 숙제만 하면 되니 다행이다.




신기하네.

밝은 눈으로 아이들을 보자고 다짐한 새해 소망이 벌써 이루어졌네,,, ㅋㅋ


모든 일이 순조로운 평화로운 새해를 소망한다고 주문을 넣을걸 그랬나??





방학에 육지가서 친구들 만나고 온다며 용돈벌이 하느라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둘째.

고맙고 귀엽고 기특하다.


고마워.

미안해.

용서해줘.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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