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이네 마당에서 따 온 청귤로 청귤청 만들기. 그리고 부탁하기 연습.
집에 돌아오는 날 앞집 할머니께서 청귤청을 주신다. 팔이 아파서 많이 못 했다며 더 만들어서 가득 채우라며 청귤도 따 주셨다.
이번 태풍에 마당에 있는 무화과나무랑 대추나무가 쓰러졌다고 하시던데, 더 큰 피해 없이 잘 지나가길 바란다.
그런데 손가락에만 반깁스를 했더니 아무래도 손을 많이 쓰게 되었다.
아이들이 많이 도와주기는 해도 식사 준비하는 것은 내 몫이라 자꾸 풀어서 쓰다 보니 붓고 아팠다.
어제 병원에 가보니 인대에 염증이 생겨서 그렇단다. 자꾸만 쓰게 된다고 했더니, 그러면 손바닥까지 깁스를 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
나도 두 달이 다 돼가는데도 낫지 않는 것이 걱정돼서 순순히 깁스를 하고 왔다.
오른손을 거의 못 쓰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불편하다.
그런데 그 덕에 어린이들 살림 솜씨가 늘어간다.
ㅎㅎㅎ 의외의 소득이다.
어제저녁식사는
둘째가 어묵탕에 스크램블 에그를 해 줘서 왼손으로 맛나게 잘 먹었다.
설거지는 큰아이가 후다닥 해치워 주고!
오늘은 제주도에서 받아온 청귤로 청귤청 만들기.
귤을 베이킹 소다로 뽀득뽀득 씻는 것부터 아이들의 몫이다.
무게를 재서 설탕도 준비하고
신나는 귤 썰기 시간~~^^
설탕도 중간에 켜켜이 쌓아 주고
차곡차곡 담고, 설탕 뿌리기 반복 반복 ~~^^
야무지게 귤청을 만든 어린이들!!
오늘 저녁식사는 친구네서 받은 핫도그용 빵으로
(그러고 보니 주변의 도움으로 참 잘 먹고 사는군.)
큰애가 소시지에 칼집 내고 물에 삶아 초간단 핫도그를 맛나게 만들어 준다.
핫도그는 워낙 치열하게 먹느라고 사진은 없음.... ㅋㅋㅋ
나는 마흔이 넘어서야
내가 부탁과 거절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지간한 일은 알아서 해결하거나 포기하거나...
그게 잘 하는 건 줄로만 알고 살았다. 누구의 도움 없이 나 스스로 책임 지고 사는 것.
그 와중에 어렵사리 한 부탁을 거절당하면 굉장히 화가 났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고 스스로도 당황스러운 폭발을 한 두 차례 겪었다!
남이 내게 한 부탁도 거절하기 힘들었다.
(남들도 어렵게 부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거절이 힘들지...)
그것이 너무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이상하고 당황스러웠다. (다행스럽게도! 그것을 알아차리게 된 다음부터는 누군가의 거절을 듣게 되더라도 그렇게 화가 나지는 않는다.)
그런데 지난여름 비폭력대화 워크숍에 가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어린 시절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도움받지 못하고 힘들었던 경험으로 무의식에 신념이 생겼는데..
그것은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였다.
무의식에 있는 신념이라 스스로는 알아채기 힘들다
.
그런데 무의식에 신념이 깔려 있으므로 비슷한 상황에 노출이 되면 계속 자극을 받는다. 정말 지긋지긋하게...
나의 경우는
나 스스로 일을 알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부탁이 어려웠던 것이고,
이 정도는 당연히 들어줄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한 것만 골라서 부탁했는데도 거절당했을 때 당황스럽고 화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비폭력대화 기린 부모학교 수업이 있는 날 (제주도 가느라 한 달만에 나간 수업) 마침 '코어 자칼' 강의가 있었다. (그 무의식의 신념들을 비폭력대화에서는 코어 자칼이라고 한다)
거기서 다시 나의 코어 자칼이 떠 올랐고,
나는 원래 얼마든지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받을 수 있는 존재로 태어난 사람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떠 올렸다.
지난여름 워크숍 이후에 나는 주변에 부탁을 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는 언제든지 부탁할 수 있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으며 상대방도 얼마든지 자유롭게 거절할 수 있다는 경험을 쌓는 중.
그것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보면
왼손도 아니고 하필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다친 것이.... 부탁하고 도움받는 충분한 연습의 시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 갖다 붙이자면
그 경험을 아주 많이 하라고 다친 손이 쉽사리 낫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하고 억지를 부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