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쓰기의 즐거움
최근 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자기소개서와 로스쿨 입학 서류 준비 때문이다.
벌써 몇 년 째 글쓰기를 취미로 하고 있지만,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글쓰기의 외양을 하고 있는 일종의 시험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정답의 기준과 내용도 모두 내가 정하는 시험.
다만 평가관들은 형식 논리적 정합성 같은 것들을 평가할 것이다.
물론 내일부터 원서접수가 시작되므로 자기소개서 자체는 완성되었으며
맞춤법 검사와 마지막 점검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작성 과정에서 실력있는 분의 첨삭을 받게되어 처음보다 완성도를 크게 높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분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불안해하며 고통받고 있었을 테고,
결과물도 지금보다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스트레스가 끝나는 건 아니다.
적어도 스트레스의 페이즈 1이 끝나려면, 로스쿨 최종합격이라는 결과를 받아야한다.
물론 페이즈 1이 끝나자마자 그보다 훨씬 엄청난 변호사시험 (그리고 단기적으로 학교 시험)이라는
페이즈 2가 밀려올 것임을 알고 있다.
그걸 알면서도, 로스쿨 합격을 간절하게 희망한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기 위해서, 그리고 작년에 전역한 이후 내 청춘의 소중한 시간을 투자한 일의
성과를 얻고 싶기 때문이다.
서류 준비도 상당한 스트레스였지만, 원서 접수 이후 뽑아야하는 입학 원서 같은 기본 서류들 외에는
다 준비가 되었다. 서류의 양이나 엄밀함에 있어 비교가 안되겠지만, 변호사로서 소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서류를 준비하는, 뭐 그런 과정을 미리 연습하고 경험해보라는 뜻에서 시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로스쿨 입학 서류는 '나'에 대한 입증 서류이니,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선 별거 없지 않느냐라고 느낄 수 있는데, 사실 그래서 더 힘든 면이 있는 것 같다. 어떤 주장을 할 지도 나의 선택, 그 주장을 어떻게 입증할 지도 나의 선택인데, 사람의 인생에서 모든 일이 다 입증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에 서류를 준비하며, 자기소개서에서 언급한 장소에서 내가 근무했다는 걸 증명해야하는데,
기존 절차대로 발급받는 서류에는 장소 명이 표기되어있지 않아서, 국방부에 민원까지 접수하여
겨우 추가서류를 받아냈다. 내 민원 담당자셨던 주무관님이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감사했다.
얼굴도 모르는 분이지만 그 따뜻한 성의에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이렇게 글과 서류로 지친 내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잡문을 써보았다.
잡문이란건 마치 친구에게 편하게 떠드는 잡담처럼, 아무 부담이 없어서 좋은 것이다.
지켜야할 글자수도 없고, 글의 형식도, 논리의 엄밀함도, 주장을 입증할 의무도 없다.
너무나 자유롭다. 이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과정 자체를 나는 좋아한다.
나의 자유로운 본성을 아는 분들은 보수적인 위계질서를 갖춘 법조계에서 내가 스트레스 받지 않을까를
걱정하시지만, 나는 생각보다 그런 조직 안에서도 스스로의 자유를 잘 지켜나가는 편이다.
위계질서의 끝판왕 급인 군대에서도 중간 계급 (소위 ~ 중위)으로 잘 견디다가 왔기 때문에 자신이 있다.
오히려 위계질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비위맞추기도 편한 면이 있다.
그래서 군대에서 만난 많은 지휘관들과 상관들 (우리 부대 뿐 아니라 파견지의 다른 부대 지휘관들 까지도)은
대부분 나를 좋아하셨다.
비록 전역 직전 GP 파견 때 만났던 수색중대장은 나에게서 혼낼 거리를 찾아내려고 노력했기에 약간의 긴장 관계를 유지했지만, 말년 중위다운 노련한 탈압박으로, 열심히 하지는 않으면서도 결과물은 만들어내어
할 말이 없게 만들어버렸다.
쓰다보니 잡문이 길어졌다.
이렇게 나는 글이 꼭 필요한 사람이다.
글로 받은 스트레스는 글을 써서 풀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생각을 쭉 정리해야 온전히 납득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점점 글 같은 건 읽지 않는 추세라고 하지만,
글쓰기는 다른 사람을 떠나 오로지 나를 위한 창이자 방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