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아도 보이지 않는

안녕하신가영의 「숨비소리」와 함께

by 하동소년
<숨비소리>


"어김없이 해가 떠오르면

오늘도 물질이 시작된다

어제는 여름이었을 텐데

매일매일은 겨울이어라

섬을 떠난 많은 소식들을

불턱에 둘러앉아

짐작한다, 짐작한다, 걱정한다

이렇게 잠깐 몸을 누일 때면

이곳은 아무 일이 없단다, 없단다

걱정하지 말아라

호오이 호오이

어떤 울부짖음 같기도

호오이 호오이

안도하는 한숨 같기도

고요한 수면 위로 내뿜던

어머니의 숨비소리는

닿은 적 없는 뭍을 향한

아들딸의 이름이었나"


- 안녕하신가영 「숨비소리」




지난 화요일에 엄마의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오는 주말에는 산소에 다녀왔다. 그 과정에서 엄마와 함께 있던 시간을 과거부터 최근까지 곱씹어봤다. 7살 때는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자주 다녀왔었다. 시장에 있는 다른 아줌마들에게 이쁨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때에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을 때라서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가장 많이 봤던 때이다. 엄마는 나를 혼낼 기회가 있을 때 내재되어 있던 다른 화를 함께 풀어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내가 기숙사에 들어갔는데 집 밖에서 지내야 하는 내가 불쌍했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이전에는 나보고 꼴도 보기 싫으니까 나가서 살라고 했으면서 정작 나가서 살게 되니까 왜 우는 건가 싶었던 생각이 난다.


이 밖에도 이런저런 기억들이 있지만 그렇게 선명하지는 않다. 지금 나에게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엄마가 암 투병을 할 때 내가 곁에 있었던 기억들이다. 처음 엄마가 투병을 시작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대학생이었던 나는 급하게 학교를 쉬고 집에만 있었다. 엄마 곁에서 요리도 하고 집안일도 하며 무엇보다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엄마는 머리카락을 잃었고 피부의 생기를 잃었고 일어설 수 있는 다리 힘을 잃었고 끝내 숨도 잃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엄마가 아팠던 모든 시간들이 박제되어 있다.


많고 많은 기억들 중에 더 좋은 기억들도 많을 텐데 왜 하필 엄마가 아플 때의 기억만 선명하게 남았을까 싶었다. 그저 과거의 기억은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당연스럽게 잊히고 제일 최근의 기억이라서 잘 기억하는 걸까 생각했다. 그렇다고 하기엔 설명이 부족하다 느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더 젊고 아름다웠던 엄마의 모습을 선명하게 기억해내지 못하는 내 자신이 싫었다.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엄마가 아프기 이전의 시간은 엄마가 나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썼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엄마가 아팠을 때는 내가 엄마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지 않았을 때였다. 이전에는 항상 엄마가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런 엄마를 마주 보지 않고 내가 보고 싶은 것들만 보았다. 엄마가 아플 때는 엄마 말고는 바라보지 않았다. 그럼 당연한 거다. 내가 바라본 것이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나는 엄마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했으니 후회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후회가 없진 않았다. 엄마가 떠나고 난 뒤의 빈자리를 보면서 그 빈자리에 나타나는 눈앞의 환상은 머리카락이 없고 어두워진 피부에 힘이 없이 초라한 모습의 엄마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난 뒤 왜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기억 속에 남겨두지 않았나 하는 후회를 했다.


엄마는 알까?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당신이 내뱉는 숨비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이기적으로만 살아왔던 과거를 뼈저리게 후회한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기적인 나를 사랑해준 당신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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