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좀 아파야겠다.

시와의 「여전히 모르겠어요」와 함께

by 하동소년
여전히 모르겠어요


"언젠가 나와 조용히 약속하길

어른이라면 혼자서 감당할 것

고민의 시간은 끝낸 후에 밝힐 것

어지러운 생각은 드러내지 말 것

그러나 가려야 한다면 거짓은 아닐까 너무 어려워

마음속 일어나는 바람 잠잠해지지 않고 모두 흔들어

오해로 가득한 나날이여 오늘의 나를 거짓이라면

어느 곳에 온전한 내가 있을까

그러나 가려야 한다면 거짓은 아닐까 너무 어려워

마음속 일어나는 바람 잠잠해지지 않고 모두 흔들어

오해로 가득한 나날이여 오늘의 나를 거짓이라면

어느 곳에 온전한 내가 있을까

오해로 가득한 나날이여 변하지 않는 답이 있다고

먼 길을 걸었지만 여전히 모르겠어요"


- 시와 「여전히 모르겠어요」





하루 중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꼽으라면 요즘은 자려고 누웠을 때다. 누운 이후부터 잠에 들기까지 무수한 생각들이 나를 괴롭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니다. 눈 떠있을 동안 억지로 억지로 묶어두었던 떠올리기 싫은 생각들이 알아서 터져 나오는 것이다. 아니다. 억지로 회피하려고 했던 나에게 벌을 주는 것이다.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나 역시도 2020년은 살아가기 어려운 해였다.

봄에는 엄마가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여름에는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가을에는 작은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다.

겨울에는 내 직업을 결정짓는 시험에 또 떨어졌다.

봄, 여름, 가을에 겪었던 슬픔에 결정타를 날린 게 겨울의 시험 낙방이었다. 곧 서른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남이 벌써 이루어버린 나의 꿈을 더 늦기 전에 잡아야 했다. 먼저 떠나버린 가족이 자기 때문에 남은 가족의 발목을 잡았다는 죄책감을 주기 싫었다. 그래서 슬픔을 겪는 와중에도 많은 고통을 인내하며 할 수 있을 거라며 희망을 걸었다. 그리고, 나는 철저히 파괴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얻은 것 없는 떨거지."


잃어버리기만 했다. 잃어버린 것을 상쇄시키기 위해 많은 고생을 했다. 그러나 잃는 게 더 많아졌다. 시간도 잃었다. 젊음도 잃었다. 열정도 잃었고, 정신력도 잃었고... 가족도 잃었다. 도대체 얼마나 더 잃어야 하나. 나보다 먼저 더 어린 나이에 이룬 사람들은 남모르게 뭘 그렇게 많이 잃었길래 내가 얻고자 한 것을 얻어가고 있는 것일까? 혹여나 내년에 원하던 걸 얻는다고 한들 수지가 맞는 장사일까?


이젠 모르겠다. 그동안 많은 바람과 돌멩이를 맞아온 기둥은 사소한 보수작업 하나 없이 더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되었다. 이전에 지금 겪는 슬픔은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뉘앙스의 글을 많이 썼다. 당시에는 희망을 염두에 두고 썼지만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다. 슬픔이 영원하지 않은 것은 맞다. 슬퍼하다가 결국 슬퍼할 힘도 다 써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공허함과 허무함, 자괴감이 남는다. 누군가에게 맞고 있는데 이전에는 조금이라도 덜 맞기 위해 손을 올리고 몸을 웅크렸다면, 이제는 온몸에 힘을 빼고 상대가 때리는 대로 맞고 있는 것이다.


이기적이라 해도 좋고, 철이 없다고 해도 좋다. 그런 말 받아 칠 힘도 없다.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건 아니다. 살긴 살아야지. 아마 시간이 좀 지나면 다시 더 무거운 짐을 짊어매고 더 아픈 다리로 걸어가면서 말로는 좀 나아졌다고 할 것이다. 나중이 되면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작은 희망을 붙들고 이를 상기하는 글을 쓸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오늘의 나는 나에게서 너무나도 멀어졌다는 것. 그것뿐이다. 일단은 좀 아프고, 나중에 일어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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