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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꽃피 Jan 04. 2022

사월에 꽃마리 피다.

cucuherb. project



2020. 4. 11.



봄마다 길을 걸으며 종종 눈여겨봤던 꽃이 있다.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때는 차가운 겨울이 한동안 들어앉았던 자리에 밝게 빛나는 햇살의 미세한 조각들이 따사롭고 선선한 공기와 뒤엉켜 이리저리 튀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꽃이 다른 하나의 개별적인 앙증맞은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자마자 나는 그의 곁으로 쪼르르 달려가 작게 웅크리고 앉았다. 생기발랄하게 인사를 건네는 노란 중심, 그리고 그 주변을 감싸며 새벽 이슬을 머금은 연보라빛 혹은 맑게 갠 하늘을 비추는 푸른 꽃받침은 마치 산뜻한 봄의 시작을 노래하는 듯 했으며, 단숨에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느 봄날, 어김없이 길가에 쪼그려 이 꽃을 바라보던 나는 불현듯, 자꾸만 시선이 가는 이 꽃의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꽃 본연의 매력에 너무나도 사로잡힌 나머지, 그것의 명칭 따위는 개의치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것의 이름까지 알고 싶었다. 나는 꽃이 가진 여러 특징들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검색해보다가 꽃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꽃마리.’



감겨 있던 태엽이 풀리듯 꽃이 돌돌 말려 있다가 피어나는 모습을 두고 지어진 이름이란다. 본래 이름인 ‘꽃말이’는 점차 연음화되어 ‘꽃마리’가 되었다. 꽃의 오밀조밀함과 순수함, 그리고 해맑음이 한데 정겹게 말려 있는 사랑스러운 이름이다. 형식이 본성과 이렇게도 꼭 붙어 있으니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은 단언컨대 없었다. 게다가 영어로는, 잎을 비비면 오이향이 난다 하여 ‘cucumber herb’라니. 물론 공식적인 학명은 따로 있고, 일본명 ‘큐우리구사 (キュウリグサ, 胡瓜草, 호과초)’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거나 귀여움은 이미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초과했다.



“마리야, 마리야. 꽃마리야.”



난 그 이름을 자꾸만 불러보고 싶었다. 그렇게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몇 번을 되뇌이다가 ‘꽃마리’는 나와 긴밀하게 연결된 어떤 의미를 갖게 되었다. 나는 언제나 삶에는 죽음이 있음을, 삶은 죽음과 자신의 양면을 나누어 가지며 더욱 찬란한 빛깔을 띠게 됨을 기억하고자 한다. 그런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진리에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라는 계절, 그리고 내가 태어난 달이기도 한 4월은 삶과 죽음이 호환되는 시간을 상징한다. 그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나의 일상과 이상, 현실과 꿈, 작고 무던한 나의 존재가 살아가는 방식, 세상을 대하는 태도, 또 내가 예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이곳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려는 이유,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꽃마리를 처음 보게 된 순간, 그것의 이름을 알게 된 순간, 그것을 수없이 마주하고 곱씹은 순간들과 다르지 않다. 나에게 삶이란 그저 지나칠 수도 있는 반짝임에 대한 작은 발견들의 연속이고, 예술은 그러한 다채로운 발견들에 이름과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며, 글쓰기는 그 과정을 가장 본질적이고 체계적으로 표현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내가 채택한 방식이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애정을 담은 시선으로 주변의 사소한 것들을 하나하나 마주하여야 비로소 보이는 작은 꽃에게서 나는 나의 내면을 보았던 것이다. ‘꽃마리’는 그렇게 내 영혼의 중심에 뿌리를 내렸다.




그리하여 올봄에도 꽃마리 피다.



작은 것들의 이름을 부르고

삶과 죽음, 의미의 생명력을 노래하는 ‘꽃말’이 피다.






사월에 꽃마리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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