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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꽃피 Feb 15. 2022

초자아; 기필체일치 (氣筆體一致)

암점 속에서



최초 작성일: 2021. 08. 03.

최종 수정일: 2022. 02. 16.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의 용어로 나의 정신 세계의 일상을 그려 본다면, '초자아(Superego)'가 아름다운 자태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아를 유혹한 뒤 돌연 자아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광경이 나올 것이다. 초자아는 순순히 자신을 따라오는 자아에게 달콤한 쾌락을 선물한다. 하지만 과도하게 비대해진 초자아는 자아를 흠씬 두들겨 팰 수 있다. 만신창이가 된 자아는 우울에 잠식되고 ‘죽음 본능’에 더욱 쉽게 이끌린다. 그럼에도 초자아의 뒤를 쫓는 나는 미련한 마조히스트이며, 불행한 자아를 동정하지 않는 무자비한 사디스트다.



검도에서는 ‘기검체일치(氣劍體一致)’라는 자세가 중요하다. 말 그대로 기와 검과 몸이 일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합으로 표현되는 공격 의지, 올바른 죽도의 사용, 몸의 올바른 동작이 하나로 모이며 유효타를 만들어 낸다. 내가 현재 글쓰기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자세란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임을 깨닫고 매일 아침 ‘기필체일치(氣筆體一致)’를 쓰며 하루를 시작한다. 생각과 글과 행동을 일치시킨다.  





근데 드럽게 안 된다.


이제는 솔직히 내 안의 초자아를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것, 완벽한 이상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초자아는 자아가 아니라 초자아다. 이상은 현실이 아니라 이상이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절망하지 않기로 했다. 초자아 덕분에 자아는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자만하지 않고 배움의 부스러기 하나라도 더 얻을 수 있다. 양보다는 질을 추구하는 본능의 쾌락 원칙을 더욱 의식적이고 선택적으로 지지하기로 한다. 나는 앞으로도 초자아를 사랑할 것이다.



정신분석은 나에게서 타인을, 타인에게서 나를 발견하는 작업이다. 내가 오롯이 나라고 생각한다면 경기도 오산이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내 안에는 수많은 대상이 숨을 쉬고 세계에 대한 욕망이 들끓고 있다. 타자에 대한 사랑과 증오에는 나에 대한 사랑과 증오가 있다. 그것을 발견하고 해체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반면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무언가가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짓기는 쉽다.



판단한다는 것은 자아가 쾌락 원칙에 따라 사물을 자기 속에 끌어들이거나 자신에게서 격퇴시키는 원래의 과정을, 편의주의 노선에 맞추어 계속하는 것이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윤희기 · 박찬부 옮김, 열린책들, 2020, 458쪽.



나는 정말 ‘나’를 보고 있는가? 정말로 저 ‘대상’을 보고 있는가? 영화 <굿 윌 헌팅 Good Will Hunting>(1997)에서 숀은 윌에게 묻는다. “너 고아지? 네가 뭘 느끼고 어떤 사람인지 고아가 주인공인 ‘올리버 트위스트’만 읽어 보면 다 알 수 있을까? 그 책 한 권이 널 다 설명할 수 있어?” 얼마나 많은 것을 보았든 눈은 언제나 특정 단면만을 바라보는 아주 좁은 창구일 뿐이다. 정신분석학의 위대한 업적은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것 이전에, 우리가 모르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는 데 있다. 물 아래 숨겨진 거대한 빙산, 빛보다 커다란 암점. 하나의 증상 아래에는 리비도 사이의 열띤 대화가 펼쳐지고, 하나의 행동은 근원을 향해 미로와 같은 먼 길을 되돌아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잊혀진 기억은 영원히 각인되고, 부정은 인정이 되고, 지성과 감성은 분열된다.



구스 반 산트(Gus Van Sant, 1952~), <굿 윌 헌팅>(1997) : 백조를 보며 대화를 나누는 숀과 윌.



근데 이렇게 써도 이론적으로 배운 것을 몸소 실천하는 건 별개다. 문자가 백지를 뚫고 숨을 내쉬길 원한다. 그리고 그 숨결을 다시 백지에서 들이마시길 원한다. 제발 뭐라 끄적대지만 말고, 대충 보지 말고, 오해하지 말고, 넘겨짚지 말고, 다 안다고 자만하지 말고, 똑바로 좀 보라고. 똑바로 본 걸 종이 안에, 머릿속에 고이 담아 두지만 말고 실행에 옮기라고. 앗, 그새 초자아가 발동되었나 보다. 더 깊숙이 느껴야 한다. 신비로운 정신들은 더욱 존중받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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