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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꽃피 Jul 16. 2024

체리콕 하이볼

Circle of Life 3




아직 해가 들지 않은 5월의 일요일 새벽이었다. 잠이 오질 않아 시리즈물 영상을 줄줄이 이어 보고 있던 중이었다. 영상 하나를 새로 틀자마자 귀를 사로잡는 노래 한 곡이 들려왔다. 나는 홀린 듯 노래를 검색했고 몇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나를 감정적으로 휘감는 이 음악을 집요하게 찾았다. 감성에 한껏 젖기 쉬운 새벽이었다. 내뱉고 보니 누군가의 미련한 전남친이 실수를 저지르고는 비겁하게 할 법한 말이지만, 실은 나 역시 그런 새벽이 주는 감성에 취약하다고, 또한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기도 함을 조심스레 고백하고 싶다.


배가 고팠던 나는 어제 먹고 남은 감자 요리를 먹었다. 먹으면서 아차 싶었다. 단순히 감자를 좋아한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전날 요리를 할 때 감자를 살짝 덜 익혔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익혔던가, 그냥 먹었던가? 아삭거렸던 식감만 또렷이 생각이 난다. 이러한 소소한 부분이 기억이 나지 않을 땐, 괜히 뭔가 좀 아쉽다. 평범한 듯 특별했던 날이었는데, 그 일요일은.


감자를 다 먹고는, 냉장고에 아끼며 쟁여 두었던 체리와 체리콕 하이볼이 생각이 났다. 솔직하게는, 술이 먼저 생각이 났다. 체리와 함께 체리콕 하이볼을 마셨다. 그 점이 날 즐겁게 했다. 체리와 체리맛 술을 먹는다는 게. 체리가 두 배니까. 단 듯 적당히 달지 않은, 새콤한 듯 적당히 새콤하지 않은 맛. 체리콕 하이볼의 표면은 고맙게도 굉장히 차가웠다. 나는 하이볼 캔에 서려 있는 차가운 공기가 나에게도 묻도록 캔의 원기둥을 움켜잡았다가 손끝으로 뚜껑의 원형 테두리를 훑었다. 손의 끝과 마디마디에 시원함이 찌릿하게 전해졌고, 이어서 같은 방식으로 하이볼은 목구멍을 자극했다.







내가 찾은 곡은 Letra의 <Circle of Life>라는 가사 없는 음악이었다. 2분도 안 되는 짧은 곡을 나는 몇 시간 동안 계속 틀어 놓았다. 빠른 버전과 느린 버전이 있었고, 두 곡을 번갈아 가며 들었다. 영원히 이 곡만 들을 것처럼 반복 재생했다. 유연하지만 강단 있게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아니면, 진짜 춤을 췄던가? 중요한 건, 사실이 어떠하든 아쉽지 않을 만큼 그 시간 속의 나는 춤을 추는 기분을 만끽했다는 것이다.


새파란 새벽, 그에 물든 새파란 창과 커튼. 노란 감자와 붉은 감자의 시즈닝, 그리고 체리. 원색들이 모여 부드럽게 하나의 추상적인 원이 되어 가는 앨범 커버처럼 그날의 색감도 맛도 그러했다. 음악 속에 빠진 나는, 감정이 담겨 있기에 더 이상 사물이 아닌 주변의 사물들을 사진으로 찍었다. 어쩐지 예전의 망설임 같은 건 없었다. 쓰고 싶은 것들을 머릿속으로 마음껏 그려 보았다. 당장 무언갈 쓸까도 생각했지만,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찰나의 감각들에 집중했다. 지금의 이 순간을 포함, 언젠가 쓰임을 받을 것이라 직감하면서.


음악은 멀고도 가까운 시간적 거리를 통틀어 나를 계속 이전의 정서와 분위기로 되감았다. 이 곡에는 말이 없지만, 도리어 말의 부재가 힘을 발휘하여 내 안에 강력하게 각인되어 있었으나 시간의 정방향이 막고자 했던 중요한 사건과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구체적이진 않았으나, 내면의 많은 것들을 빠르게 훑었다. 새파랗고 빨갛게 익은 감정들이 서로의 이질감은 잊은 채 한데 어우러져 춤을 췄다. 하나의 촛불처럼 꺼지려다가 커지기를 되풀이하며, 흔들렸다. 다른 한편, 재생되고 있는 음악은 앞으로 유유히 흘러가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내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향하는지 질문했다. 음악은 처음부터, 내가 그럴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내가 처음부터 이끌렸던 것은 그런 음악의 확신이었다.



여느 시간처럼 새벽은 아침이 되어 갔고, 기어이 찾아내고 만 음악은 나의 정신을 몽롱하게 깨워 주었다. 오후가 오질 않길 바라며 무한 재생하고 싶었다. 어떤 기억들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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