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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꽃피 Jul 16. 2024

단 하나의 메시지

누군가는, 쓴다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의 말은

단 하나의 메시지로 응축된다.


써라.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시작부의 시계




반면, 그것을 깨닫고 난 후의 감정들은 결코 하나로 집약되지 않는다. 한곳에 머무르거나 규정되거나 귀결될 생각이 없다. 오히려 한없이 깨지고 분열되며 수와 얼굴을 늘려간다. 화려하다가 곧 초라해진다. 자신하다가 부끄러워진다. 길을 찾았다! 환희로 외치다가, 반갑게 손짓하다 길을 잃는다. 바라보던 대상을 잃는다. 날갯짓을 하며 상상을 초월하다가 현실의 바닥에 내리꽂힌다. 아파도 그것이 현실인지 모른다. 현실이어도 아픈지 모른다. 백지를 자유로이 유영했다가 검은 글씨들을 신나게 휘갈겼다가 검은 글씨들은 암흑이 되고, 나는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질식한다. 신기하게도 매번 다시 살아난다. 어떻게든. 마치 나도 모르는 사이, 기필코 살기를 바랐다는 듯이. 매 순간 깨닫기를, 하루하루 다시 태어나기를 소망하고, 신기하게도 소망은 이루어진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충만했다가 이내 외로워진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원을 그리며 도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원형의 시계를 도는 바늘처럼. 때로는 차분히 제 역할을 하는 시계였다가, 째깍째깍 임무에 맞춰 바늘은 매분, 매초, 매시 착실하게 한 걸음씩 나아가다가, 망가진다. 거꾸로 돌아간다. 맹렬하게 소용돌이친다.


그러나 언제나 중심이 있는 것임은 분명하다.



쓴다는 것은 세상과 나 사이의 창을 깨끗이 닦는 것. 근본적으로 성장하는 것. 뿌리에 양분을 공급하고, 씨앗으로부터 꽃을 피워 내는 것. 자궁 속의 태아처럼, 알 속의 새끼처럼 오래도록 잠들어 있다가, 도란도란 대화를 꿈꾸는 것. 달콤한 꿈을 꿈인 줄도 모르게 꾸다가 깨어나는 것. 고통스럽게 깨어 나오는 것. 불안을 찬찬히 음미하는 것. 벗고, 벗기고, 계속 벗는 것. 한 알의 단어라도, 한 줄의 문장이라도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는 것. 무거움을 사뿐하게 분배하는 일. 고요한 의지와 격렬하게 요동치는 열성을 머금은 정적. 애쓰다가 결국엔 정말 믿어 버리는 것.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인내하는 일. 멋드러진 비행을 뒤뚱대고 덤벙이며 준비하는 일. 차곡차곡 벽돌을 쌓았다가 벽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아는 것. 알고 벽을 과감하게 허무는 것. 그리고 다시 쌓는 일. 삶의 행위로서의 일. 어쩌면 가장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느끼는 방법. 때론 삶 그 자체. 때론 나 자신. 그리고 이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는 것. 때론 그에 전면으로 대항하는 것. 담대한 이별. 나아가, 우리를 용서하고 화해로 이르는 길. 점화된 분노과 정화된 눈물. 악에 받친 고함 그리고 목구멍을 애틋하게 맴도는 목소리.


다른 무엇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일. 그래서 두렵고 두려운 일. 불완전한, 그래서 온전한 나를, 진실을 마주하기란. 투명한 눈을 맞추고 써 내려간다는 것은.


하지만 원이 되어 돌아가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원으로 돌아가는 것임이 분명하다.





" 누군가는, 강가에 앉아 있기 위해 태어난다.

  누군가는 벼락을 맞는다.

  누군가는 음악을 깊게 느끼고, 누군가는 예술가다.

  누군가는 수영을 하며,

  누군가는 단추에 대해 잘 안다.

  누군가는 셰익스피어에 대해 알고,

  누군가는 그냥 엄마다.

 

  그리고 누군가는 춤을 춘다. "



-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2009)의 마지막 대사.


   'Bethena'가 느리게 흐르는 마지막 장면.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마지막 장면의 시계




Some people, were born to sit by a river. Some get struck by lightning. Some have an ear for music. Some are artists. Some swim. Some know buttons. Some know Shakespeare. Some are mothers. And some people, dance.


- David Fincher,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2008),

   Originally written by F. Scott Fitzgerald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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