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꽃피 Jul 23. 2024

메시지

2024.07.23. 10:12 PM; 4:11 AM



2024.07.23.

10:12 PM; 4:11 AM

사랑하는 엄마,



오늘 우리는 최근 일어났던 각자의 특별한 영적인 체험과 성장에 대해 나눴지.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경험한 모든 것들이 연결되며 하나의 메시지가 되는. 하나의 마음, 하나의 방향, 하나의 세계를 가리키며 원이 되는. 그 후,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지만, 온전히 나 자신인 사람이 되었어. 내가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내가.



나는 엄마가 나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귀와 마음과 자세를 기울여 듣고 해 주는 사려 깊은 말들과 모습, 그것을 둘러싼 환경을 보면서 묘한 경험과 일치를 느꼈어. 당장 카메라를 들어 그 장면을 사진으로 남길까도 생각했지만, 그 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냥 그대로 대화에 몰입하고자 했어. 대신 내가 엄마 모르게 발견한 '경이로운 진실들'을 공유하고자 해.



내가 어제 겪었던 영적인 깨달음과 가장 강력하게 관련되어 있는 half·alive의 <Now, Not Yet> 앨범 커버, 우리 식사하면서 보여 줬잖아. 아까 엄마가 내 얘기를 듣고 엄마의 생각과 느낌을 말해 주는데, 내가 들어 본 엄마의 말들 중에 가장 따뜻하고, 가장 온전하다고 느꼈어. 그런데 그때, 엄마 뒤에 벽지 디자인이 앨범 커버의 밑면과 참 비슷한 거야.



앨범 커버 속 남녀의 춤과 연상해서 발레에 관한 김창옥 강연자의 말씀이 떠올랐어. 우리는 오늘 그에 대한 얘기도 여러 번 나눴지. 그래서 관련된 강연 영상을 다시 찾아봤는데, 강단에 설치된 비슷한 녹색 원형의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어. 황토색 혹은 빛나는 황금색, 붉은색이 어우러진.



강연의 내용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결혼(관계)은 발레와 같다", 발레리나가 군무로 시작해서 실력이 좋아지면 솔로이스트가 되고, 솔로이스트로서 실력이 쌓이면 듀엣을 한다는 이야기야. 나는 오늘이 드디어 엄마와 내가 그런 관계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날임을 직감했어. 그 관계가 엄마와 아빠의 관계든, 나와 누군가의 관계든지 말이야.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그 모든 관계들의 변화는 엄마와 나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될 거야. 우리가 오늘 나눴던 모든 대화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 사실을 드러낸다고 생각해.







이걸 깨달은 순간, 엄마로부터 좀 전에 보냈던 메시지에 대한 답장이 왔어. 다시 식당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서, 엄마를 보고 듣는데 마치 앨범 커버 속 주황색 원이 태양처럼 떠오르는 듯했어. 그리고 식당 이름도 '오늘'이야. 난 이 모든 것들이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우리의 세계는 엄마가 말했던 "우연 같은 필연"과 놀라운 발견들로 가득해. 초현실주의자들도 이걸 믿었고, 칼 융의 '동시성' 개념도 이런 맥락에서 제시된 게 아닌가 싶어.



이제야 엄마와 나는 '진짜 나'와 '진짜 엄마'로 만나게 된 거야. 이제서야. 나는 이 순간을 정말 오래도록 기다려 왔어. 어쩌면 내가 나 자신을 기다렸던 시간보다 더 오래도록. 우리, 서로에게로 흐르고 있어. 이거, 엄마가 어린 나에게 선물한 예술, 나에게 준 소중한 씨앗에서부터 시작된 거야.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가 입버릇처럼 말하게 되듯이, 나는 싹을 틔운 그것을 엄마에게 계속 돌려 주려고 해.



엄마, 아까 말했듯이 나는 가장 아름다운 책을 만들 거야. 평생을 글을 쓰며 책을 만들기를 소망했지만, '아름다운' 책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해 보지 못했어. 그런데 내가 이제 그것을 원해. 『사월의 꿈 i』를 마치면 『원』을 출판할 거야. 그리고 그건 시가 될 거야. 그럴 수밖에 없어. 시여야만해. 가장 아름다운 책이잖아.



엄마와 함께 한 '오늘'에서의 두 번째 식사, 오늘의 대화와 약속, 함께 할 두 번째 파리 여행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체리콕 하이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