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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꽃피 Jul 30. 2022

파몽 1

선순환, 평정, 꿈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저절로 눈이 떠졌다.


거실에 나와 보니 환한 여름 햇살로 가득했다. 커튼과 벽면에는 그림자가 드리웠다. 강한 햇살 만큼이나 선명했다. 새집에 이사를 오고 지난 한 달 동안 보지 못했던 모습이라 사진을 찍었다.





어젯밤에 뉴욕 언니가 사 온 사케를 마셨다. 언니가 떠나고 나는 남은 술을 마시며 친구들 몇 명과 짧게(통화 기록을 보니 엄청 짧지는 않다.) 통화를 했다. 몸 안의 뜨거운 사케가 아직도 느껴진다.


남아 있는 사케를 다 마시고 나는 슬퍼졌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지. 지난주에 맥주 마실 땐 안 이랬는데. 사케가 사람을 이렇게 만드나.


내가 나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날과 같은  그랬다.  점이 이상하고 모순적이다. 아직 해야  일들이 잔뜩 밀려 있고, 잃어버린 것들이 생생하고, 이루고 싶은 것들을 얻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룬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날 오후에 쨍한 햇살을 받으며 은행을 갔다오는 길에 그랬다.  개의 원이 사이좋게 삼각형을 그리는 것처럼. 사월의 꽃마리처럼. 나는  많은 것들을 깊숙이 인정하게 되었고, 기억하게 되었고, 수많은 순간들의 나와 함께였고, 그저 내가 되었다. 그리고 그저 그런 투명한 나로서 사람 세상을 대면하게 되었다. 그렇게 진정 어린 교감과 소통과 언어와 존중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다.


그 순간의 나는 감정적으로 기뻤고, 행복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단지 감정만으로 묘사하기에 그것은 너무도 충만하다. 그렇다면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을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흔들리지 않는 중심, 삶과 의미의 화합, 시간에 대한 온전한 감사, 현재를 위한 적당한 희망, 근원에 대한 사랑. 기필체일치, 선순환, 평정. 나의 이름, 빛나는 진실, 진실된 꿈. 내가 『사월의 꿈』을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했고 간절히, 아주 간절히 바랐던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음을. 지독히 아파야만, 그로 인해 용기 있게 대면하고 정당하게 투쟁해야만 체화할 수 있는. 7월과 함께 『사월의 꿈』의 1편도 끝에 가까워진다.


스쳐간 여름, 열띤 햇볕마저 달가울 정도로 공허했던 나의 내면이 생과 생명의 힘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내가 나 그 자체여서 해도 그저 해가 되도록. 또 이제 나는 그것을 그대로 만끽할 수 있다.





그런데 같은 날, 남아 있는 사케를 다 마시고 나는 슬퍼졌다. 최근 나를 포근하게 감쌌던 평온을 비집고 나도 모르게 제쳐두었던 어두운 감정들이 밀려왔다. 아직도 내가 나에게 충분히 솔직하지 못한가. 그건 아니다. 그냥 나도 어쩔 수 없는 부분들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젯밤 원치 않게 마주해야 했던 불순물 같은 감정들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날 오후에 느꼈던 찬란한 평정의 순간이 거짓된 것이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꼭 그렇다. 들쑥날쑥. 이랬다저랬다. 하지만 가엽기도 한 그 아이들을 그대로 두었다. 감정은 감정대로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다시 내가 배운 진실을 향해 나아갔다. 일찍 일어나면 보상처럼 줘야지 하고 쟁여 놓았던 2+1 편의점 커피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선명한 그림자의 본질은 강한 햇살이다. 창을 열고 환하게 푸르른 하늘을 보았다.


여행을 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대신 나를 찾아 헤맸고, 혼자 남아 썼다. 그리고 그토록 원하던 것을 찾았다. 누구도 가져갈 수 없는 단단한 본질, 오로지 나만이 찾을 수 있는 답, 나만이 걸어갈 수 있는 길, 창조되어 가는 나, 진실로서 드러나는 세계, 내가 써 내려 가는 이야기. 그토록 원하던 것을 찾았으니 또 헤매더라도 아주 헤매진 않을 것이다. 어디를 가고, 무엇을 먹고, 누구를 만나든 흔들릴 수도 있지만 그것과의 만남이 진실된 나, 대화, 이야기로서 다시 깨어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선순환, 평정.

꿈 그리고 파몽. 눈을 뜨고 다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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