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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꽃피 Apr 30. 2023

파몽 2

눈을 뜨고 다시, 꿈



꿈 - 파몽 - 다시, 꿈. 


꿈을 좇기 시작한 이후부터, 이 과정이 나에게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과정은 망망대해에서의 표류가 아닌, 주체적인 의지와 성장을 발현하여 인생의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론, 때때로의 표류도 썩 괜찮은 경험이 되긴 한다.) 이 과정은 『사월의 꿈』 이야기를 이루는 구조이기도 하다. 내가 쓴 이야기대로 살고 있다니. 존재와 쓰기, 삶과 이야기의 관계란 참으로 신비롭다.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할 수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예술의 안과 밖. 그렇게 키워졌으므로. 유아 시절에는 빈약했던 촉을 남모르게 곤두세웠던 청소년기,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더듬어 가며 스스로를 '양극적인 인간'이라 규정했다. 내 안으로 체화되려는 것을 언어로 받아 내는 힘. 그것이 나의 주체성이었고, 생존법이었다. 어쩌면 유일한. 극단적인 삶, 극단적인 죽음. 어느 쪽이든 늘 극단에 서 있기에 비장할 수밖에 없는. 양극적인 인간은 사월의 양극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야기의 장, '사월에 꽃마리 피다'로 발전했다. 



'사월에 꽃마리 피다'라는 이름으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글을 쓰고, 책을 내고, 미약하지만 깊게 소통하면서 일구어 낸 가장 큰 발견 중 하나는 양극단 사이의 중도였다. 즉, 평정. 그것이야말로 양극적인 인간이 그토록 바라던 것의 실체임을 알게 되었다. 평정은 또 다른 의미에서 마음의 균형이고, 자아의 통합이며, 삶과의 연결이다. 즉, 전체에 대한 사랑. 매 순간 평정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어쩌면 꾸준히 배우기 위해서는, 그래서는 안 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평정이라는 것이 내 삶에 존재할 수 있다는 때때로의 작은 경험들만으로도 꿈을 지속시키기 위한 위안과 희망이 되기는 충분했다. 



첫 번째 책이 고백하듯, 조각난 것들에서 출발했다. 조각난 것들이 내 재료다. 과거는 정신없이 그것들을 찾아 헤매고, 모으고, 이해하려는 시도들이었다. 지금은 그것들을 어디에 어떻게 이어 붙일까 찬찬히 고민한다. '이어진다'는 게 중요하다. 내가 하려는 모든 일은 콜라주로 집약된다. 미래는 콜라주의 완성이다. 매끄럽지는 않다. 그저 '이어진다'는 게 중요하다.



흐르고 흐르는 사계절 중 한 계절이라도, 열두 달 중 한 달이라도 마음에 영원히 잡아 둘 수 있다면.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시작은 그랬다. 시간이 갖고 싶었다. 마음을 만지고 쏟아 낼 수 있는 시간. 나의 형체와 윤곽선을 선명하게 그려 볼 수 있는 시간. 사람을 잡아 두는 것보다는 그 편이 더 수월할 것이라는 기대. 계절은, 자연은, 세계는 그런 나를 포근하게, 충분히 감싸 안아 주었다. 그리고서는 준비가 되었을 때, 날 밀어내었다. 사람에게 가라고. 느꼈던 것을 사람에게 흘려보내라고. 고여 있지 말고 흐르라고. 그렇게 돌아온 사월. 영원하다는 것은 시간과 계절과 함께 흘렀을 때 가능한 것이군요. 좀 아프더라도, 사람과 함께.



책을 낸 이후, 뜻하지 않은 편지들을 받았다. 책은 나에게 쓴 편지였을 뿐 아니라, 독자에게 쓴 편지였다. 책에 대한 답장을 받을 때마다 내 안에 새로운 생명이 깃드는 것을 느꼈다. 꼭 넘어져 있을 때 답장이 왔고, 다시 설 수 있었다. 세상에 내던지기 전 나는 i 였고, 여전히 i 다. 그런데 나의 글을 읽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I 가 된다. I 는 책이다. 책은 거울 속에 비친 영상보다도 훨씬 선명하게 존재를 반영한다. 책은 타인으로 완성되는 나로서 자명한 인격이다.



꼭 넘어져 있을 때 답장이 왔고, 다시 쓸 수 있었다. 가끔 망각하곤 하니 지속적으로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혼자로서는 쓸 수 없다. 이번 사월, 철저한 혼자의 한계에 다다랐던 순간은 쓰라린 행운이었고, 기회였다. 그때, 다짐했다. 어디에도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을 위해 쓰기로. 이 사람들은 꼭 자신의 의지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타인에게 의지할 수 없기에 그렇다.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을 위해 꾸준히 쓰기 위해서는 나부터 의지할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 마음으로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 그래서 터진 충동을 흘리며 한 발 한 발 조금씩, 과감하게 찾고 있다. 



지금, 전환이다. 꿈에서 파몽으로의. 『사월의 꿈』 1장에서 2장으로의. 책을 한 권씩 낼 때마다, 이전의 책과 다음의 책 사이, 꿈으로부터 파몽해야 함을 깨닫는다. 더 나은 꿈을 꾸기 위해서. 아, 방금 하나를 더 깨달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과 같다.



구상 단계에서부터 『사월의 꿈』의 끝은 언제나 그러했다. 파몽. 눈을 뜨고 다시, 꿈. 무의식의 바다를 힘껏 헤엄치다가 의식의 강물 위로 공기를 들이키고 내쉰다. 혼자에서 함께로 나아간다. 『유령에게 바치는 무성영화』는 여러 관계들에 얽힌 연결, 그것을 감싸고 배회하는 시선을 다룬다. 『찰나』는 가장 중요한 하나의 관계에 집중한다.



꿈꿀 수밖에 없는 인간. 그렇게 키워졌으므로. 꿈, 그것은 인간의 씨앗이므로. 더 나은 꿈을 꾸기 위해서 깨어나고, 꿈으로 회귀한다. 



새로운 꿈을 꾼다. 함께 하는 꿈. 

사랑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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