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고 다시, 꿈
꿈 - 파몽 - 다시, 꿈.
꿈을 좇기 시작한 이후부터, 이 과정이 나에게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과정은 망망대해에서의 표류가 아닌, 주체적인 의지와 성장을 발현하여 인생의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론, 때때로의 표류도 썩 괜찮은 경험이 되긴 한다.) 이 과정은 『사월의 꿈』 이야기를 이루는 구조이기도 하다. 내가 쓴 이야기대로 살고 있다니. 존재와 쓰기, 삶과 이야기의 관계란 참으로 신비롭다.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할 수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예술의 안과 밖. 그렇게 키워졌으므로. 유아 시절에는 빈약했던 촉을 남모르게 곤두세웠던 청소년기,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더듬어 가며 스스로를 '양극적인 인간'이라 규정했다. 내 안으로 체화되려는 것을 언어로 받아 내는 힘. 그것이 나의 주체성이었고, 생존법이었다. 어쩌면 유일한. 극단적인 삶, 극단적인 죽음. 어느 쪽이든 늘 극단에 서 있기에 비장할 수밖에 없는. 양극적인 인간은 사월의 양극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야기의 장, '사월에 꽃마리 피다'로 발전했다.
'사월에 꽃마리 피다'라는 이름으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글을 쓰고, 책을 내고, 미약하지만 깊게 소통하면서 일구어 낸 가장 큰 발견 중 하나는 양극단 사이의 중도였다. 즉, 평정. 그것이야말로 양극적인 인간이 그토록 바라던 것의 실체임을 알게 되었다. 평정은 또 다른 의미에서 마음의 균형이고, 자아의 통합이며, 삶과의 연결이다. 즉, 전체에 대한 사랑. 매 순간 평정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어쩌면 꾸준히 배우기 위해서는, 그래서는 안 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평정이라는 것이 내 삶에 존재할 수 있다는 때때로의 작은 경험들만으로도 꿈을 지속시키기 위한 위안과 희망이 되기는 충분했다.
첫 번째 책이 고백하듯, 조각난 것들에서 출발했다. 조각난 것들이 내 재료다. 과거는 정신없이 그것들을 찾아 헤매고, 모으고, 이해하려는 시도들이었다. 지금은 그것들을 어디에 어떻게 이어 붙일까 찬찬히 고민한다. '이어진다'는 게 중요하다. 내가 하려는 모든 일은 콜라주로 집약된다. 미래는 콜라주의 완성이다. 매끄럽지는 않다. 그저 '이어진다'는 게 중요하다.
흐르고 흐르는 사계절 중 한 계절이라도, 열두 달 중 한 달이라도 마음에 영원히 잡아 둘 수 있다면.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시작은 그랬다. 시간이 갖고 싶었다. 마음을 만지고 쏟아 낼 수 있는 시간. 나의 형체와 윤곽선을 선명하게 그려 볼 수 있는 시간. 사람을 잡아 두는 것보다는 그 편이 더 수월할 것이라는 기대. 계절은, 자연은, 세계는 그런 나를 포근하게, 충분히 감싸 안아 주었다. 그리고서는 준비가 되었을 때, 날 밀어내었다. 사람에게 가라고. 느꼈던 것을 사람에게 흘려보내라고. 고여 있지 말고 흐르라고. 그렇게 돌아온 사월. 영원하다는 것은 시간과 계절과 함께 흘렀을 때 가능한 것이군요. 좀 아프더라도, 사람과 함께.
책을 낸 이후, 뜻하지 않은 편지들을 받았다. 책은 나에게 쓴 편지였을 뿐 아니라, 독자에게 쓴 편지였다. 책에 대한 답장을 받을 때마다 내 안에 새로운 생명이 깃드는 것을 느꼈다. 꼭 넘어져 있을 때 답장이 왔고, 다시 설 수 있었다. 세상에 내던지기 전 나는 i 였고, 여전히 i 다. 그런데 나의 글을 읽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I 가 된다. I 는 책이다. 책은 거울 속에 비친 영상보다도 훨씬 선명하게 존재를 반영한다. 책은 타인으로 완성되는 나로서 자명한 인격이다.
꼭 넘어져 있을 때 답장이 왔고, 다시 쓸 수 있었다. 가끔 망각하곤 하니 지속적으로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혼자로서는 쓸 수 없다. 이번 사월, 철저한 혼자의 한계에 다다랐던 순간은 쓰라린 행운이었고, 기회였다. 그때, 다짐했다. 어디에도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을 위해 쓰기로. 이 사람들은 꼭 자신의 의지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타인에게 의지할 수 없기에 그렇다.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을 위해 꾸준히 쓰기 위해서는 나부터 의지할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 마음으로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 그래서 터진 충동을 흘리며 한 발 한 발 조금씩, 과감하게 찾고 있다.
지금, 전환이다. 꿈에서 파몽으로의. 『사월의 꿈』 1장에서 2장으로의. 책을 한 권씩 낼 때마다, 이전의 책과 다음의 책 사이, 꿈으로부터 파몽해야 함을 깨닫는다. 더 나은 꿈을 꾸기 위해서. 아, 방금 하나를 더 깨달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과 같다.
구상 단계에서부터 『사월의 꿈』의 끝은 언제나 그러했다. 파몽. 눈을 뜨고 다시, 꿈. 무의식의 바다를 힘껏 헤엄치다가 의식의 강물 위로 공기를 들이키고 내쉰다. 혼자에서 함께로 나아간다. 『유령에게 바치는 무성영화』는 여러 관계들에 얽힌 연결, 그것을 감싸고 배회하는 시선을 다룬다. 『찰나』는 가장 중요한 하나의 관계에 집중한다.
꿈꿀 수밖에 없는 인간. 그렇게 키워졌으므로. 꿈, 그것은 인간의 씨앗이므로. 더 나은 꿈을 꾸기 위해서 깨어나고, 꿈으로 회귀한다.
새로운 꿈을 꾼다. 함께 하는 꿈.
사랑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