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꽃핀 방] 2. 브롱 - 가족 여행

알렉상드르 르네 브롱의 <강으로 떠나는 가족 여행>(1896)

by 유하



[안개 꽃핀 방]

1. 블로메르스 - 행복한 집

2. 브롱 - 가족 여행





2022. 8. 29.


전과는 다르다. 새집도 나도. 정리되지 않은 고민과 물건들로 복작거리고, 아프기도, 방황도 많이 했던 '안개 낀 장미 방'. 이제 안개는 걷히는 중이고, 내가 누릴 수 있는 공간은 넉넉하다. 이름 붙일 방도 여러 개다. 그중 침실을 '안개 꽃핀 방'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새집은 전체적으로 '화사한 회색빛'이다. 다소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가벼운 회색 톤에 흰색도 섞여 있어서 그런지 이보다 좋은 표현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사실적이다. 나의 하루가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침실에는 특별히 '안개'라는 이름이 각인되어야 한다. 불안과 걱정을 아늑함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힘이 있는 곳. 실제로 '안개 낀 장미 방'에서 이사를 오며 그런 힘을 확인시켜 준 곳. 내 인생의 불투명한 요건들을 상징하는 '안개'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안개를 기억할 것이다. 새로운 나, 부단히 성장해 가는 나의 인생은 안개로부터 비로소 시작되었고, 희뿌연 안개꽃처럼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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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한 침실, '안개 꽃핀 방'의 두 번째 그림 엽서는 알렉상드르 르네 브롱(Alexandre René Veron, 1826~1897)<강으로 떠나는 가족 여행 Family Excursion to the River>(1896)이다. 현재로서는 안개 꽃핀 방의 마지막 엽서이기도 하다. 제목에 '가족 여행'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온다. 그림 속 하늘과 커튼 밖의 하늘이 비슷한 색감을 띠던 때,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용산 가족 공원'으로 가 산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는 길이 생각보다 추웠고 배가 고팠다. 본가 근처에서 베트남 쌀국수와 짜조를 먹고, 이제 배도 든든하겠다 공원으로 가려는데 바람이 음식점에 들어가기 전보다 훨씬 차가웠다. 따뜻한 국물을 먹고 난 뒤었는데도 너무 추워서 편의점에서 산 초콜릿 바를 씹으며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중학생 때였나. 당시 나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그리고 대체로 가족들에게도 해맑은 모습을 보이며 지냈다.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어두웠고 화가 많았다. 항상 다이어리나 노트를 책상 서랍에 쟁여 두었고, 혼자 있을 때면 두툼한 종이들 위에 토해 낼 것도 많았다. 종이 위에 '가족'이라고 쓰고는, '이런 가좆같은'이라고 고쳐 보기도 했다. 다른 괴팍한 인격이 튀어나온 것일지도 모르지만, 결에 맞지도 않는 욕설을 종이에 끄적거려 보는 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분노이기도 했다. 이토록 평화로운 그림 앞에서 고작 그 정도의 기억을 떠올린다.



다 함께 가족 여행을 간지는 정말 오래되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가족과 잘 지내는 일 대신 스스로를 살리는 것을 목적으로 살게 되었다. 이후, 아빠는 아예 다 같이 가족 여행은 가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다. 아빠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이미 상황은 그렇게 되었는데. 사실 아빠는 자식들보다도 엄마한테 속상한 게 많은 것 같았다. 이제 엄마는 유명 강연자의 꿀팁에 따라 '사랑'보다도 '예의'를 지키는 데 주력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아빠와의 관계도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여전히 아빠는 가족과 다 함께, 특히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가는 것을 꺼려하는 것 같다. 그래도 나랑 둘이 가는 건 괜찮은가 보다. 이번 주 주말, 『사월에 꽃마리 피다.』가 스테디셀러가 된 독립서점도 들릴 겸, 강릉에 함께 가기로 했다.



엄마는 가족 중 여행에 가장 적극적이다. 산책도 가장 천천히 하고, 밤마다 하는 요가도 진짜 하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천천히 하는데, 이상하게도 가장 많은 활동량을 필요로 하는 여행을 그토록 갈구한다. 아빠한테 물어 봐. 그렇게 말하면, 물어 봤는데 싫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좀 살살 꼬셔 보지. 엄마도 소극적으로 말했을 게 뻔하다. 지난 주에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커피 한 잔 하던 중에도 그랬다. 교회에서 성지순례를 간다고, 같이 가자는 말을 빙빙 돌리다가 슬쩍 내던진다. 문제는 언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장난스레 언제 어디로 가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니냐며, 알게 되면 전해 달라고 했다.



엄마랑 둘이 갔던, '맛보기'만으로도 아름다운 유럽, 그리고 겨울에도 꽃이 피는 제주도. 어릴 때 엄마는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여러 친구들과 가족들이 모여 여행을 자주 갔다고 했다. 왠지 행복해 보였다. 그런 말을 할 때의 엄마는. 그때만큼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어쩌면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사월에 꽃마리 피다.』에도 그런 비슷한 말을 썼다. 비슷한 말을 중얼거린다. 여러 번 내뱉어서 좀 식상한 말들.



내가 그냥 아이었을 때. 뭣도 모르는 채로 가족들과 이곳저곳에 많이 여행은 갔었다. 미국에 살 때는 광활한 북아메리카 대륙 위주로. 아메리카는 진짜 넓다. 정말 뭣도 모르는 채로 영혼 없이 나돌아다녔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와닿는 의미는 없었지만, 장대한 풍경들이나 그냥 그렇게 '함께' 무언가를 했다는 기억이 파편적으로 내 안에 잔잔히 흐르는 것 같다. 정말 다 같이 행복하다고 느꼈을 때는 찜질방에서 훈제란을 먹고 식혜를 마시면서 하나의 무언가에 다 함께 웃음보를 터뜨렸을 때. 그것도 꽤 오래전이긴 하지만, 그나마 가장 최근처럼 남아 있는 기억이다.



함께 하는 행복은 화창하다. 환하게 뻗어 나가는 맑은 오후의 빛 같다. 함께 하는 것 자체가 갖는 리스크가 있지만. 혼자 느끼는 안전한 행복은 오밀조밀하면서 그윽하다.





Veron, Alexandre René_Family Excursion to the River.jpeg Alexandre René Veron, Family Excursion to the River, 1896, oil on canvas, 73 × 60 cm.



강가에서 느긋하게 낚시를 하는 아빠. 그 뒤 그늘 아래에서 쪼그려 앉거나 양산을 쓰고 서 있는 가족들. 너무 쨍하지는 않게 온화한 날씨와 푸름으로 가득한 세상, 그것을 있는 그대로 투영할 정도로 맑은 강물. 평화롭다. 이토록 사적인 엽서 붙이기가 아니었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것 같은 화가의 이름이 엽서 왼편에 적혀 있다.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아주 저명한 화가는 아니지만, 꼭 모든 화가가 그래야만 한다는 법은 없다. 이 프랑스 화가는 주로 위의 작품처럼 평온을 자아내는 풍경들을 그렸다. 도시에서 떨어진 전원의 풍경들이 다수다. 강가에서 피크닉을 하는 장면, 드넓은 사냥터, 울창한 숲속의 계곡, 석양으로 물든 들판 위의 염소 떼와 염소치기 등.



화가 자신은 이 풍경화들을 꼭 누군가와 함께 하면서 그리진 않았을 거다. <강으로 떠나는 가족 여행>을 꼭 '가족 여행'을 하면서 그리지는 않았을 거다. 만일 그랬다 하더라도 풍경화를 그리는 시간만큼은 혼자 소유해야 했을 것이다. 화가는 이 작품을 그리며 자신의 가족을 그리워했을까. 가족과 함께 한 지난 여행들을 떠올렸을까. 따스한 추억들이었을까, 아니면 다소 쌀쌀한 기억들일까. 이 많은 풍경화들을 그리며 그는 가족으로부터,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자연 속에서 오롯한 평온을 찾고자 했던 것일까. 적어도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는, 혼자여야만 하는. 그런 거리감과 시선에서 보는 가족, 가족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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