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꽃피 Oct 22. 2023

앤, 너를 만나러 가는 길에

극심한 이별앓이 중인 소중한 친구에게



2023. 10. 22.



앤, 오늘 너를 만나러 가는 길에

나는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어.

정말 그랬어. 행복했어.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는 것도 아니고, 할 건 많고,

장난스레 계획했던 대로 남자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남자친구를 찾는 노력조차 딱히 하고 있지도 않지만,

행복하더라. 너를 만난다는 생각에.

보라빛 하트 목걸이를 들고 너를 만나러 가는 길에.


네가 찾은 어여쁜 흰색 브런치 카페에서 우리는 또

어떤 커피를 마시며 어떤 대화를 나눌까 상상했어.

너의 특별한 연애와 이별 덕분에

부쩍 우리가 할 얘기가 많아졌지.

네가 나에게서 너의 연인을 봤듯,

나는 너에게서 나의 연인을 봤다는 게 신기해.

서로를 통해 못다 한 감정들과 이해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건 참 놀랍고 감사한 일이야.

할 얘기가 많아지니 자연스레 만남도 잦아졌고.

각별한 추억이 많이 생겼어.

희한하게도 예전의 우리 사이가

지금과 많이 다르다고는 느껴지지 않아.

그때도 난 여전히 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라

느꼈어. 특별한 계기가 없었을 뿐이지.


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는 동안 많이 힘들었지?

가을과 연말이 가까워지는 것을 한탄하며,

자꾸 '마지막 잎새'라 스스로를 일컫는 앤.

너의 아픔과 눈물을 곁에서 지켜보는데,

그런 너에게서 종종 내가 보이더라.

나는 내 아픔을 남에게, 더욱이 가까운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드러낼 용기가 있는 사람은 아니라서

너에게 더욱 고마웠어. 나도 너만큼이나

함께 했던 소소한 말들과 일상이 큰 위로가 됐어.

힘든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치환하는 너의 유쾌함,

상대에게 당당히 의지할 수 있는 높은 자존감.

날씨는 많이 쌀쌀해졌지만,

덕분에 내 하루하루는 훨씬 밝고 따뜻해.

아쉬운 게 있다면, 가끔은 내가 나 자신에게 하듯

너무 냉정한 조언을 건넸던 건 아닐까 싶어 미안해.


앤, 전에 내가 혼자여서 외로웠을 땐

길가의 연인들에게 눈이 갔어.

그런데 지금은 홀로 담담히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눈이 가. 혼자 책을 읽고, 사색에 빠진 진중한 표정들에.

세상을 유심히 관찰하고 찬찬히 음미하는 자태에.

또, 그들의 눈부신 결함이 만든 빈 자리가

어떤 사람들로 채워질지도 상상해 봐.

나 혼자여서, 지금의 나여서 행복해.

단순하고 평범한 하나의 순간인 것 같지만,

여기까지 오기에 참 많은 감정과 고민들이 있었어.

무엇보다 너를 만날 생각에 행복해. 진심이야.


앤, 오늘 너를 만나러 가는 길에

네가 행복하기를 빌었어.

어여쁘고 고운 네가 소중한 젊음과 아름다운 계절을

이별의 고통에만 왈칵 쏟지 않기를.

다시 명랑하고 텐션 쫀쫀한 너로 돌아오기를.

하얀 너의 피부처럼 환하게 웃기를.

그렇지만 충분히 아파하고 있다는 건 좋은 일이야.

그만큼 진실했고 희망찼던 사랑에 대한 반증이니까.


우리 그 새끼들을 너무 미워하진 말자.

그 새끼들도 다 나름의 입장이 있겠지.

다음에 올 새끼들을 위해 건실한 마음의 여분 정도는

마련해 두자.


네가 집으로 돌아가면 애타는 부모님은

여전히 결혼에 대한 압박을 주시겠지만,

우리가 나눴던 대화와 시간을 기억해.

진솔한 감정과 눈빛의 교환.

소망과 노력과 치유의 말들.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땐 그 정도면 충분해.

그래도 우리 너무 붙어 있거나 자주 보지는 말자.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고 애인도 만들어야지.


앤, 나는 즐겁게 살 거야.

백화점 앞에 벌써부터 늠름하게 세워진

크리스마스 트리를 불태우겠다던 앤.

올해 크리스마스를 두려워하지 마.

나, 혼자여도 함께여도 무척 기대돼.

사실, 혼자였으면 하고 은근히 바라기도 해.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얼마나 외로웠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