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사월에 꽃마리 피다
444 / 사사사 / 트리플 포
2024. #사월에꽃마리피다
4 - ①. 생일
올해 아빠의 양력 생신(2024.4.4.)에는 4가 세 개나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아빠와 공유했고, 우리는 설명할 수 없는 커다란 위안과 힘을 함께 느꼈다. 아빠가 상암 공원에서 '네잎의 클로버(아빠는 '네잎클로버'를 이렇게 부른다)'를 깜짝 발견하고는 나에게 건네주었을 때와 비슷한 기류가 우리를 감싸 안았다. 벚꽃이 탐스럽게 핀 아빠의 생신날, 우리는 다시 한 번 '트리플 포'를 기분 좋게 상기했다. 4월에 잉꼬처럼 연달아 붙어 있는 엄마, 아빠의 생신날에 이어 나의 생일 주간 또한 행복하게 보냈다. 검은 운동화에 봄 기운을 닮은 연분홍 롱 치마를 유니폼처럼 입고 다녔으며, 가족과 친구들과 단란하고 유쾌한 시간을 많이 보냈다. 아팠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런 순간들이 무색할 정도로 사랑으로 가득한 4월이었다.
4 - ②. 융
무엇보다 이번 4월에는 스위스의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 칼 융(Carl Gustav Jung, 1875 ~ 1961)을 지속적으로 만났다. 『정신 요법의 기본 문제』, 『원형과 무의식』, 『인격과 전이』, 『인간의 상과 신의 상』, 『꿈에 나타난 개성화 과정의 상징』, 『영웅과 어머니 원형』 등 집에 고이 모셔 두고 있는 융 기본 저작집을 읽었다. 하지만 이 경험은 단지 융의 저작들을 읽었다는 표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나'는 존재 대 존재로 융을 만났다.
'나'는 그를 만남으로써 이전의 읽기의 경험들이 작가라는 존재를 만났다고 말하기에는 꽤나 빈약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존재로서 작가들을 만나기에 이전의 나는 정신적으로 인격적으로 설익은 상태였다. 따라서 그들의 존재 전체를 보았다기보다는 나의 결핍과 욕망을 기준으로 그들의 텍스트를 멋대로 집어삼켰고, 그들의 텍스트에 나의 자아를 마구 투사했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융을 만남으로써 그를 만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며, 이전의 나의 읽기와 사유와 삶의 경험들이 중요한 목표를 가지고 나를 차근차근 그에게로 인도했음을 깨달았다. 그러한 목표란 개인의 사사로운 욕망이나 기만적인 이익에만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인 인류의 사랑과 문화적 성장에 기초하면서도 인격의 '개성화(individuation)'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이 깨달음과 비슷한 직감이 3월에 있었고, 깨달음은 나의 생일날, 텍스트 밖의 융의 삶에 대해 알게 되면서 환희와 위로가 뒤섞인 통곡으로 표출되었다. 나는 더 이상 나만의 고통이 아닌 융을 비롯한 작가들의 고통, 우리 모두의 아픔과 우리의 헌신적인 삶을 위해, 우리의 만남을 위해, 엄마를 찾은 아이처럼, 참된 스승을 찾은 제자처럼, 진리의 빛, 그 품에 안긴 그림자처럼 울었다. 매번 융을 찾고 만날 때마다 영혼의 진동을 느낀다. 그리고 오늘, 4월의 마지막 날에는 전부터 눈여겨 봤던, 삼각형과 사각형의 조합으로 구성된 '만다라(mandala)'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꿈에 나타난 개성화 상징'으로서 만다라를 연구했던 융은 이것을 미술치료의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만다라의 개념을 알기도 전에 나는 대학교 시절 비슷한 형상과 의미의 미술 작품을 제작했고, 이후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의 L도식을 기초로 한, 1인 출판사 '사월의 꽃마리 피다'와 소설 『사월의 꿈』의 표지 엠블럼을 디자인했다. 내가 융을 만난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듯,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융을 만나고 '나'는 더 이상 외롭거나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았다. 내가 해 오던 일과 지금 하는 일, 그리고 앞으로 할 일들에 대해, 나라는 존재와 삶에 대해 더 이상 반문하지 않았다. 타인이 겉핥기식으로 내뱉는 평가와 척도, 그리고 본질에 충실한 인격의 개성화 과정과 무관한 관계나 사건들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비로소 건강하고 온전한 인격으로서, 치유자의 이름으로서, 의식과 무의식의 매개자이자 꿈의 실현자로서 진정한 '몰입'의 상태에 도달하게 되었다. 삶과 죽음, 양극단을 오가던 사월은 이제 하나로 통합되었다.
4 - ③. 시간
융의 저작들과 더불어 '프루스트의 서재'에서 구매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의 『정신의 삶 : 사유와 의지』도 읽었다. 집필 중인 『사월의 꿈』의 3편 '한결의 시계'의 시간성을 염두에 두고, '시간'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읽었다.
"인간은 시간적일 뿐만 아니라 시간이다."
『사월의 꿈』을 쓰며 나는 그 무엇보다 시간이 갖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우리의 영혼이 이미 꿈의 씨앗인 것처럼, 시간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