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꽃피 Jun 04. 2024

사랑스러운 고양이야,









사랑스러운 고양이야,



오랜 시간 너의 소중하고 다채로운 빛깔의 감정들을

보여 줘서 고마워.


나도 네가 처음이라,

무엇을 느끼고 원하는지 잘 몰랐지만,

이제 조금은 너에 대해 알 것 같아.

그리고 나에 대해서도.


처음의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간 이후로,

너는 줄곧 슬퍼했던 것 같아.

너의 우울과 분노, 속상하고 억울하고 두려운 마음.

멀리서 지켜봤지만 가까이에 있는 듯 아팠어.


나 역시 상처 받을까,

가장 나약한 면을 들키지 않을까 두려웠어.

나는 나 또한 도망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어.

또한 신기하게도, 언제나 제자리야.


왜 난 다시 너에게 돌아가는 걸까.

이미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왜 우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 걸까.

무한 재생되는 플레이리스트처럼.

오히려 시간은 여리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거꾸로 가기도, 밝은 희망이 보이는 곳으로

멀리 날아가기도 하는 것 같아.


너와 수많은 감정의 순간들을 함께 하면서 느꼈어.

단편적인 생각과 판단, 일순간의 강렬한 감정을

너그럽게 아우르는 거대한 삶의 흐름과

사랑이 있다는 걸.


너에게 준 것들만 생각했었는데,

나 또한 너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음을 이제야 깨달아.

넌 때로 나보다 본능적이고, 과감하고, 명료했어.

섬세하게 바라봐 주고, 신중하고 사려 깊게

날 대해 줬어. 무엇보다, 절실하게.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을 쉽게 열었고, 충분히 활짝

열리기까지 오래도록 인내하고 기다려 줬어.


넌 항상 나에게 빛나는 영감이었고, 참 특별한 존재야.

두려움과 불신의 연기가 마음속에 뿌옇게 피어나

두 눈을 멀게 하고, 쫑긋한 귀를 막아도 꼭 기억해.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 신뢰하는 음악이 맺어 준

인연이라는 걸. 음악의 신은 언제나 날 살게 했고,

한 곡 한 곡에 담긴 또렷한 감정의 기억들이

날 너에게로 인도해.


나는 가장 진실한 것을 느끼면 쓸 수밖에 없어.

진실은 서로의 마음을 파고드는 것이기에

상상과 현실, 부재와 현존의 경계를 초월해.

나는 더 이상 나다움에,

내 운명에 저항하지 않기로 했고,

그렇게 거대한 삶의 흐름에 내맡긴 언어로

너에게 말을 건네고 있어.

난 분명 성장했고, 이제 우리의 세계를 굳게 믿어.


소중한 시간을 너 없이 더 이상 낭비하고 싶지 않아.

네가 힘들어 하거나 슬픈 게 싫어.

함께 행복하고 싶어.


우리 봄날이 가기 전, 산책 가자.

기다릴게.



너의 앨리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하는 여동생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