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1988)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평범한 듯하면서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잘 담아낸 제목.
그래서인지 또박또박 읽으며 한 글자씩 곱씹게 된다.
하지만 영화 속 사랑은 매끄럽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영화에서 우체국 직원 토메크는 맞은편 아파트에 거주하는 마그다를 매일 망원경으로 은밀하게 관찰한다. 토메크의 집요한 관심은 마그다의 연애를 방해하며 그녀를 수시로 귀찮게 하다가 결국 곤경에 빠지게 만든다. 괴상야릇한 사랑임에는 틀림없다. 미성숙하기 때문에 더더욱. 이 미성숙함은 '순수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이 '순수함'에 대해서는 당연하게도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는 토메크가 미숙한 소년이며 마그다를 성적으로만 보지 않고 있다는 암시를 지속적으로 준다. 단순히 관음증 환자처럼 보이는 것으로부터 그를 보호하고자 한다. 토메크는 마그다의 앞에서 자신의 결함과 잘못을 고백하고, 그녀는 그의 진정성에 이끌린다. 진중하지 않은 만남만 이어 오던 마그다의 시들거리는 마음에 의외로 토메크의 '순수한' 열망은 단비가 되어 주었다. 토메크의 사랑은 너무도 '순수해서' 마그다가 여느 남자처럼 그를 성적으로 대하는 순간 도망치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해함으로써 거부하기에 이른다. 마그다의 아파트 내부처럼 새빨간 피의 색으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한 것이다.
불안하고 강렬해서 더욱 진짜 같은 사랑. 토메크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마그다는 그가 부재한 자리를 배회한다. 그리고 토메크의 아파트에서 그가 매일 그랬듯 망원경으로 자신의 아파트를 들여다 보게 된다. 망원경 속에서 마그다는 토메크가 지켜봤을 스스로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마그다의 눈은 색안경을 내려놓고 순전히 토메크의 시선이 된다. 그 순간, 마그다는 뜻하지 않은 위로를 받는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자신의 부분이 자신을 사랑하는 누군가의 시선으로 치유된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가 가까운 관계로부터 상처받고 회의에 빠지면서도 계속해서 사랑을 꿈꾸고 사랑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토메크의 불완전한 사랑의 방식에도 불구하고, 둘의 사랑은 완성된다. 너만이 아니라, 나 역시도 불안하며 불완전하다. 결여된 두 사람은 비로소 만난다. 나는 진정 당신을 보고 있었는가. 나 자신에 대해 알고 있었는가. 나의 시선에 너의 시선이 포개지며 단면적이었던 시각이 완전해진다.
사랑은 분명 시선의 문제다.
사랑해서 바라보기도, 바라보다가 사랑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시선과 긴밀하게 연루되어 있는 예술이 안고 있는 거대한 사랑의 문제, 예술을 통해 예술가와 관람자가 얻는 사랑에 관해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다. 토메크의 망원경은 영화를 촬영하는 카메라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사람, 사물, 현상을 관찰하는 감독 혹은 예술가의 시선 같다. 작품은 다루는 주제와 대상에 대해서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들여다봐야만 만들어질 수 있고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진심을 다하며 깊이 파고들수록 나만의 감정과 생각, 관점에 빠지기가 쉽다. 그러다 보면, 이게 정말 누구를 위한 작품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내가 정말 작품 속 대상을 사랑하고 있는 건지 반문하게 된다. 예술가 개인의 목표와 이상, 표현의 무분별한 자유로 인해 작품 속 인물들이 희생당할 수도 있다. 작품에 대한 사랑과 대상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방황한다. 그래서 예술을 '제대로' 하기란 더욱 어려운 것 같다. 좋은 작품은 이런 문제들을 무책임하게 덮어 두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괴이한 욕망과 진한 사랑은 정말 한 끗 차이인 듯싶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들은 '예술'에 관해, 그것이 삶과 맺고자 하는 강력한 연결 고리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한때 예술의 가치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현실의 어려움이 쌓여 갈수록 오히려 삶에서 발휘되는 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왜 때때로(라기보다는 많은 경우) 예술이 괴이한 주제들을 괴상한 방식으로 표현하는지 알 것 같다. 현실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뒤틀린 상황과 비틀어진 감정 그리고 관계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더 사랑하게 된다. 예술도 삶도. 예술은 현실과 무관하게 벽을 쌓고 자신만의 오롯한 세계를 구축하는 영역이 결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현실 자체의 다양하고도 정교한 표현이며, 사람과 현실에 대한 절실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힘을 발산한다. 적어도 예술은 우리의 마음과 인식을 건드린다. 나도 예술도, 괴상야릇한 사랑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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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보기 (왓챠 큐레이터 링크) :
https://watcha.com/af/0/MxNxI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