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을 연출하려는 아버지와 아이의 자기결정권

주말 아침 빵을 사러 나가는 길에 생긴 일

by 라파고

느지막이 눈을 뜨고 거실로 나왔을 때, 아내는 이미 일어나 거실 테이블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토요일인 오늘 직장에 나가봐야 하는 줄은 알았지만 벌써부터 집에서 일을 하고 있을 만큼 바쁜 줄은 몰랐다. TV를 잠깐 보고 있노라니 아이가 잠에서 깨어 거실로 나왔다.


시계를 보니 아내가 집에서 출발해야 할 시각이 두 시간여 남았다. 바쁜 아내를 위해 아침은 내가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주방을 뒤적거렸으나 먹을 게 마땅치 않았다. 빵을 사 와서 샐러드와 함께 먹기로 하고, 소파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 빵을 사러 나가자고 했다.


하랑이 밖에 날씨가 좋은데, 빵 사러 나갈까?

...

엄마 곧 있으면 일하러 나가셔야 한다는데, 하랑이랑 아빠가 빵 사 와서 아침 준비하면 엄마가 좋아하시겠다, 그렇지?

별로.. 안 나가고 싶어요..


아내도 나를 거들었다.

밖에 날씨 좋으니까 아빠랑 나갔다 와.

아이는 입을 삐죽거리며 TV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요지 부동이었다.


때는 6월 중순, 한 여름으로 들어가기 직전이었는데, 아침에는 그래도 제법 선선한 바람은 불었다. 나는 커튼 사이로 햇살이 들어오는 거실 테이블에서 일하는 와이프를 보면서, 남편과 아들이 손잡고 장을 봐와서 아내가 일을 마치는 동안에 아침을 준비하는 행복한 가정을 연출하고자 했다. 그러한 대의에 아이는 불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 아이는 어리니까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그 불만을 설득해서 결국에는 대의에 동참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랑이는 엄마가 아침 못 먹고 일 가면 좋겠어?

...

지금 빵을 사 와야 엄마가 늦지 않을 것 같아.

... (대답 없이,, 주섬주섬 마스크를 쓴다)


집에서 빵집까지 가는 약 5분 동안 아이는 말이 없었다. 나도 날씨가 좋다거나, 오후에는 축구를 하자는 둥 아이의 기분 전환을 위한 대화를 시도했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서는 나도 침묵했다.


그날 이후 며칠 뒤인 오늘 아침 "부모와 아이 사이"라는 책을 읽던 중, 비슷한 상황에 대해 기술되어 있는 내용을 보게 되었다.





예를 들어보자, 샤나는 축구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동생의 경기를 보러 가족과 함께 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화가 나서 용돈을 깎겠다고 했다. 샤나는 화를 내며 집을 뛰쳐나갔다. 마음에 상처를 입었고, 아버지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화가 가라앉자, 아버지는 샤나가 거절한 이유를 딸의 관점에서 볼 수 있었다. 동시에 자기는 가족이 행복하게 외출하는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했는데, 딸의 감정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딸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사과하면서, 좋아하지 않는 일에 가족과 함께 따라나서는 것이 딸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동시에 딸이 강제로 따라갔으면, 틀림없이 다른 사람들도 축구 경기를 즐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도 깨달았다.

- 부모와 아이 사이, 하임 G 기트너 -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정의 행복이라는 대의 아래에서 아이의 자기결정권을 묵살한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나는 가족끼리의 사랑과 가정의 행복은 서로 간의 시간과 노력을 헌신해가면서 만들어진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모든 가치에서 가정의 행복이 가장 으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엄마를 위해서 조금 번거롭더라도 나가서 빵을 사 오는 것이 아빠와 아이의 사랑이라고 생각을 했고, 아이가 동행을 해야 그 사랑이 완전하게 표현된다고 생각을 했다.


돌이켜보면 아이는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날 따라 밖에 나가기 싫었을 뿐일 수 있다. 그걸 마치 가정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아이로 규정해서 "엄마가 아침을 못 먹고 일 가면 좋겠어?"라는 비약을 하며 훈육을 시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아이는 그냥 가기 싫다고 말했을 뿐인데, 엄마가 아침을 못 먹기를 바라느냐는 아빠의 말을 듣고 아이가 얼마나 황당하고, 억울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 아빠가 얼른 가서 빵 사 올 테니까, 하랑이는 집에서 쉬고 있다가 준비하는 걸 좀 도와줄래?"라든지

"오늘은 아빠 혼자 다녀올게, 다음번에는 같이 갈까?"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가정과 또래집단 등의 조직 내의 암묵적 규범 속에서 어느 정도까지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해주고, 이를 학습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어느 선까지는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강제해야 하는지, 아이가 그 천장을 뚫고 나오려고 하는 것이 아이와 가정에 긍정적인 측면인지 부정적인 측면인지 그 판단은 부모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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