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다시 일하고 싶대

인생 후반전 더 늦기 전에

by 라파고

아이가 태어난 뒤 지금까지 우리 부부가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지내올 수 있었던 것은 장모님의 공로가 가장 컸다. 나는 주간에 일하고 아내는 오후부터 야간까지 일하는데, 어린이집과 유치원 하원 시간부터 내가 퇴근할 때까지의 그 공백을 장모님께서 오롯이 8년 동안 버텨주셨다. 간식과 저녁을 챙겨주시고, 내가 야근하는 날이면 뉴스를 틀어놓고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면서도 자리를 지켜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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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도 장모님은 “놀면 뭐 하니”라고 하시며 친구가 운영하는 도시락집이나 동네 반찬가게에서 오전 아르바이트를 하셨다. 그렇게 짬 내서 번 돈으로 손주에게 고기도 사주시고 아이스크림도 사주셨다. 그런 장모님이 어느 날 “육아 졸업”을 선언하셨다.


사실 장모님은 아직 청춘이시다. 이제 예순. 기대 수명이 100세를 넘어간다고 하니 스포츠 경기에 비유하자면 이제 막 전반전이 끝나신 셈이다. 결혼도, 출산도 이른 나이에 하셨던 장모님께 손주를 돌보는 일이 너무 당연해져 버린 것이 나는 조금 부끄러웠다. 오래된 호의를 권리로 착각하지 말자고, 자식 낳은 죄로 자식의 자식을 돌보는 일까지 평생 시중들게 하지는 말자고 생각은 했지만, 정작 우리가 먼저 어떤 행동도 취하지는 않았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법이다.


“엄마가 더 늦기 전에 다시 일을 시작하고 싶대.”


아내가 빨래를 개고 있었는지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주 일상적인 가사일을하며 무심코 던지듯 말했다. 우리 부부의 근무 시간을 조정하자거나 엄마가 너무하신 것 아니냐는 식의 감정은 최대한 덜어내고, 사실만 전달하려 노력하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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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아이를 돌봐야 한다면, 경제적인 면만 따졌을 때는 같은 시간에 누가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느냐를 고려해 내가 일을 하고 장모님이 계속 아이를 봐주시는 게 맞을 것이다. 장모님께 용돈을 조금 더 올려드리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부모는 우리 부부였고, 장모님에게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인생이 있었다. 스물한 살에 첫 아이를 낳고 꽃 같은 청춘을 육아와 생업에 바치셨으며, 그렇게 30년을 버텨 딸을 시집보낸 뒤 또 다시 딸의 자식에게 근 10년을 바치신 것이다.


나의 육아휴직 결정은 '돈의 부등식' 문제가 아니라, 장모님을 포함한 우리 가족 모두의 '삶의 균형'에 대한 결정이었다. 이제 장모님은 진정으로 ‘황혼 육아’에서 졸업하셨다. 새로 구하신 직장은 “빨간 날은 다 쉬는 좋은 직장”이라며 늘 자랑하신다. 4대 보험이 되고 정년도 보장된다고 하셨다. 월급이 많지는 않아도 알뜰하게 쪼개 노후를 위한 저축도 하신다. 몸을 쓰는 일이라 허리 통증이 도져 한의원에 다니고 파스를 붙이시면서도, 직장 상사 흉도 보며(어느 직장에나 빌런은 있나 보다) 본인의 인생을 스스로 살고 계신 듯해 무척 행복해 보이셨다.


육아 은퇴 후 무엇보다 좋아진 점은, 장모님께 손주를 보는 일이 '책임'이 아니라 '기쁨'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매일 보는 손주라 보고 싶다고 전화하실 일이 없었지만, 이제는 손주 데리고 놀러 와라, 보고 싶다, 영상 통화 하자는 말씀을 달고 사신다.


이제 내가 그 빈자리를 채우며 장모님이 홀로 견뎠을 시간의 무게를 비로소 실감하고 있다. 장모님의 인생 전반전의 끝자락이 자식과 손주를 위한 끝없는 헌신이었다면, 이제 막 시작된 후반전은 오롯이 당신 자신만을 위한 찬란한 기록들로 채워지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나의 육아휴직은 단순히 아이를 돌보는 시간을 넘어, 우리 가족 모두가 각자의 삶을 되찾고 서로를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는 건강한 거리를 만들어준 자양분이 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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