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나를 위한 시간
나는 충청도 사람은 아니지만 한화 이글스를 응원한다. 한화 이글스를 응원하게 된 계기를 말하자면 좀 길지만, 내 고향 전주에도 내가 어렸을 때 전주를 연고지로 하는 야구 팀이 있었다. 바로 “쌍방울 레이더스”이다. 쌍방울 레이더스로 말할 것 같으면 한화 이글스보다 더 지독한 만년 꼴찌 팀이었다. 쌍방울 레이더스의 창단부터 해체까지의 순위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당시 팀은 8개 구단이었으니 그냥 매년 꼴찌 언저리에 있었다. 그런데 이게 쌍방울 순위가 맞나 하는 해가 몇 해 있다. 바로 1996년부터인데, 바로 이때가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해이다.
1991년 - 6위 *창단
1992년 - 8위
1993년 - 7위
1994년 - 8위
1995년 - 8위
1996년 - 2위 *김성근 감독님 부임
1997년 - 3위
1998년 - 6위
1999년 - 8위 *해체
김성근 감독은 모기업의 경영난으로 주요 선수들을 매각해 운영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며 만년 꼴찌인 쌍방울 레이더스를 한국시리즈까지 올려놓았던 분이다. 아쉽게도 쌍방울 레이더스는 1999년에 해체되었지만, 김성근 감독님이 계셨던 마지막 구단이 바로 한화 이글스이다. 김성근 감독님이 한화 이글스에 2014년에 부임하셨으니 내가 한화 이글스 팬이 된 게 벌써 11년 차다. 한화 이글스도 쌍방울 레이더스 같은 언더독 팀이라 응원하는 팀은 옮겼지만 정서적인 이질감은 별로 없었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아이와 낮 시간에 캐치볼을 하는 날이 많았다. 학교 교문 앞에서 엄마들이 학원 가방을 들고 아이들을 기다리거나, 아이들이 태권도 학원차에 오르거나 피아노 교습소로 향할 때, 나는 야구공과 글러브를 들고 우리 아이를 기다렸다.
아내가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나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만약 아들이 태어난다면, 가장 하고 싶은 건 아들과의 야구 캐치볼이야. 그 이상은 아이한테 바랄 게 없어." 아이는 벌써 씩씩하고 행복하게 자라주어 이미 아빠의 오랜 꿈을 이뤄주었다. 아내에게 요즘도 "우리 아들에게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물론 말만 그렇게 할 뿐, 속으로는 밥도 더 잘 먹었으면 좋겠고, 살도 쪘으면 좋겠고, 수영과 주짓수도 더 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육아휴직은 나뿐만 아니라 아내와 아홉 살 아이에게도 야구 입덕의 시간을 선사했다. 사실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만년 꼴찌팀 팬이라 좀 미안하긴 했지만, 그건 아이의 운명과도 같은 거라 바꿀 수는 없었다.
나의 육아휴직 기간에 우리는 야구 직관을 세 번이나 갔고, 복직한 이후에도 꾸준히 네 번이나 더 갔다.
- 한화 vs 두산 (2024년 6월 12일)
- 한화 vs SSG (2024년 8월 17일)
- 불꽃야구 vs 동국대 (2025년 4월 8일)
- 한화 vs LG (2025년 5월 29일)
- 한화 vs 기아 (2025년 6월 6일, 6월 7일)
- 한화 vs 삼성 (2025년 8월 30일)
이제 내 아내와 아들은 한화 선수들의 등장곡과 응원가, 심지어 안무까지 모두 외우고 따라 한다. 가족 모두가 같은 취미를 공유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특히 원정 경기를 응원 가서 하루 묵고 이틀 연속으로 직관을 즐긴 후, 그 지역의 관광지를 둘러보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여행은 육아휴직이 끝난 후에도 우리 가족의 가장 큰 즐거움이 되었다.
한화 이글스는 2024년에 비록 8위로 마감했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는 정말 말도 안되게 2025년 정규시즌을 2위로 마쳤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해서 최종 준우승으로 마무리했다. 무려 3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 아들은 야구에 입덕하자마자 응원하는 팀이 잘하는 행복한 경험을 하게 되었으니, 이 또한 육아휴직이 만들어 준 기적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