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왈츠를 추시겠습니까?

모험가들이 모험을 떠나는 이유

by 유영원

* <무례한 질문들>은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takethiswaltz.jpg 루와 마고, 한국어 제목은 <우리도 사랑일까>

마고는 가정적인 남편 루와 유쾌한 시댁 식구들을 둔 여자다. 마고와 남편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내기하며 매번 반복되는 의식 같은 장난을 치는 등 친밀하고 편안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어느 날 마고는 루이스버그에서 낯선 남자 대니얼을 만나게 되고, 그와 나란히 비행기를 타 대화하고, 그가 이웃집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니얼의 등장은 마고의 일상에 균열을 일으킨다. 우연을 가장한 마주침으로 그들은 점차 가까워지고,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마고는 대니얼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루를 떠난다.


성애로 점철된, 짜릿한 날들이 지나고 어느새 치실을 쓰는 대니얼 옆에서 소변을 볼 만큼 관계가 권태로워졌을 때, 마고는 루의 누이 재럴딘이 아이를 두고 사라졌다는 전화를 받는다. 이 사건은 알코올 중독자인 제럴딘이 평소 보여주곤 하는 충동적인 행동의 연장일 뿐이지만 마고와 루가 다시 마주치는 계기가 된다. 재회한 그들이 걱정하고 있을 때 제럴딘이 뜬금없이 병아리 한 상자를 안고 나타난다. 오랫만에 옛 올케를 마주한 제럴딘은 마고에게 인생의 모든 구멍을 매울 수는 없다고 의미심장한 조언을 남긴다. 병아리를 사러 자리를 뜬 동안 아들을 방치한 혐의로 제럴딘이 경찰서로 연행된 후 마고는 루에게 재결합을 제안하지만 거절당한다. 눈물을 흘리며 돌아온 마고는 대니얼을 위해 요리하고 혼자서 한때 대니얼과 함께 탔던 롤러코스터를 탄다.


타인을 위안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랑이란 타인에 대한 배려와 같은 윤리의 차원을 벗어난 욕망과 정서의 발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사랑을 하는 주체의 의지의 바깥에 있는 일이다. ‘사랑에 빠지다’라는 말이 그토록 흔하게 쓰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사랑의 수동적인 속성은 윤리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때도 있지만 도리어 사랑의 낭만적 속성을 증폭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마고는 대니얼과 사랑에 빠졌다. 그건 마고의 의지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마고는 어느정도 이 폭풍치는 감정에 저항하기도 했다. 하지만 피하지 못했다. 그 사랑이 너무나 커다란 것이었기에.


<우리도 사랑일까Take this waltz>가 좋은 영화인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키는 대로 사랑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명백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마고를 비난하고 싶은 기분에 휩싸였던 관객은 곧 이 영화의 사건이 특별히 마고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깨달음에 주춤하게 된다. 마고의 남편 루는 요리책을 쓰기 위해 닭 요리를 반복하는데, 이는 마치 변화없는 일상의 반복을 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고의 표정은 일상의 권태를 견디지 못하는 우리의 얼굴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권태를 깨 줄 무언가, 모험의 바람이 불어온다. 옆집에 사는 잘생긴 인력거꾼의 얼굴을 하고.


그러나 모험을 떠난 이들이 모두 보물섬을 찾았다면 모험담은 전승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고 - 모험을 떠난 이들이 망각하고 있는 것은 지금은 일상이 된 무언가도 언젠가는 대단히 얻기 어려운 욕망의 대상이었다는 점이다. 대개의 경우 그들은 초라한 결과물에 실망하고 집으로 돌아가길 바라게 된다.


이 영화는 줄거리 요약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장점을 가졌다. 그 중 하나는 음악의 선정이다. 마고가 사랑의 은유인 롤러코스터를 탈 때, 배경에 깔리는 Video killed the radio star 는 주제의식을 함축한다. 옛 사랑이 죽은 자리에 새 사랑이 등장하고, 그 여정은 롤러코스터처럼 짜릿하다. 대니얼과 마고가 만나 온갖 다양한 성적 유희를 즐기다 급기야는 쇼파에 나란히 앉아 멍하니 TV를 보는 연인이 될 때, Leonard Cohen의 Take this waltz가 흐른다. 살해당하는 라디오 스타나 빙글빙글 돌다가 끝나는 왈츠는 결국 욕망이란 충족되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허무에 대한 은유다.


덜 중요해보이지만 잊을 수 없는 장면도 있다. 마고는 대니얼의 시선을 한껏 의식하며 수영장에서 장난치며 낄낄거린다. 샤워실에서 사랑의 기쁨에 상기된 그녀를 맞은편 나체의 노인들이 몸을 닦으며 물끄러미 바라본다. 여성 노인들의 몸은 가죽덩어리처럼 축 늘어지고 탄력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마고가 겪어온 과정을 이미 겪었다. 자연스러운 욕망을 추구하던 그 모든 사건의 종착역은 결국 늙은 몸뚱아리인 것이다.


그러니 안전한 집에 있는 사람들은 가진 것에 만족하고 욕망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나가봐야 별 수 없고, 결국 이래 늙으나 저래 늙으나 늙는 것은 똑같으니까. 이렇듯 다소 교훈적인 결말로 끝나는 듯 보였던 영화는 후반부에 뜬금없이 대니얼의 누나, 제럴딘을 배치함으로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인생의 모든 구멍을 미친놈처럼 매울 수는 없다는 제럴딘의 대사는 마고를 향한 것이지만 제럴딘이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영화의 전반부의 마고와 루, 제럴딘과 시댁 식구들이 파티를 하는 장면은 따뜻하고 유쾌한 톤으로 묘사되었다. 그때의 제럴딘은 중독과 싸우고 있지만 시니컬한 농담을 잘 하는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하지만 후반부에서 아이를 두고 사라졌다가 병아리를 사오는 기행의 이유를 묻는 마고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알코올 중독자야. 뭘 기대했어?” 그녀도 사실은 권태를 버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마고는 대니얼을 선택한 것이다. 모험가들은 때가 되면 다시 몸이 달아올 것이고, 사랑에 빠질 준비를 마칠 것이며, 이것은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해피엔딩의 희박한 확률도 모험의 유혹을 거부할 수 없는 이유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에게 물을 수 밖에 없다. 이 왈츠를 거절할 수 있겠느냐고.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