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아카데미극장과 시민의 미래>
[목차]
1. 원주 아카데미극장 사태 : 보존 vs 개발
2. 아카데미극장은 시민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는가?
3. 아카데미극장을 없애는게 이득일까?
4. 우리가 미래에 살고 싶은 도시는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에 지어진 이래로 현재까지 극장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입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생기면서 단관극장들은 하나둘 문을 닫으며 철거되었고, 아카데미극장만이 유일하게 현재까지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아카데미극장은 단관극장이라는 건축물로서의 독특한 가치뿐만 아니라, 원주 시민들과 오랫동안 함께 해온 문화시설로서 시민들의 기억을 함께 해온 역사적, 문화적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아카데미극장을 지키자는 시민의 뜻이 모아졌고, 이는 ‘아카데미극장 보존추진위’ 발족으로 이어졌습니다. 추진위는 아카데미극장 보존을 위한 설문조사·연구조사·포럼 등을 통해서 아카데미극장의 가치를 알리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전시회, 영화 상영회 등의 문화행사 등을 통해 극장의 보존과 활용에 대한 활동들을 이어 왔고, 이러한 활동들의 결실로 2021년에는 문화재청으로부터 ‘이곳만은 꼭 지키자 시민공모’에 선정돼 문화재청장상을 받기도 했으며, 또한 2022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유휴 공간 재생 활성화 사업’에 선정돼 국비 30억 원, 도비 9억 원 등 총 39억 원이 배정되는 등 성과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민선8기 지방선거 이후 시장이 교체되면서 상황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원주시는 아카데미극장을 매입하면서 문화재생을 통한 아카데미극장의 보존과 활용을 약속했으나, 새로운 시장은 이 약속을 뒤집은 것입니다. 지난 4월 27일에는 ‘아카데미극장을 철거하고 다목적 공연장과 주차장을 만들겠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극장이 위치한 중앙동 일대의 만성적 주차난을 해결하고 전통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였습니다.
이에, 아카데미극장 보존을 원하는 원주 시민들과 시민사회는 ‘(가칭)원주 아카데미극장 보존을 위한 전국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하고 아카데미극장을 보존하기 위한 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위법한 과정으로 추진된 철거안을 무효화하기 위한 법률 대응과 시정정책토론 청구, 서명운동, 거리집회, 천막농성과 같은 활동도 추진 중입니다.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건축물이기에 보존해야 하는 걸까요? 먼저 아카데미극장은 역사적으로 또 건축학적으로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지는 건축물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아카데미극장은 국내에서 원형을 가장 오랫동안 간직한 단관극장입니다. 지방 도시에 극장이 흔하지 않던 1960년대 상황에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비춰 보면 원주시민들은 전후 복구가 사회적 과제인 당시에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문화 행사를 상대적으로 쉽고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공간이 바로 아카데미극장이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카데미극장은 현재 폐쇄된 옛 원주역과 함께 원도심의 중심지에 소재하며 유동인구를 활성화하는 핵심시설이었으며, 전성기를 누렸던 시절에는 근처에 식당과 카페, 술집 등 식음료점이 성행해 인근 상권 및 지역 경제에 기여도가 높았던 시설이었으며, 원주의 원도심 성장과정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또한, 아카데미극장은 전쟁의 폐허를 극복한 전재복구기의 사회·경제 성장의 현장의 역사를 도시의 중심에서 증거하는 중요한 근대건축자산이며, 2023년 현재 전국 주요 도시에 존재했던 단관극장 중 원주아카데미극장의 건축적 수준을 갖추고 있는 건축시설은 없는 존재하지 않으며, 내외부 시설 모두 원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특히, 아카데미극장은 1960년대 한국 극장 건축에서 모더니즘 건축의 미학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어 건축사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영화관으로서의 기능 외에도 유명 가수의 리사이틀 등 많은 행사를 치를 수 있는 무대장치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단순히 극장으로서의 존재가치 외에도 그 시대 문화예술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건축물입니다. 또한 아카데미극장은 우리나라 영화사의 성장을 증거하는 많은 기록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현장으로서의 가치가 높아 한국영화의 가치가 세계적으로 높아지는 현시점에서 우리 근대영화산업의 역사를 보여주는 메카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판단됩니다.
아카데미극장은 위의 설명처럼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넘치는 건축물이지만, 이보다 우리가 주목하야 할 가치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아카데미극장을 보존하기 위한 시민들의 노력 및 그 결과물입니다.
2016년부터 원주시민들은 아카데미극장을 보존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갑니다. 포럼이 개최되고, 상영회가 이어졌으며, 이를 만들어가고, 아카데미극장이 왜 필요한지, 역사적 이유 등을 설명하는 영화가 제작되는 등 원주아카데미극장을 둘러싼 문화 예술 창작 활동이 파생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원주아카데미 구하기 100인 100석 가지기 운동 등 각계각층의 보존 지지 성명이 있었고, 결국 원주시가 극장을 매입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지난해까지 별문제 없이 아카데미극장은 시민의 곁으로 돌아오기 위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원주 시민들과 전국의 많은 시민들은 아카데미극장이 다시금 돌아오길 바라며 이 시간을 함께 견뎌왔었습니다.
그런 공간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한때는 연인의 데이트 장소였으며, 또 누군가에겐 처음으로 스크린을 통해 세상을 본 공간이었을 아카데미극장이 지금은 낡았다는 이유로, 도시의 미관을 정화한다는 이유로, 주차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철거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카데미극장을 없애고 주차장을 만드는 게 지역의 입장에서 과연 이득일까요? 아카데미극장이 있는 중앙동은 상권이 쇠퇴하고 인구가 유출되는 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는 원주의 대표적인 원도심 지역입니다. 특히, 20~30대 청년층은 빠른 감소세를 보이며, 인구 고령화 현상이 심각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원주시는 중앙동 일대에 대한 ‘도시재생 활성화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원도심의 역사 문화 자원을 활용한 문화재생의 일환으로 아카데미극장은 시민의 문화공간이자 문화예술인의 교류와 협동의 공간인 문화공유 플랫폼으로 전환할 계획이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아카데미극장이 주변 지역의 문화 거점과의 연계를 통해 침체되어버린 원도심 지역의 새로운 활력을 일으키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서 역할과 함께, 문화예술인들의 거점 공간이자 플랫폼으로서 원주의 문화적 역량을 키우는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지역의 문화적 역량을 확장하고, 문화도시로서 원주라는 지역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효과들에 비해 극장을 허물고 주차장 건립하는 것은 중앙동 지역의 주차난을 해소하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원도심이라는 중앙동 일대의 환경과 특징을 고려하고, 지역의 미래 발전 방향을 생각한다면 적절한 접근도 아닙니다.
도시재생은 단순히 기존의 공간을 허물지 않고, 리모델링하는 개발 방식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시재생은 물리적인 리모델링 방식의 공간 개선과 함께, ‘주민들의 다양한 사회적 실천과 공동체적 활동의 증진을 통해 도시공간이나 지역사회의 가치를 높이는 것’1)을 말합니다. 즉,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이를 통한 공동체의 활성화가 도시재생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카데미극장 보존과 관련한 원주시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보존추진위원회의 조직과 활동이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만큼이나 중요한 문화적 자산입니다.
1) 주대관, <도시재생의 사회학>, 한울아카데미, 2023
이번 원주 아카데미극장을 둘러싼 분쟁은 보존과 개발의 가치 충돌로 볼 수도 있겠지만, 크게는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과 가치의 싸움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도시를 개발과 투자의 대상으로 보고, 토지와 건물에 욕망을 투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도시는 다양한 가치가 경합하는 장이자, 공공적 성격의 공유재이며, 무엇보다 삶을 영위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하지만, 개발중심적인 접근은 이러한 도시의 복합적인 성격과 풍부한 함의를 단순화시켰고, 도시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차단시키는 효과를 만들어왔습니다. 그 결과, 아카데미극장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맥락과 내용을 경제적인 관점으로 단순화시켰고, 주차장을 짓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단순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사는 도시에 대해서 좀 더 근원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살고 싶은 도시는 무엇이며, 이를 위해서는 어떠한 변화들이 필요한가와 같은 것들 말입니다. ‘15분 도시’라는 개념을 제안했던 카를로스 모레노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는 권력을 쟁취하는 상상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을 상상하는 힘”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도시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만이 아닌 다양한 주체와 환경들이 상호작용하는 유기체적 공간입니다.
도시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도시에 대한 권리(도시권)를 찾는 것은 단순히 주거의 문제를 넘어서는 무엇일 수 있습니다. 이제는 기후위기 문제의 극복과 지속가능성, 민주주의와 거버넌스, 다양성과 평등과 같은 가치를 담아내는 도시를 어떻게 상상하고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본격화될 시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