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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문화운동과 문화정책의 핵심 과제_②문화공공성

문화공공성을 둘러싼 문화정책-운동 과제

by 문화연대
[이후 문화운동과 문화정책의 핵심 과제]는 문화연대가 대선 이후 문화운동과 문화정책의 방향을 모색하며, ‘삶의 지속가능성’, ‘문화공공성’, ‘문화 민주주의’, ‘문화자치’라는 네 가지 핵심 과제와 이에 대한 대안을 제안합니다.


경합하는 ‘문화공공성’ 개념을 둘러싼

문화정책(-운동)의 과제


김상철_문화연대 집행위원, 시시한연구소 공동소장


공공성을 둘러싼 논의는 ‘어떤 공공성인가’라는 선택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는 오랫동안 공공성 개념을 행정과 정치의 관점에서 연구해온 강원대 임의영 교수의 논의와 김대건 교수의 논의를 참조한다. 임의영 교수는 한국행정연구원에서 발행하는 행정포커스(166호)에 기고한 ‘공공성 개념과 양적 연구’라는 글에서 그간 공공성 연구를 총괄하면서 행위 주체의 측면, 민주주의라는 절차의 측면 그리고 정의의 가치 실현이라는 내용의 측면을 구분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공성의 절차와 내용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 관계에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런 공공성의 개념은 영어에서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개념으로서 공과 공을 구분하여 각각을 공공성의 중요한 가치로 강조하는 김대건 교수의 논의와 연결된다(공공성 유형화와 유형 간 이해관계자와의 협력 및 조직효과성의 차이 분석, 2019). 즉 하나는 공적성이라는 개념으로 보편적 개방성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공동체성으로 공적성의 구성 방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구분한다. 이런 논의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공공성이라는 것이 선험적으로 주어진 가치를 담고 있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개념이며 따라서 과정적 개념으로서 공공성을 파악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과정적 개념으로서의 공공성을 전제로 한다면 문화 공공성의 개념 역시 주요한 맥락 속에서 살펴볼 수 있다.


공공성의 정부독점: 진흥과 향유

무리한 단순화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좀 더 선명한 논의를 위해 한국의 문화공공성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자. 역사적 문화공공성은 현행 문화예술진흥법이 만들어진 70년대 이후의 민족문화의 진흥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법률이 제정된 시기가 1972년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 국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민족문화의 진흥이라는 것이 국민들의 문화향유나 시민들의 문화적 자유는 고사하고 예술인의 창작 활성화라는 것보다는 오히려 국가의 정통성 확보의 수단이었다는 것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즉 정치권력의 부족한 정당성을 전통문화의 진흥이라는 방식으로 보완하는 것이었고 이는 현재의 문화적 억압이 과거의 부흥을 되살리는 불가피한 과정이라는 인식을 강화했다. 당연히 민족문화의 진흥이라는 맥락에서의 공공성은 엄격한 국가주의로 이해할 수 있고 절차와 내용의 변증법적 과정보다는 특정한 정파의 이해관계가 관철된 프로파간다로서의 공적성이 강조된다. 이는 1960년대에 제정된 문화재보호법과 함께 예술적 성취를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서열화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각종 국가 주도의 경연제도가 확대되고 공공장소에 역사적 인물의 동상이 선택적으로 세워진다. 이런 특징은 자랑스러운 민족문화의 우월성에 비해 불건전한 대중문화라는 상대성을 바탕으로 검열과 사회적 통제를 자연스럽게 수용하도록 만든다.


이런 민족문화 진흥이라는 문화공공성의 형식은 정치적 자유화의 과정에서 문화향유라는 관점으로 전환된다. 한편으로는 경제적 성장에 따른 여가문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각종 국제행사의 개최로 인해 ‘고급문화’에 대한 국민들의 수용성을 일종의 자격처럼 부여한다. 문화향유는 한편으로는 문화예술의 새로운 주체로서 자유로운 시민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당시의 공적성을 담지하는 정부는 문화예술을 공적 서비스로 제공하는 공급자가 되고자 했다. 부분적으로 문화복지라는 맥락에서 문화격차를 완화하는 평등성의 수단으로 언급되는 시기도 있었지만 사실은 대학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대규모로 공급하게 된 예술인을 매개로 문화예술을 양적으로 퍼붓는 방식을 ‘문화향유 정책’의 정체였다.


‘k-’를 통한 경제적 신자유주의의 내면화

이는 97년 경제적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면서 극적으로 변화하는데, 그건 소위 산업으로서 문화에 주목하는 방식이다. 김대중 정부의 신지식인 1호인 심형래씨는 본업인 코미디언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으로 선택되었다. 쥬라기파크나 타이타닉이 전세계적으로 유행을 하면서 제조업을 대체하는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문화가 강조되었다. 현재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소위 ‘K-’ 방식의 문화정책은 경제적 신자유주의에 대해 국가가 문화공공성으로 전유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중요한 문화공공성 맥락은 기존 문화예술정책의 전달체계였던 진흥원을 위원회로 전환하고 이후 시민문화라는 정책 분과를 만들어내면서 이후 기존 문화향유 정책을 생활문화로 통합해가는 흐름과 더불어 다양한 문화단체들이 만들어지면서 기존 진흥법 체계의 협단체를 벗어나게 된 점이다. 이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주도해왔던 문화공공성의 공적성이라는 부분을 새로운 문화운동의 주체들이 예술계라는 공간을 두텁게 재구성하면서 이완시킨 과정과 연관된다. 즉 임의영 교수가 말하는 형식과 내용의 변증법적 과정이라는 것이 본격화된 것은 2000년 이후에 들어서야 관찰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의 가장 구체적이고 선명한 계기가 한미FTA와 예술인복지법의 제정이다. 전자는 문화정책과 예술정책을 명시적으로 분리하는 역사적 경험을 구성한다. 문화다양성을 보호하는 기본 단위로서 국가가 폐기되고 그것의 반대급부로서 경제적 보상(기금)을 수용하게 된 것은, 정서적으로 정부가 산업정책으로 추진하는 문화정책을 콘텐츠 정책이라는 외래어로 억지 분류하고 그 밖에 자율적인 예술인들의 ‘순수한 창작과정’으로서 예술정책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가상의 인식을 만든다. 2011년 예술인복지법의 제정은 예술인의 삶이 문화산업의 풍요와 구조적으로 단절되어 있다는 인식 하에서 성립된 것이다. 즉 예술의 산업적 측면, 노골적으로 예술계의 일반경제적 요소들이 없는 것처럼 가정하면서 성립한 것이 현행 예술인복지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문화공공성의 주체로서 시민들을 밀어내고 오로지 예술계 내의 상호인정이 가능한 예술인들만 고려하게 만든다. 이후 블랙리스트라는 국가범죄를 경유하면서 예술인권리보장이라는, 문화공공성의 핵심적인 내용으로서 예술인의 ‘주관적 인식’을 전면에 내세우는 법제화로 귀결된다. 즉 정부는 한편으로는 ‘k-’화된 문화와 예술인의 보호자이자 가해자로서 완전히 이원화된 공적성을 구성하게 되고 비예술인 시민들이 밀려난 영역에서 순수한 예술인의 영역으로서 예술계라는 공동체성을 구축하여 내재화된 정책순환구조를 자기 완결적으로 만든 것이 현재의 문화공공성의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문화정책의 사회적 가치?

아무리 정책이 세련되고 유행 위에서 날아 다녀도 문화정책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문화정책은 동시대성에 대한 특정한 형식일 뿐이다. 영원불변한 예술인의 속성을 고려하거나 ‘원래 그런 문화정책’을 언급하는 것은 그 자체로 사회적 선입견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사회적 가치를 통해서 정책을 혁신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것은 정부가 주도하는 공적성을 재구성하고(문화부와 문화예술위원회 등 문화기구의 개혁) 문화예술의 당사자들을 새롭게 조직함으로써 새로운 공동체성을 형성하려는 노력으로(각종 참여절차 등 거버넌스의 확대) 나타났다. 하지만 이 둘의 변화가 새로운 문화공공성의 내용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는지는 의문이다. 최근 10년 동안 문화예술 영역의 사회적 가치 논의는 한편으로는 예술창작 과정의 경제적 가치를 추산해내려는 계량적 방식의 고도화이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열악한 예술인의 삶을 구제하고 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자 하는 조치에 집중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애당초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가치는 공공기관이 비목적 사업으로 ‘딴 일’을 하기 위한 알리바이 구성에 불과했다. 기관의 당초 목적을 바꾸기 보다는 기관이 하는 사업 영역을 추가하는 것이었고, 결국 문화정책의 사회적 가치는 문화부 산하에 이런 저런 문화기관들을 주렁 주렁 만드는 것으로 귀결되었을 뿐이다.


새로운 문화정책의 가능성: 운동적 파열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그것은 예술계를 둘러싼 바깥이 외계가 아니라 오히려 실제에 가깝다는 영화 ‘메트릭스’의 역설로 설명할 수 있다. 2011년 이후 언뜻보면 자기 완결적으로 보이는 예술정책은 가상의 세계에 불과하다. 그것은 구체적인 예술인의 삶을 보여주지도 않고 비예술인인 시민과 예술인 간의 관계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오로지 정부와 ‘예술인’ 간의 관계만 보여줄 뿐이고 그것이 정책의 전부를 차지한다. 순수한 예술정책과 도구화되지 않는 예술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예술정책을 다른 사회정책에서 떼어내 고립시켰다. 새로운 문화공공성은 결국 2000년 이후 안정적으로 보여왔던 경계들을 무너뜨리는 것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경제적 신자유주의에 포획된 ‘K-’라는 기표를 사용하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고, 그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성립되는 예술정책이 병립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런 조건에서 공공성이나 사회적 가치니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결국 방법은 체계적인 접근보다는 바이러스적 변종을 통해서 헤집어 놓는 것이다. 좀 더 파괴적이고 극단적인 개입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단은 이미 우리의 사회적 삶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기후위기를 고민하면서 어떻게 현재의 지역 축제를 옹호할 수 있는가? 불평등을 말하면서 예술인의 복지를 말하는 건 어떻게 정당화되나? 외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동을 한다는 자체에서 부터, 그리고 한시적인 사용을 전제로 막대한 자원을 동원한다는 측면에서 옹호하기 힘들다. 예술인보다 어려운 사람들이라는 실존적 한계, 특히 어떤 생산수단도 가지지 못해 노예적 삶으로 회귀하는 새로운 ‘노동자들의 등장’에 대해 우선성을 갖기 어렵다. 결국 문화공공성은 그 바깥이 존재한다는 인식, 그리고 그 바깥의 논의에 좀 더 우선성을 부여함으로써 우리가 공고하게 형성한 어떤 생각들을 외파시키는 것을 통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2000년 이후의 세련된 예술정책은 이미 수많은 논의를 ‘내파’라는 형식으로 수용하면서 변화가 아니라 소화를 시켜왔다. 즉 움직이지 않고도 태도를 바꿀 수 있게 된 것인데,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결국 외파 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무너뜨리는 것 외엔 경로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운동으로서 문화운동은 문화공공성의 재구성을 위해 어떤 개념과 가치 그리고 주체들을 불러올 수 있는가, 이것이 결국 문화정책을 새롭게 만들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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