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력을 찾아서 ③ 달꽃창작소 김흙과 홍을 만나다
시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꾸어 갑니다. 국가와 자본에 동원되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변화에 참여하고 협력하는 힘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시민들은 언제나 자기 삶의 가치를 표현하고 소통하며, 사회적 감각을 진화시키고 갈등을 해결할 잠재적인 능력을 키워왔습니다. 시민자치문화센터는 <시민력을 찾아서> 프로젝트를 통해서 시민력을 위해 활동하고 협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시민력을 찾아서> 세번째 인터뷰이로 달꽃창작소 김흙(최규성), 홍(홍연서)을 만났다. 달꽃창작소는 해방촌 언덕자락에 자리 잡은 비영리 문화예술 교육단체로, 지난 8년간 동네 청소년의 든든한 둥지 역할을 해왔다. 미술이론을 전공한 후 큐레이터 일을 하던 김흙과 좌충우돌의 시기를 겪던 홍이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별도의 운영 지원금이 없기에, 둘은 시민사회 및 문화예술 분야 활동가로 일하며 달꽃창작소를 꾸려오고 있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휘뚜루마뚜루 실험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었다.
인터뷰 당일, 달꽃창작소는 코로나 19로 인해 공식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간엔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 청소년과 청년 둘, 그리고 반려동물 달군과 꽃돌의 움직임으로 활기가 넘쳤다.
주말마다 동네 건축사무소를 빌려 청소년들과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달꽃창작소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이후 해방촌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지역’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있나?
김흙 : 처음부터 지역에 주목했던 건 아니다. 멀리 보고 시작한 것도 아니다. 단지, 주말에 시간 내서 아이들을 만나야겠다는 생각 정도였다. 달꽃창작소를 시작한 첫 해엔 서울시 광역 단위 사업도 해봤고, 지방에서 교육도 해봤다. 이후 우리의 역할과 한계를 규정해나가는 과정에서 지속가능한 관계 범위를 고민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아이들과의 관계를 이어가려면, 지역 중심으로 운영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편, 아이들이 지역의 어른들과 교류하는 모습을 보며 지역이 교육적으로도 유용하단 걸 경험했다.
홍 : 달꽃을 시작할 때만 해도 지역이란 걸 체감하지 못했다. 나는 아파트 단지에서 자라, 엘리베이터에서 인사 나누는 정도의 얕은 관계만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차를 거듭할 수록 아이들이 지역 선생님과 관계를 맺으며 일상이 풍부해진다는 걸 느꼈다.
지역주민이 교육을 비롯해 다양한 활동에 함께하고 있다. 어떻게 관계를 트고 유지해왔는가?
홍 : 처음부터 어떤 미션을 갖고 지역 주민을 만나왔다기 보다, 필요할 때면 찾아뵈었다. 예컨대 사진 수업을 기획한다면, 동네 사진관에 직접 소개책자를 들고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딱 떨어지는 가게가 없으면, 카페나 책방을 찾아가 추천할 사람 없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달꽃이 청소년교육을 하는 곳이라는 게 알려지게 되었고,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김흙 : 아이들 프로그램을 위해 여러 관계를 맺어오다 보니, 휘뚜루마뚜루 되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의 학부모와의 관계가 생긴 걸 시작으로, 그리고 프로그램 중 아이들과 동네 공방과 상점을 돌아다니며 인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자연스레 네트워크가 생겼다. 한편,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가 선생님에게 달꽃 이야기를 해주며 관계가 생기기도 했다. 한 선생님은 자퇴를 고민하는 아이를 달꽃에 소개해 숙고의 기간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이렇듯 아이들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어른들과 관계가 넓어져갔고, 지역의 기관들, 행정과도 관계가 생기기 시작했다. 3년차 넘어가니까 동네에 네트워크가 생기고 있단 걸 느꼈고, 5년차에 가까워지니 지역 내에 교육 관련 테이블에 참여하거나 혹은 만드는 게 가능해졌다.
믿음에 기반해 자율적으로 개방하되,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편안하게 찾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김흙 : 물론 뭐라고 할 때도 있다(웃음). 함께 이용하는 공간이니까, 정리를 하지 않으면 이야기한다. 공간을 운영하는 데엔 손이 참 많이 간다. 특히 이용하는 사람은 여럿이고 치우는 사람이 하나면, 밤낮으로 정리만 해야 한다. 그래서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정리할 수 있도록 얘기하고 있다. 딱히 별도의 전달의 방식이나 소통의 방식이 있는 건 아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얘기하거나, 단체채팅방에 얘기한다.
공간 운영이나 평등한 소통을 위한 명문화된 규칙이 있나?
김흙 : 별도로 정해두진 않았다. 그때그때 사람들끼리 조정하며, 큰 불편함 없이 같이 있을 수 있도록 맞추고 있다. 아이들도 크게 난장판을 만들지 않고, 알아서들 잘 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꼭 손 씻자"는 팻말도 저기 앉아있는 아이가 붙여뒀다.
공간 뿐만 아니라, 반려동물 산책 등도 당번을 정하는 등 운영에 대해서도 먼저 이야기해준다. 욕을 많이 쓰는 무리가 있으면, 조용히 우리에게 공간에선 욕을 덜 썼으면 좋겠다고 공지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게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한 번 보고 말 사이가 아니니까, 천천히 이야기해가면서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
청소년 뿐만 아니라, 청년이나 주민들도 공간을 함께 쓰고 있다. 청소년 전용 공간으로 운영하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오게 열어둔 이유는 무엇인가?
홍 : 아이들이 만나는 어른들은 제한적이다. 부모와 학교 및 학원 선생님, PC방 주인 정도?(웃음) 인생엔 다양한 길이 있단 걸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소스를 제공해주고 싶다.
운영 방식이 매우 열려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흙 : 달꽃에서도 영역별로 매뉴얼을 만든다거나 시스템을 잡아보려고 노력했던 때가 있다. 그런데 소용이 없더라. 규모가 작고 관계 중심이며 참여자 중심이라 변화가 많은 단체에선, 계속해 방향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방향을 정확히 공감하고, 우리가 왜 존재하고 어떤 역할을 해야하며, 아이들에게 어떤 입장이어야하는지 공감대를 형성하고 여러 케이스를 겪으며 학습하며 맞춰진 방향 하에 그때그때 판단해서 진행하고 그 판단의 근거를 나누고 있다. 그 방식이 지금에 와선 맞는 것 같다.
운영원리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면에서도 여백이 있어 보인다.
홍 : 꽉 짜인 프로그램을 선호하지 않는다. 어떤 아이들이 모이느냐에 따라 상황이 바뀌기도 하고, 전문강사가 아닌 동네 생업 강사분을 초빙하는 경우 그게 불가능하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안가르치는학교>, <뭔가를 하고 싶지만 뭘 할지는 모르겠는 사람들의 모임>과 같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다. 다른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도, 스킬보다는 다른 데에 학습목표를 둔다. 예를 들어 사진 프로그램의 경우, 사진을 찍는 스킬보다 사진 찍는 사람이 왜 그걸 찍는지를 고민할 수 있게 기획한다.
김흙 : 수업을 정교하게 짜서 아이들을 만나는 건 학교나 학원의 역할이지, 우리 역할이 아니다. 우리에겐 하나의 교육과정보다는, 선생님과의 만남이나 달꽃 안에서 다른 친구들과의 만남 등 전체적인 경험이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쉬는 시간 뿐만 아니라, 수업 앞 뒤로 여유 시간을 꼭 배치한다. 당장 수업에서 느끼는 바가 크지 않더라도, 삶에서 겹치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이 있을 거라 기대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경험이,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함께 성장하는 경험이었으면 한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소년들이 청년이 되어서도 자발적으로 활동을 이어간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이 있는지 소개해달라.
홍 : '스무살'이란 잡지를 소개하고 싶다. 달꽃 출신 청년들이 모여 현재 3호까지 발행했다. 4호부터는 지원을 받지 않고 본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진행하겠다고 한다. 한편, 자발적으로 독서모임이 꾸려지기도 한다.
프로그램이 끝나도, 달꽃창작소를 계속 찾아오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김흙 : 성인이 되어서도 달꽃에서 만났던 다양한 학교의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공간과 달리, 달꽃에선 다양한 연렁대의 사람들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관계에서 좋은 자극을 받을 수 있으니까.
공간이 지니는 힘도 크다. 우리가 언제든지 오라고 독려하기도 하고, 출입문을 번호키로 해뒀기에 우리 눈치를 보지 않고 편히 오갈 수 있다. 게임을 하건 공부를 하건 수다를 떨건, 잔소리하지 않고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둔다.
달꽃창작소가 사람들에게 어떤 곳으로 기억되길 바라는가?
홍 : 삶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공간. 달꽃창작소를 다니며, 학교를 중퇴하고 농사를 짓고 있는 친구가 ‘이렇게 살아가는 거구나'라는 말을 해줬는데, 앞으로 오는 아이들에게도 딱 그런 곳으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나도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을 하는 게 인생의 루트로 알고 있었는데, 달꽃창작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바뀌었다.
김흙 :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해보고 싶은 곳. 이런 얘기를 해주는 친구들이 1년에 한 명씩은 있었다. 달꽃이 하는 게 뭔지 말로 잘 표현할 수 없어도, 분명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그들도 느끼고 있는 듯 하다. 처음 교육 받은 청소년들이 이제 스물셋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 그들 중엔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거나 입대를 해, 지역을 떠난 아이들도 있다. 이 아이들이 서른이 넘어서 이 지역으로 돌아오거나 각자의 지역에서 지역활동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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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10. 박이현∙이두찬. 시민자치문화센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