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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연대 Jun 17. 2020

유신 이후 국가폭력의 곳곳에
흔적을 남긴 자


태초에 김기춘이 있었다. 국가 폭력의 역사 한 페이지 가장 핵심적 범죄 중 하나인 유신헌법을 만드는 데 핵심적으로 관여한 인물도 김기춘이고,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으로 재임하면서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간첩사건 조작의 핵심인물도 김기춘이었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법무부 장관 자리에 앉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핵심 용의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이전부터 국가폭력의 현장 곳곳에서 이름을 찾을 수 있었으며, 온갖 범죄를 진두지휘한 흔적도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선거하나 이기기 위해서 온갖 나쁜 사람들을 모아 두고 우리가 남이가를 외쳤다는 초원복국 이야기는 꺼내기도 싫다.    

 

누구를 위한 비정상의 정상화인가?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예술계에 검열과 관련해 최초의 이상 징후가 발견된 것은 2013년 9월 12일 중앙일보의 ‘박정희・박근혜 풍자냐 비하냐. 국립극단 연극 논란’이란 기사부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기사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미화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깎아내리는 연극이 공연되고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연극을 만든 게 일반 민간 극단이 아닌, 국립극단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라고 했다. 그리고 이 기사가 나기 한 달 전인 2013년 8월 5일 김기춘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다. 김씨가 임명된 이후인 8월 16일 국정원에서 ‘문화예술계 좌성향 세력 활동 실태보고’가 그에게 보고됐으며, 21일 한 회의에서  “종북 세력이 문화계를 15년 간 장악했다. CJ와 현대백화점 등 재벌들도 줄을 서고 있다, 정권 초기에 사정을 서둘러야 한다. 이것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국정과제이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고 한다.     


특히, 국정원이 2013년 9월 3일 작성한 「문체부, BH 지시로 문화예술 분야 左편향 대응책 보고」 문서에 의하면 “문체부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특정 편향(左편향) 예술 지원 실태 및 대책’ 보고를 지시한 것과 관련, 예술 지원을 하는 예술위에 초점을 맞춰 보고서를 작성한 후, 근거를 남길 경우 잡음 발생 개연성에 대비 8월 30일 저녁 교문 수석실 A 행정관에게 인편으로 자료를 전달”하였고 명시되어있다. 이는 곧 8월 30일 이전에 문체부에 의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예술 지원 실태를 중심으로 한 보고서가 작성되었으며, 8월 30일에 청와대 행정관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김기춘이 비서실장으로 임명되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문화예술계 검열과 지원 배제를 위한 체계가 잡혔다는 것이다. 한 달이란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정말 불법에 있어서 이리도 성실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실제로 김기춘씨의 블랙리스트 범죄 관련 기록들은 문화예술계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에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또한 총 4권으로 이뤄진 백서에 김기춘 이름이 668번이나 언급되었다. 아마 확인해봐야 역대 국가폭력 관련 백서에 이만큼 이름이 오른자가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지난 8월 세월호 보고 조작 혐의로 재판을 받으러 나온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뉴시스]


블랙리스트 총책임자 김기춘 그는 지금 무엇을 하는가?     


문화예술인들은 2017년 블랙리스트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광화문에 텐트를 치고 넉 달 보름 이상 캠핑을 하였다. 추운 겨울날 시민들은 차가운 눈 위에 신문을 깔고 앉아서 싸웠다. 그 결과로 박근혜를 탄핵시켰고, 블랙리스트 핵심 범인인 김기춘과 조윤선 등을 구속시켰다.  그러나 그는 2019년 12월 4일 자로 구속기간이 만료되어 출소하였다. 그리고 현재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으며, 지난 1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상고심을 열고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재판을 다시 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했다. 그리고 고등법원에서 다시금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 관련해 제기한 민사소송은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충북민예총이 제기한 민사소송 역시 2심 재판이 연기된 상황에서 더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최근 출판사들이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피해를 입었다며 정부와 관련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 2년 반 만에 시작됐다는 것이다. 다음 기일까지 잡혀있는 상황이다.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권리・이익 침해로 말미암아 피해를 받은 사람을 보상하고 구제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 그리고 국가 공권력의 오·남용의 결과로 피해를 입은 문화예술인들 및 단체의 명예 회복과 손해배상 및 보상 그리고 치유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 마련과 이에 대한 실행 등은 현 정부가 약속한 핵심 사항들 중 하나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기춘 관련 멈춰있는 재판의 재개와 함께 준엄한 법의 심판이야 말로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첫 번째 조치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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