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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연대 Jul 09. 2020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2020년 7월 9일, 故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 국회 긴급토론회 발표글

상처가 고통스러운 것은, 
그 깊이와 크기보다는 그것의 오래됨 탓이다.
- 프란츠 카프카 - 



반문


또 한 통의 전화가 온다. 같은 질문을 받고 같은 대답을 한다. 전화를 끊고 잠시 숨을 고른다. 피곤한 얼굴을 한 거울 속 중년사내가 경멸의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다. ‘넌 지금 뭘 하고 있니?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며 입술을 깨물면서 이야기했었잖아.’


같은 질문을 하는 기자들에게 되묻는다. ‘정말 몰라서 물어 보는가?’ 오십 년 묵은 병증, 케케묵은 스포츠강국 대한민국 엘리트스포츠의 비정상성을, 그 원인을, 그 처방을.


불과 1년 반 전, 이를 악물고 다짐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용기를 낸 선수(그녀는 웃음을 잃은 지 오래였으나 우리는 그저 그녀의 메달에 환호했다)의 고백을 통해 얻은 대한민국 스포츠개혁의 마지막 기회. 온 나라가 뒤집힐 듯 떠들썩했다.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직접 체육계 개혁을 요청했고 곧이어 유래 없는 민관합동 스포츠혁신위원회가 꾸려졌다.

그 즈음 나는 한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대한민국 체육계 수장을 향해 진지한 제안을 했다. 만약 이번 일로 체육계 가장 윗분이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온다면 그 다음에 올 수장에게 이 사안이 자신의 직을 날릴 정도로 중요한 문제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터이니 제발 우리나라 체육의 미래를 위해 용단을 내려달라고. 대한체육회를 비롯해 시도체육회, 종목경기단체 수장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직을 걸고 총력을 기울인다면 어쩌면 반세기 동안 지속되어온 국가주의적 엘리트지상주의(라고 쓰고 국위선양이라는 미명하에 개인 갈아 넣기라고 읽는다)가 깨질 수도 있겠다고 믿었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그 당시 뼈를 깎는 심정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고개를 숙이던 체육계 수장은 여전히 건재하다. 아니 오히려 그동안 국제스포츠계 거물이 되셨고, 이제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여야를 불문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 CCTV와 비상벨을 설치한다고 했고, 진천선수촌에 졸속으로 만들어진 인권센터는 선수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 받았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잊힌다는 뼈아픈 교훈만 남았다.


일곱 차례에 걸친 스포츠혁신위의 권고. 기존의 엘리트체육계는 판판히 반대하고 저항했다. 엘리트체육 죽이기라고 볼멘소리를 하는 그들을 엘리트 체육 살리기라고 정성껏 설득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세 번째 발제자인 함은주 위원이 자세히 다루겠지만 독립성, 전문성, 신뢰성을 담보한 스포츠인권기구 신설을 제안했고, 대한민국 엘리트체육의 골수라 할 수 있는 학교운동부의 전향적 변화를 촉구했다. 모두를 위한 스포츠를 실현하기 위해 스포츠클럽을 살리고 스포츠기본법 제정을 권했다. 과학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효율적인 훈련을 엘리트스포츠에 정착해 반인권적 학대가 아닌 체계적인 훈련을 요구했다. 현실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최대치(솔직히 더 강하게 주장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다. 특기자제도, 병역특례, 연금제도에 대한 더 급진적인 제안도 있었지만 결국 최종 권고에 담지 못했다)를 제안했고 이행계획까지 세우고 모니터링을 하다 1년의 임기가 끝났다.


또 전화가 울린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냐고 같은 질문을 하고 같은 대답을 한다. 되물을 수밖에 없다. 정말 몰랐냐고? 다 고민했었고 최선을 다해 만들어 놨는데 안 찾아 봤냐고? 애꿎은 기자들에게 화를 내다가 입을 다문다.


      

회한


나는 선수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멘탈코치다. 각 선수에게 품부된 재능과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내 날아오르게 하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선수가 반짝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상담을 마치고 나가는 선수들의 얼굴에서 빛이 날 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온전히 수행했다고 자부한다.


고 최숙현 선수와 함께 지옥을 보낸 피해자 선수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어둡다. 고개를 숙이고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생을 마감한 동료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다는 후회에 가슴을 움켜쥐고 자책한다. 부모가 걱정할까봐 소리 내 울 수도 없다. 이 세상에 없는 동료사진을 꺼내들고 긴 한숨을 쉴 뿐이다. 반대로 가해자들은 당당하다.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준비된 멘트를 반복한다. 절대 때리지 않았다는 가해자의 말에 피해자의 손이 부들거리는 걸 보았다. 유대인 학살에 있어 직무를 다했을 뿐이라고 끝까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떠올랐다.


철인3종. 알다시피 극한의 인내를 필요로 하는 종목이다. 참고 견디는 데에는 이골이 난 이들이다. 5킬로를 32분에 뛰었다고 자랑하자 ‘최소한 16분은 끊어야죠’라면서 단호하게 말한다. 나로서는 상상 할 수 없는 고통을 일상적으로 견딘다는 뜻이다. 견디는데 이골이 난 한 선수가 꽃다운 생을 툭 놓았다. 장례식장에서 ‘숙현이가 더 견뎠어야지’라고 말했다는 연맹직원에게 묵직한 살의를 느꼈다.


20년 가까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스포츠의 아름다운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해왔다. 우리를 잇고, 묶고, 넘어서게 하는 스포츠. 가능성의 최대치까지 밀어붙이게 하고 최선을 다한 승부를 통해 얻어지는 새로운 차원의 연대. 사회적으로 핍박받는 계층이 스포츠를 통해 전복을 꿈꾸고 가능하지 않았던 일들을 실현해 나가는 힘. 예를 들어, 로벤섬 감옥에서 마카나 리그라는 FIFA 공인축구리그를 이끌어내고 남아공럭비월드컵을 통해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묶어낸 넬슨 만델라, 흑인차별을 세상에 알리려 올림픽 메달을 박탈 당해가면서까지 검은 장갑을 끼고 주먹을 높이 처 들었던 존 칼로스,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매년 4월 15일 모든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그의 등번호 42번을 입고 경기를 하는 전통을 세운 제키 로빈슨, 남자시합의 들러리가 아닌 남성과 동등한 수준의 상금을 받기 위해 노조를 만들어 관철시킨 테니스 전설 빌리 진 킹까지. 이러한 가치는 2020년 대한민국 엘리트스포츠에서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스포츠의 숭고한 가치라... (이 지점에 찰진 쌍욕을 쓰고 싶지만 그냥 비워 둔다) 때리고 욕하고 따돌리고 괴롭히고 갈취하고. 최숙현은 그들에 의해 떠밀려 죽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설명은 사건을 왜곡한다. 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표현이 오히려 적확하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랫동안 끊지 못했던(끊을 수도 있었던!) 음습한 엘리트체육이라는 올가미가 그녀의 목을 조른 것이다. 올림픽 나가서 딴 금메달 100개 보다 한 선수의 목숨이 중하다. 도쿄 올림픽 메달을 안 따도 좋으니 대한민국 엘리트체육을 그라운드 제로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주장하고픈 심정이다.




징죄


고 최숙현 선수가 남긴 마지막 말을 며칠 째 중얼거린다.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 과연 그 사람들은 김 감독, 장 선수, 그리고 안 트레이너가 다인가? 이런 걸 가능하게 하고 때로는 조장하기도 했던 엘리트스포츠를 둘러싼 공고한 침묵의 카르텔이 포함되지 않을까? 카르텔은 본래 단단하고(깨기 힘들다), 어둡고(잘 알려지지 않는다), 오래되면 결국 썩는다(악취가 진동한다). 징죄를 해야할 ‘그 사람들’ 안에는 바로 이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소위 전문체육인이 포함된다. 엘리트스포츠의 음습한 현실을 이야기하면 언제적 이야길 하냐고 핀잔을 주는 그들. 예전에는 그랬지만(라떼는!) 지금은 안 그렇다(혹은 많이 좋아졌다)고 힘주어 이야기하는 그들.


운동 해봤냐고, 현장을 아냐고 윽박지르는 전문체육인. 지긋지긋하다. 장사꾼 출신 힘 있는 회장님들에게는 머리를 조아리면서 후배 선수들이나 혁신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호통을 친다. 권력의 부스러기를 나눠가진 전직 엘리트선수들은 자신이 수행해야 할 임무를 체육계 민원 해결 또는 밥그릇 확보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변화의 요구를 받으면 엘리트체육계는 고슴도치가 된다. 수세적으로 몸을 잔뜩 말고 독기어린 바늘을 꼿꼿이 세운다. 이런 고슴도치가 도처에 깔려있다. 희망이 없다. 엊그제 만난 철인3종 선수는 차라리 군대를 가서 직업군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어서 요즘은 군대도 안 그런다는데 우리는 왜 아직도 이래요라며 울먹였다. 미안하다는 말이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희망


눈앞에 보이는 대한민국 엘리트체육의 현실은 암울하다 못해 절망적이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소개하면서 정혜윤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에서 힘을 얻는다. 세월호 의인으로 불리는 민간잠수사 김관홍. 그의 죽음을 애도하러 모인 수많은 시민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그들을 이곳으로 데려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이야기. 칼비노의 소설에 나오는 보이지 않는 도시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고 최숙현 선수의 죽음이 오늘 이 시간 이 곳으로 여러분들을 데려왔고 이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지 않을까? 스포츠의 가치를 회복한 보이지 않는 도시를 상상하며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정용철

서강대 교수 · 문화연대 공동집행위원장



* 글 제목은 여성학자 권김현영의 근작,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에서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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