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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연대 Aug 26. 2020

우리는 왜 ‘예술인의 권리’를
말해야 하는가?

지난 5월 22일,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 직전에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예술인권리보장법)’은 끝내 통과되지 못했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은 ‘블랙리스트 사태’와 ‘예술계 미투운동’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예술인에 대한 열악한 지위를 보호하고, 최소한의 권리를 법으로나마 보호하기 위해 발의된 법안이다. 예술계 현장의 오랜 요구와 논의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법인만큼 통과에 대한 기대도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법사위원장의 “21대 가서 하시죠”라는 무심한 한마디에 예술인권리보장법은 20대 국회에서 허무하게 폐기되고 말았다.


더욱 답답했던 것은 질의를 하는 야당 의원이나 이를 해명하는 여당 의원, 게다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마저도 이 법의 취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날 회의에서 논의되었던 ‘K-pop을 통한 산업경쟁력 강화’나 ‘문화강국으로의 발전’에 대한 이야기는 스스로 이 법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검색만 해도 찾을 수 있는) 발의안의 제안 이유만 읽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조차 이들을 알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예술정책에 대한 행정과 입법기관의 무지와 무관심함을 보여주는, 촌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슬픈 현실이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또 다른 중요한 현안이었던 ‘예술인 고용보험’ 적용을 위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같은 날 통과가 되었다. 하지만,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 예술인들을 배제해버리면서 또 다른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번 시행령은 고용보험의 구체적인 적용범위와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는 점에서 예술의 특성과 현장의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시행령을 결정하는 고용노동부의 고용심의위원회에는 예술인 당사자가 한명도 포함되지 않았고, 예술과 예술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없는 인물들로 채워버렸다. 어쩌면 예술가를 위한 제도이지만 예술현장과 예술정책에 대한 이해가 필요없다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예술정책에서의 예술인들이 배제되고 대상화되어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1970년대에 만들어진 문화예술진흥법을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동안의 예술정책은 창작활동에 대한 진흥정책이었고, 예술인들은 지원대상에 불과했다. 현재에도 대다수의 예술정책은 이러한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예술인은 정책의 주체이거나 파트너가 아니라 대상으로 한정하고 있다. 


예술이 아닌 예술인에 대한 법이 만들어진 것도 2012년에 예술인복지법이 만들어지고 부터이며, 현재까지도 예술인을 대상으로 하는 법은 예술인복지법이 유일하다. 하지만 예술인복지법은 제정과정에서부터 실질적인 정책 대안과 실행과정에 대한 계획의 부재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또한, 기존 사회복지제도와의 관계 설정도 명확하지 않아 예술인복지의 필요성과 예술인에 대한 특혜 논란과 같은 잡음들은 꾸준히 있어왔다.


이러한 원인 중 하나는 예술인 복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 다시 말해 예술인 복지의 목표인 예술인 권리를 어떻게 볼 것이며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과정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이런 논의를 피하면서 제도만 도입하려다보니 법제 간의 충돌이나 편법도입과 같은 일들이 반복되었다. 어쩌면 이제라도 예술인의 권리가 무엇이며, 왜 보장되어야 하는지, 예술인의 사회적 역할과 위상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가 논의로만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과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이제는 예술활동에 대한 지원을 통한 예술진흥을 목적으로 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보다는 예술을 통해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며 이를 일상 속에 녹여낼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예술인은 단순히 예술작품을 창작하고 예술행위를 하는 사람의 의미를 넘어, 예술가의 삶 자체가 중요한 시기가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예술정책의 개혁과 변화의 출발점은 예술인의 권리에 대한 논의가 무엇보다 중요할 수 밖에 없고, 예술인의 권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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