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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속과 폐단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왜, 구태여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한 예술 일자리 지원이어야 할까

by 문화연대

지난 7월, 문화체육관광부의 2020년도 3차 추경 예산으로 3,469억 원이 최종 확정됐다. 이 중 약 절반(45%)인 1,569억 원은 코로나19로 위축된 문화예술과 관광 등의 분야에 공공수요를 창출하여 공공일자리를 확충하도록 지원하며, 문화 분야의 ‘한국판 뉴딜’ 사업의 시작을 알렸다. 예술분야 1,569억 원 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사업은 이른바 “예술뉴딜”이라 불리며 현재 지자체별로 진행이 한창인 <공공미술 프로젝트>이다.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투하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은 759억 원이며 이에 더해 전국 228개 지방자치단체 지원예산의 20%에 해당하는 179억 원을 합하면, 총 948억 원의 규모로 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번 프로젝트로 8,500여명의 예술가가 참여할 것이라 기대하는 등 단일규모 사상 최대 수준이다. ‘표면적’인 취지와 규모만 놓고 보면 예술분야의 공공일자리를 위한 꽤나 적극적인 지원의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사업을 진행 중인 일부 지자체와 예술계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 사업의 유효성은 뒷전인 급조된 정책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첫 단추부터 다시 새겨봐야 한다. 다시 말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번 사업을 추진하며 기대하는 구체적인 효과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해당 사업의 문제는,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예술가들에게 일자리를 지원한다는 배경에서부터 등장한다. 예술가들은 이미 ‘예술가라는 직업’을 통해 ‘창작이라는 일’을 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지원이라는 명목 하에 또 다른 일자리만을 만들어내어 예술가에게 부여하는 형국이다.


또한 “공공미술”이라는 장르를 통해, 공공을 위한 예술 노동이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가치로 환원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예술가들이 실제로 이와 같은 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지원받고 싶어 하는지, 그에 대한 효과와 효력은 얼마만큼 인지 등 어떠한 근거나 계획도 미비한 상태다. 이는 예산에 맞춘 정량적 결과를 성과로 둔갑시키는, 철저하게 공급자 중심의 하향식 정책 운영 방식의 전형이며 근시안적이고 급조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2. 사업 수행에 있어 원칙과 기준이 불분명한 지자체

전국 228개 지자체에 4억 원씩 일괄 지원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한 지자체 당 시군 단위로 참여 가능한 작가수가 약 37명이라고 한다. 이는 전체 예산과 기대 인원 각각을 지자체 수로 단순하게 나눈 수치다. 지역에서 4억 원은 적지 않은 예산이다. 그만큼 <공공미술 프로젝트>공모와 선정과정에서 공정성과 형평성에 만전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몇몇 지역에서는 벌써부터 허술한 공모업무처리, 심사 공정성 시비, 도용 논란 등의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게다가 대략 6개월이라는 짧은 사업기간으로 인해, 작품을 설치하고 빠지는 식의 터무니없는 제안서만 양산하고 난무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모 과정에도 큰 맹점을 보이는데, 해당 지역의 특정 예술단체를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한다거나 협회나 단체들이 사업을 독점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정보 전달 과정에서도 지역 언론이나 지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사업을 공지하다보니 인지하는데 있어 예술가마다 편차가 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업에 대한 지자체의 원칙과 기준의 부재는 지역 내 예술가들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문턱을 높이고 공평하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사전에 제한하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원칙과 기준은 지자체마다 다르게 수립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지역 내 예술가들에게 얼마나 잘 닿을 수 있는지에 대한 염두이다.


#3. 공공미술에 대한 몰이해

1967년 영국의 미술 행정가인 존 월렛(John Willett)에 의해 언급된 공공미술은 ‘장소 속의 미술’, ‘장소로서의 미술’그리고 ‘참여∙개입의 미술’로 점차 개념이 확장됐다. 공공미술은 도시 미화나 재생사업을 위해 벽화나 조각 등을 대중에게 공개하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 공동체와의 협업이나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결속을 다지는 역할로 나아가기도 한다. 이는, ‘정부 주도의 공공미술’과 ‘예술가의 자발성에 의한 공공미술’이라는 이원화된 양식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비추어 볼 때, 문화체육관광부와 지자체는 어떤 이해를 바탕으로 “공공미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마찬가지로 사업에 참여하는 일부 예술가들도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지역성과 지역 주민의 소통에 기반 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일회성 공공근로 형태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일각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진행되고 있는 이번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기존의 공공미술 사업과는 다르게 일자리 지원 사업의 측면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어떠한 질문과 의문을 품든 간에 사상 최대 규모라 일컬어지는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지역과 개연성 없는 조형물이나 장식적인 벽화 사업과 같이 기존에 비판받고 있는 사례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정책과 사업이더라도, 정책과 사업이 맞닿아있는 현장의 이해가 충분치 않다면 실효성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긴급성과 시의성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실행하는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전략도 없는, 속 빈 강정이나 다름없는 사업이 추진되는 꼴이다. 이미 지역 문화∙예술계와 지역 문화행정과의 협치 및 협력 관계를 조성하여 공공미술의 취지에 부합하는 활동을 전개하는 곳도 있다. 그런데 <공공미술 프로젝트>사업의 경직성과 수직성은 협력 관계에 있던 기존 주체들을 배제한 상태로 현장에서 행정에 의해 일방적으로 집행되고 있다. 지금이라도 문화체육관광부와 각 지자체는,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진정한 의미의 “공공미술”로 나아가고 지역 내 작가들이 예술 활동을 통해 지역 주민과 소통하며 정주할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또한, 사업 종료 이후 예술 현장 및 지역 주민과 함께 사업을 평가하며 의견을 나누는 공론화 과정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그건 더 이상 실수가 아니라 문제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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