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인류의 압도적인
승리에 관한 유토피아는 없다

『인류세 : 거대한 전환 앞에 선 인간과 지구 시스템』(클라이브 해밀턴)

by 문화연대

인류세의 시대, 더 이상 인류의 압도적인 승리에 관한 유토피아는 없다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는 2000년에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에 의해 처음으로 제안된 용어다. 그는 지구의 전체 역사를 나누는 공식적인 지질연대표에 새로운 지질시대를 추가해야 한다며 인류세라는 이름을 제시하였다. 지질연대표는 중대한 지질학적 사건이 일어난 순서대로 지구의 역사를 절(節, Age), 세(世, Epoch), 기(紀, Period), 대(代, Era), 누대(累代, Eon)로 나누며 ‘절’이 가장 작은 단위다. 이에 파울 크뤼천은 인류세가 지난 1만 년 동안 지구의 기후가 매우 온화하고 안정적이었던 홀로세(Holocene, 충적세)의 뒤를 잇는다고 주장한다. 국제층서위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n Stratigraphy)는 지질연대에 새로운 지질 시대인 인류세를 공식 도입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16) 하지만 지질연대표에 대한 인류세의 공식적인 도입 여부를 떠나서 이미 인류세라는 개념은 지구적 차원에서 뜨거운 관심사가 되었다. 어린 시절 ‘지구과학’ 교과서에 잠시 등장한 이후 우리의 삶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 같았던, 오직 지질 전문가들만이 관심을 가질 것 같았던 지질연대가 인류세와 함께 소환된 것이다.


인류세-01.jpg 『인류세 : 거대한 전환 앞에 선 인간과 지구 시스템』(클라이브 해밀턴, 정서진 옮김, 이상북스, 2018)


사실 인류세에 대한 관심이 지구적으로 폭발한 이유는 지질연구나 지질연대 때문만은 아니다. 인류세 담론은 기후위기로 상징되는 지구환경의 거대한 재난과 위기에 대한 문제설정을 제기하고 있다. “인류세의 가장 큰 특징은 인류에 의한 자연환경 파괴를 들 수 있다. 그동안 인류는 끊임없이 지구환경을 훼손하고 파괴함으로써 인류가 이제까지 진화해 온 안정적이고 길들여진 환경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직면하게 되었다. 엘니뇨·라니냐·라마마와 같은 해수의 이상기온 현상, 지구온난화 등 기후 변화로 인해 물리·화학·생물 등 지구의 환경체계도 근본적으로 변화하였다. 이로 인해 인류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지구환경과 맞서 싸우면서 어려움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는데, 인류세는 환경훼손의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현재 인류 이후의 시대를 가리킨다. 인류로 인해 빚어진 시대이기 때문에 인류라는 말이 붙은 것이다.”(두산백과) 이처럼 인류세 담론은 현재 인류와 지구가 직면하고 있는 대재앙의 시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이 되어버렸다.


『인류세 : 거대한 전환 앞에 선 인간과 지구 시스템』는 인류세에 대한 지구과학적 접근에서 시작하여 철학, 사회과학, 신학 등을 횡단하며 인류세가 던진 인류(문명)에 대한 존재론적 문제설정을 시도한다. 클라이브 해밀턴에게 인류세의 시대는 ‘지구 역사의 균열’인 동시에 인간이 ‘유토피아 없이 살아가기’ 위한 새로운 가능성이자 출발점이다. 지금까지의 지질시대들이 “인류가 번영할 수 있도록 자연이 많은 것을 제공하는 시대”였다면 “인류가 자초해 새롭게 진입하게 된 시대는 문명을 무효화할 위험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243) 또한 “인류세의 도래는 인류가 점점 더 높은 수준의 물질적‧사회적‧영적인 발달로 나아가는 미리 정해진 영속된 흐름을 예견한 모든 서사, 철학, 신학과 대치된다.”(244) 과학과 이성, 기술과 발전, 계몽과 지성, 종교와 (개인적) 구원 등 인류의 압도적인 승리에 대한 이야기들은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아니 인류의 오랜 자산들은 그 존재론적이고 근원적이며 회의적인 질문 앞에서 당황하며 침묵이나 회피(‘고의적 무시’)를 선택하고 있는 상황이다.


클라이브 해밀턴은 인류세의 시대에 ‘자연과 인간’을 둘러 싼 새로운 존재론 혹은 관계론에 주목한다. 그는 인류세와 관련하여 “인간의 힘이 아주 강력해져 이제 위협적인 새로운 지질시대에 진입하게 되었”으며 “지구 환경에 새겨진 인간의 흔적이 매우 크고 인간의 활동이 대단히 왕성해져 지구 시스템 기능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력이 자연의 거대한 힘들과 겨룰 정도가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리고 “인간이 지구의 행로를 바꿀 정도로 강력해졌어도 자신이 가진 힘을 스스로 조절하는 게 불가능해 보이는 이토록 기이한 상황은 인간 존재에 관한 근대의 모든 믿음들과 모순”된다는 것이다.(6) 인류세의 시대는 지금까지 인류가 확신을 가지고 축적해 온 문명의 방향, 인류가 자연을 대해 왔던 관계성 자체를 온전하게 배반한다.

이에 클라이브 해밀턴은 인류세의 도래와 함께. 현대 인류 문명의 준거점이라 할 수 있는 근대 사상의 핵심 자체를 재구성하고자 한다. “1784년 칸트는 에세이 <계몽이란 무엇인가?>(What is Enlightenment?)에서 인간이 이성을 이용해 자기 결정의 길을 갈 수 있는 용기를 찾아냈기 때문에 자유-이성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자유-가 생겨났다고 주장했다.”(216) 칸트철학을 토대로 인류의 근대성(근대사상의 핵심)은 세계를 필연의 영역(자연과 자연법칙)과 자유의 영역(인간이 점유한 영역)으로 명료하게 구분해왔다. 클라이브 해밀턴은 인류세의 도래 이후 인간 중심의 근대적 자유 개념 혹은 인간과 자연의 이분법에 기초한 인간 자유의 절대화와 자연의 대상화(절대적 필연성)은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인류세가 인간의 역사와 지질학적 역사의 수렴을 뜻한다면, 전체로서의 자연은 인간과 지구의 역사가 수렴할 수 있도록 전개되는 영역이다. 새로운 시대는 우리에게 인류와 지역의 역동적인 상호관계, 즉 ‘역사와 자연의 통합’을 인정하게 한다. 인류와 지구는 전체에 속하는데, 모든 역사가 그 안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역사를 초월하는 전체다.”(224)

그는 “이제 자유는 제한적이고 조건이 따라 붙는다. 무질서하고 빠르게 반응을 보이는 지구에서 자유는 잠정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 필연성은 예측할 수 없고 무절제하며, 자유로운 존재의 자극에 과민반응하기 쉽다”며 “우리 시대의 위험은 더 이상 필연성과 동떨어져 자유가 행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류가 깨닫지 못한다는 데 있다”(221)고 충고한다.


우리는 “인류세에 진입하면서 인간이 자연계에 끼친 광범위하고 무수한 피해와 그로 인한 영향, 이를테면 기후교란이나 생물멸종, 그리고 대양과 대지, 대기의 오염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있으면서 단순히 무관심한 태도”(236)로 일관하고 있다. 기휘위기에 대한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현실의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이브 해밀턴은 인류세의 시대에 인간의 새로운 행위에 대한 가능성에 기대를 건다. 그는 “인간이 창조한 것을 어떻게 돌볼 것인지 선택하는 데 있어 인간에게 주어진 열린 가능성은 대단히 중대한 존재론적 사건이었다”(237)고 강조한다. 인간 스스로가 망치고 있는 행성적 위기를 스스로 바로잡기 위한 인간의 성찰적 인식과 대안적 행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류세의 시대에 클라이브 해밀턴의 결론은 무엇일까. 더 이상 인류에게 유토피아는 없다. 인류의 압도적 승리라는 거대한 서사의 결말이 재난사회였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 확인하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인간이 구원받을 가능성은 그 어떤 개인적 구원과도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248) “인류세의 위협에 대한 유일한 대응방식은 집단적인 방식, 즉 정치를 통하는 것이다”(249)가 그의 결론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정치를 스스로, 함께 해야 할까.


기후위기 앞 도서관

이미 도착한 기후위기의 시대, 기후위기에 함께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독서와 실천적 책 읽기를 모색합니다.

글쓴이 : 이원재 _ 문화연대 기후위기운동모임 ‘Still 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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