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어리석고
자기파멸적인 시간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 에콜로지와 민주주의에 관한 에세이』

by 문화연대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의 시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어리석고 자기파멸적인 시간


나이가 들면 누군가의 죽음과 마주할 일이 잦아진다. 가깝게는 부모와 가족에서부터 주변의 동료와 지인들까지, ‘부고’는 어느새 일상의 한 부분이 된다. 지난 여름의 어느 날(2020년 6월 25일이었다) 또 하나의 부고를 받았다. 그 누군가는 바로 ‘고 김종철’이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생태주의 운동가이자 <녹색평론> 발행인이었던 김종철 선생이 우리 곁을, 그것도 급작스럽게 떠나셨다는 알림이었다. 부고를 받은 그 순간 내 책상 위에는 173번째 <녹색평론>이 놓여있었다. 이제 김종철 선생의 <녹색평론> 마지막 글이 되어버린 ‘코로나 시즌, 12개의 단상’을 바로 직전에 읽고 난 후였다. 그 글의 울림이, 향기가, 불편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김종철 선생은 평소의 홀연했던 글처럼, 정말 홀연히 떠나셨다.


김종철 선생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 사회에서 ‘생명사상과 환대의 윤리’를 강조하셨던 분이다. 그는 산업혁명 이후 현대 자본주의가 가져다 준 ‘근대의 어둠’을 깊게 통찰했고, 이에 대한 대안이자 윤리로서 ‘생태존중 사상과 실천‘을 일관되게 작업해 온 분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김종철’은 <녹색평론>과 동의어인데, 김종철 선생은 1991년 사재를 털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 공생적 문화가 유지될 수 있는 사회 재건을” 목적으로 격월간지 <녹색평론>을 창간했다. 김종철 선생은 생전에 173번의 <녹색평론>을 발행하는 동안 (불과 얼마 전까지도 사회운동에서조차 무관심했던) 생명사상과 농본주의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하고 실천했다. ‘김종철’과 <녹색평론>은 지난 30년 동안 이론과 담론으로서의 생태주의에 머물지 않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서부터 기본소득, 코로나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를 ‘생명의 문화’라는 관점에서 성찰하고 비판하고 경고해왔다.


x9788990274878.jpg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 에콜로지와 민주주의에 관한 에세이』(김종철, 녹색평론사, 2019)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는 김종철 선생의 생태사상론집이다. 그가 <녹색평론>에 발표했던 글뿐만이 아니라 전국을 다니며 강의했던 소중한 이론적 실천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책에서 김종철 선생은 21개의 글을 통해 농업적 순환사회, 탈핵, 자유협동주의, 소국주의, 기후위기, 탈성장, 민주주의, 녹색국가 등을 유기적이고 순환적이며 일관되게 설명한다.

글에 따라서는 제법 시간의 거리가 존재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종철 선생의 사유와 제안은 현재에도 여전히 타당하고 유효해서 당황스럽다. 그만큼 김종철의 사상은 본질적이고 일관되며 비타협적이고 지속적이다.


김종철의 말과 글은 늘 불편하다. 그는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의 시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어리석고 자기파멸적인 시간”이라고 규정한다. 기후위기 시대로 상징되는 현대 자본주의, 그 어리석고 자기파멸적인 시간들 속에 우리 모두가 존재하고 있으니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대다수의 우리들은 그 시간들을 거대한 문명이라 부르며 떠받들어 왔고, 인류 멸종에 대한 경고 속에서도 눈앞의 편리함과 끊임없이 타협하고 있다. 이를 대놓고 비판하는 김종철 선생과 그의 생명사상, 농본주의는 언제나 불편한 존재이며, 그 불편함의 깊이와 크기만큼 김종철 선생과 <녹색평론>은 자신의 사회적 가치와 역할을 증명해 온 셈이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지금부터 이십 년이나 삼십 년쯤 후에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라고 김종철 선생은 말한다. 김종철 선생이 최근 기후위기 시대, 혹은 자신의 죽음 앞에서 남긴 말이 아니다. 이는 김종철 선생이 직접 쓴 <녹색평론> 창간호(1991년) 창간사의 첫 문장이다. 이미 30년 전, 아니 30년 동안 우리 모두에게 친절하게 설명하고 불편하게 경고했던 김종철의 생태적 지혜는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다. 이제 김종철 선생이 삶 전체를 통해 집중했던 ‘공생공락의 문화운동’은 온전히 우리들의 몫이다.



기후위기 앞 도서관

이미 도착한 기후위기의 시대, 기후위기에 함께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독서와 실천적 책 읽기를 모색합니다.

글쓴이 : 이원재 _ 문화연대 기후위기운동모임 ‘Still 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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